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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2. 5. 19. 17:59

셜록 :: too young, too cold




 


 반쯤 탄 담배꽁초를 떼어낸 입술이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자, 저 멀리서 신호처럼 누군가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나무 바닥의 삐걱대는 소리,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분주히 오가는 발소리 속에 자리한 마이크로프트는 덧대어 기운 천 조각처럼 주변 풍경과 부조화를 이루었다. 목소리를 높이며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소음과 음악소리가 뒤섞인 그 자리는 큰 인내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프트는 이미 한 시간 째 그곳에 앉아서 스스로를 시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동창-이름은 벌써 잊어버렸다-이 던지는 시시한 농담에 얼굴을 찌푸리며 쓴웃음을 짓던 마이크로프트는 저 멀리서 애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이마를 쓰다듬던 다른 손은 이미 애덤이 가져다주는 위스키 잔을 받아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맙군.” 표정이 고운 금발머리 청년은 그 인상대로 아마도 자주 웃느라 생겼을 눈가의 주름을 내보이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목이 긴 맥주잔을 들고 다니며 테이블마다 환호를 받는 그, 애덤 버나드는 오늘의 주인공이자 마이크로프트의 오랜 친구였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청년의 뒷모습이 친구들과 함께 건배를 외칠 때마다 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노랗게 빛났다.

 

 이제 막 풋내기 티를 벗어 던진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이 서섹스 시골 촌구석에 위치한 낡은 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으레 쓸 만한 청년들은 모두 런던으로 떠나고, 지난날의 영광을 추억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건 노인들의 몫이었으니. 그러나 오늘은 특별하게도, 애덤의 약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연고가 같은 친구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늘 먼지 날리는 이 펍의 주인 웨인 바클리는 북적이는 가게를 반가워하며 젊은 혈기들이 벌이는 약간의 소란스런 행동들은 묵인해주었다. 물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나온 흰머리 지긋한 노부부나,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텅 빈 집을 견디지 못하고 나온 중년들 같은 단골들 또한, 먼지 쌓인 장식물처럼 여전히 펍의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섹스 출신의 애덤 버나드는 마이크로프트와 오랜 친구 사이였다. 고등학교를 런던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로 함께 진학했으며, 옥스퍼드에도 나란히 합격할 정도로 수재인데다가 고향에서 그의 집안은 제법 재력과 학식을 갖춘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남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제 3자가 갖다 붙인 수식어일 뿐, 애덤은 대부분 그 나이 또래 청년들이 그렇듯 밝고 재밌는 성격을 가진 평범한 열아홉 살이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가족에 대한 이상은 드높아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빨리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조금 무모한 구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이크로프트는 그가 갑자기 약혼발표를 했을 때에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애덤이 가져다 준 얼음으로 희석한 위스키 한 잔을 앞에 두고 상냥한 미소를 띤 채 자리에 앉아 주위의 이야기를 들었다. 꼭 맞는 회색 베스트 속의 푸른 넥타이, 단정하게 빗어 넘긴 흑갈색 머리카락. 긴 손가락으로 와이셔츠 소매 끝의 커프스단추를 무의식적으로 어루만지며 자신을 둘러싼 일행들에게 성실히 대꾸하는 태도는 이 모임에 호의를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그의 하늘빛 눈동자가 종종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대화가 자신이 낄 필요 없는 시덥잖은 내용으로 흐를 때면, 마이크로프트는 슬쩍 눈을 돌려 펍 한 구석에 앉아있는 작은 인영을 가만히 응시하거나 때로 술잔 속으로 침잠했다.

 

 지금도 그랬다. 마이크로프트는 저 멀리 펍의 입구 쪽에 위치한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고, 동시에 그곳에 있던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소년이 고개를 숙였기에 그 조우는 오래가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는 테이블에 매달리듯이 앉아있던 검은 고수머리의 소년이 제 앞에 놓여있는 콜라 잔을 멀리 밀어놓은 채 연필로 무언가를 그리는데 열중하는 모습을 잠시간 지켜보았다. 그 소년은, 마이크로프트가 이 모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오랜만에 귀향한 마이크로프트를 반긴 건,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의 얼굴과 몇 안 되는 고향 친구들, 애덤의 약혼 발표, 그리고 못 본 새 더욱 자신만의 세계에 열중하게 된 작은 동생이었다. 서섹스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고 그 이상 길게 머무를 생각은 없었지만, 부모님은 가능한 한 오래 곁에 있어 주길 원했다. 그리고 방학을 맞아 마이크로프트처럼 고향에 돌아온 친구들 또한, 타지 생활의 지루함을 토로함과 동시에 예쁜 여자와 낡은 학교, 고리타분한 교수들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마이크로프트를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은-

 

어머- 귀여운 꼬마 신사분이 이 시간에 혼자 나와 있다니, 어쩐 일이야? 이봐. 웨인? 여기서 미아라도 보호하고 있는 거야?”

