블로그 이미지
lailar

Rss feed Tistory
Gen 2011. 1. 24. 09:00

셜존 :: 221B Baker의 아이들 - 5




:: 하기 싫은 일 ::


  베이커가의 아침식탁에 존이 당근 수프와 으깬 감자를 내놓은 날에는 어김없이 그들 사이엔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날도 그랬다. 당근을 싫어하는 에밀리와 별 말 없이 잘 먹는 빅토리아, 그리고 그런 건 거들떠도 보지 않고 오로지 신문만 뒤적이는 셜록이 주말 아침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고 있었다.


  “파파, 당근 싫어. 에밀리 안 먹을래.”

  “에밀리, 다 먹을 때까지 부엌에서 못 나가.” 존이 단호하게 말하자 셜록이 피식 웃었다.

  “그럴 땐 그냥 코 막고 먹는 거야.”


  방법이랍시고 알려주던 빅토리아는 에밀리가 정말? 하며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힘겹게 당근 수프를 입에 떠 넣는 걸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같기에 에밀리의 귀여운 얼굴이 오만가지로 찌그러졌다. “그래도 맛없어. 비키 거짓말쟁이.” 혀를 쏙 내미는 그녀의 행동에 빅토리아가 까르르 웃었다.

  덧붙여 그날 아침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는 것은 당근 말고도 하나 더 예정되어 있었다. 셜록은 신문을 접어 부엌 바닥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던지곤 - 옆에서 존이 소리쳤다. “당장 주워!” - 빅토리아를 그윽한 눈길로 쏘아보았다. 오물거리며 빵을 먹던 빅토리아는 셜록과 눈이 마주치자 입에 있는 빵을 삼키고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뒤 그에게 물었다.


  “파파, 왜 그래?”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셜록이 대답했다.


  “빅토리아, 파파는 실망했다.”


  이 뜬금없는 말은 빅토리아를 적잖이 당황케 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존은 옆에서 쯧쯧 혀를 차며 셜록이 내동댕이친 신문을 주워 거실에 가져다 놓았다. 에밀리는 입을 꾹 다물고 으깬 감자만 퍼 먹었다. 갑자기 주위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자 바싹 긴장한 빅토리아에게 셜록이 그 이유를 댔다.


  “유치원에서 춤 발표회가 있었다고 들었다. 에밀리가 증언했으니 발뺌할 생각은 말고”


  말이 끝나자마자 빅토리아는 에밀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감자를 스푼으로 쿡쿡 찌르던 에밀리는 흘끔 빅토리아를 보았다가 마주친 눈에 화들짝 놀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결국 체념한 빅토리아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 부루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응. 있었어.”

  “어째서 파파를 부르지 않았지.”

  “…그때 지각해서 유치원 안 갔으니까.”

  “지각?”


  존은 그 말을 듣고 아아, 그날이었나 보군. 중얼거렸지만 셜록은 이마에 주름만 세울 뿐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듯 했다. 존은 셜록, 네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몫으로 남겨둔 시리얼 그릇에 우유를 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비키, 에밀리한테 들으니까 춤추기 싫어서 그랬다는데 맞아? 혹시 그래서 유치원 안 간 거야?”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빅토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가 부드럽게 물결쳤다. 저럴 때 보면 셜록과 빅토리아는 고집이 센 게 꼭 닮았다고 존은 생각했다. 그녀의 묵비권 행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셜록이 존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존, 내 직업이 뭐지?” 그의 의도를 파악한 존은 비웃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답했다.

  “…음. 훌륭하신 사립 탐정이지.” 그러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셜록이 덧붙였다.

  “그래, 경찰에서 몸소 자문하러 오는 최고의 사립 탐정이라고. 빅토리아, 이 파파가 모르는 건 없으니 애초에 숨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어제 오후 에밀리가 TV를 보며 어설프게 춤을 추는 모습을 존이 보고 칭찬했다가, 에밀리가 빅토리아는 춤추기 싫어하던데, 라는 뉘앙스의 말을 해서 에밀리를 붙잡고 얘기를 나누다가 사건의 전말을 알아낸 존이 나중에 셜록에게 빅토리아가 춤 발표회를 숨겼다더라, 고 전해준 게최고의 사립탐정이 사건 전말을 알아내는 방식이라면 거 참 탐정하기 쉽다며 존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한 이상 맞장구는 쳐야겠고 춤 발표회는 그도 가보고 싶었던 유치원 정례 행사였기에 빅토리아를 조금 꾸짖어두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 존은 셜록 편을 들어 주었다.


  “그래. 빅토리아. 파파 셜록은 모르는 게 없어. 그러니까 대답해 봐. 정말 춤추기 싫었니? ”


  두 아빠의 추궁에 질린 빅토리아의 시선이 점점 밑으로 향하더니, 결국 반쯤 울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린다.


  “너무 엉터리였단 말이야.”

  “뭐가?”

  “…춤이. 유치해. 추고 싶지 않았어.”


  셜록을 닮아 고고하고 자존심이 센 빅토리아를 생각하면 남들 앞에서 귀엽고 우스꽝스런 춤을 추는 것이 싫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어, 존은 거기서 일단락하려는 생각에 다음번엔 절대 그런 일을 비밀로 하지 말라고 빅토리아를 타일렀다. 그러나 셜록의 생각은 달랐다.


  “빅토리아,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야.”


  존은 입을 떡 벌렸다. 지금 저 말이 셜록 너님 입에서 나오는 겁니까? 방금 전에 내 앞에서 신문을 내동댕이친 당신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존이 말했다.


  “셜록, 지금 그 말은…”

  “물론 예외도 있지만.” 셜록이 존의 반박을 잽싸게 차단했다. 입을 벙긋거리던 존은 “정말 어이없군.” 이마를 감싸 쥐고 말았다. 그러던지 말던지 셜록은 빅토리아에게 당당히 요구했다.


  “빅토리아, 파파는 네가 앞으로 비밀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거가 필요해.”


  빅토리아의 눈망울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무슨 증거?”


  기다렸다는 듯 셜록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착각이겠지만, 존은 방금 셜록에게서 빨간 망토를 잡아먹는 늑대의 현신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발표회의 춤, 춰 봐.”


  셜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빅토리아가 박차고 일어났다. “싫어!!!!” 깜짝 놀란 에밀리가 숟가락을 입에 문 채 그녀를 본다. 이게 목적이었나… 존은 영악한 셜록의 머리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그러나 아빠의 마음은 같았기에 말릴 생각은 하지 않으며) 두 부녀를 번갈아 보았다. 셜록은 단호했다.


  “춰야 해.”


  그러자 빅토리아가 억울하다는 듯 따졌다.


  “왜 나만 싫은 일을 해야 해? 에밀리가 당근 안 먹는 건 봐 주면서! 파파 너무해!”


  얌전하던 빅토리아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본 존은 이러다 정말 두 부녀가 크게 싸울 것 같아 그녀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며 셜록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그러나 셜록은 존을 돌아보지도 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그시 에밀리를 보았다. “그럼 원하는 대로 공평하게 하도록 하지.” 으깬 감자를 다 먹어가던 그녀의 앞엔 거의 먹지 않은 당근 수프 접시가 놓여 있었다. 셜록과 당근 수프 접시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에밀리는 울상을 지었다. 아빠로서의 위엄을 실은 한마디가 에밀리에게 던져졌다.


  “다 마셔, 에밀리.”






:: 딸바보입니다 ::


  도난 사건 현장 탐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레스트레이드는 핸드폰을 든 채 멍하니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셜록을 보았다. 왜 그래? 물으며 그의 옆에 서니 셜록이 핸드폰 액정을 그가 보지 못하도록 몸을 약간 틀었다. 핸드폰 스피커에선 아이들의 노랫소리인지 말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동영상인가? 물으니 셜록이 씨익 웃으며 정지 버튼을 누르고 레스트레이드에게 말했다.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이란 정말 귀엽군. 물론, 내 딸들이라서 귀여운 거겠지만.”


  벙찐 레스트레이드를 뒤로 하며 셜록은 유유히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 언젠가 먹고 말테야(?) ::


  택시비를 내고 베이커가 앞에서 내렸을 때, 셜록의 코트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마이크로프트였다. 왼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오른손으로 코트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던 셜록은 짜증 섞인 표정을 지으며 수신 거부를 누르려다 잘못해서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셜록은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댔다.


  “왜”


  다짜고짜 “존에게서 다 들었다.” 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역시 받는 게 아니었다며 셜록은 잘못 누른 제 손가락을 저주했다.


  “뭘 다 들었는지 내 알 바 아니지만, 다 들었다면서 왜 굳이 나한테 다시 전화 한 거지?”

  “그거야 영상이 네게 있으니까. 셜록.”

  “영상?” 셜록의 눈썹이 꿈틀, 했다. 저편에서 마이크로프트의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빅토리아와 에밀리가 춤추는 영상. 어제 찍었다는 얘길 들었다.”


  셜록은 코웃음을 쳤다. “그게 왜?” 그러자 수화기 저편에서 마이크로프트가 예의 셜록이 가장 싫어하는 명령하는 투로 요구했다.


  “당장, 보내.”


  대꾸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셜록은 망설이지 않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마이크로프트는 꺼진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지금 그 행동을 후회하게 해 주지, 셜록.”




- 1화와 이어지는 글
- 스토리는 역시 가므님. 1화를 보시고 친히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사하셨으니 이건 쓰지않으면...!!!!!! 하며 나는 잉여롭게 연성을...



,
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