 

 높지만 결코 날카롭지는 않은, 그러나 술에 취하면 종종 목소리가 커지는, 마이크로프트가 잘 아는 여인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낚아챘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붉은 벨벳 드레스를 입은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 짧은 갈색 머리의 그 여인은 작은 술잔을 손에 들고 한껏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창백한 피부와 대비되는 푸른 눈,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 있는 테이블을 지나려다 말고, 한껏 몸을 굽혀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본 참이었다. 웨인은 반대편에서 테이블 위를 정리하다 말고 그녀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미아라니, 엘라. 그도 엄연한 손님이라고.” 그러자 엘라는 빈 술잔을 바에 올려놓고 소년이 앉은 테이블 위에 슬쩍 걸터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이크로프트는 턱을 괴고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녀는 서섹스 출신은 아니었지만, 곧 애덤과 결혼해서 엘라 탤봇이라는 이름을 엘라 버나드로 바꿀 여인이자, 애덤처럼 마찬가지로 마이크로프트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이봐, 소년. 이름이 뭐니?”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던 소년은 엘라를 향해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며 대답했다. “셜록.”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 셜록.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혼자 이런 데 올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것도 이런 늦은 시간에.” 엘라는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셜록은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를 피했다. “혼자 온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 대답을 들은 마이크로프트는 피식 웃음 지었다.

 

 눈치 빠른 셜록이니, 자신이 꽤나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었다. 평소에 함께 외출도 안 하는 형제가 이런 시간에, 더군다나 펍이라니. 마이크로프트는 그가 이방인처럼 한 구석에 앉아 존재감을 내비치려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에서 형의 외출을 방해했다는 겸연쩍음,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을 어색한 미안함을 읽어냈다. 하지만 그건 셜록의 잘못이 아니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서섹스에 좀 더 머무르는 걸 승낙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부모님이 셜록을 그에게 맡겨놓고, 일주일 간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난 것에 모든 원인이 있었다. 오전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는 가정부와 내니를 겸한 제인이 와서 셜록을 돌보아 주었지만, 그녀가 가고 나면 그 이후로는 오로지 마이크로프트가 그의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어색한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애덤의 약혼 축하 파티까지 겹치게 되자, 마이크로프트는 하는 수 없이 셜록에게 회색 코트를 입히고 목도리를 칭칭 동여매게 하여 펍으로 데리고 왔다. 동생의 보호자 노릇이 달갑지 않은 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 집에 셜록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의 동생은, 꽤 오래 못 본 동안 나이에 맞게 순진하거나 귀여운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지나치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누구에게나 다루기 힘든 영악한 아이라는 인상으로. 다만 순종적이지 않고 호기심 많으며 무모한 점은 여느 아이들과 같았다. 홀로 자라서인지 사교성이 뒤떨어지는 그를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괜찮을 거라고 그들을 위로했다. 어린 시절엔 누구나 다 그런 거라며. 마이크로프트 또한 그랬듯이. 그래, 본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셜록은 어린 시절 마이크로프트와 닮아 있었다. 외모 뿐 아니라 습관, 취향,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것과 두뇌활동을 좋아한다는 점까지.

 

 어느새 곁에 다가온 애덤이 허리를 굽혀 마이크로프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그가 보고 있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 “아아, 엘라가 또 시작이군. 하여튼 그녀는 잘 생긴 남자만 보면 추파를 던지는 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셜록을 지칭하는 그 색다른 호칭에 마이크로프트가 코웃음 쳤다. “그런 그녀가 자넬 고른 걸 보면, 남자 보는 눈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순 없겠어.” 그 말에 짐짓 정색해 보이며 애덤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래. 어쩌면 저 아홉 살짜리 소년이 그녀가 여태껏 고른 남자들 중 가장 나은지도 모르겠군.” 그 농담에 마이크로프트는 진심으로 실소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이크로프트의 눈동자는 여전히 셜록과 엘라의 모습을 뒤쫓았다. 두 사람은 속닥거리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더니, 엘라는 셜록이 그리고 있는 것에 관심을 보이며 그것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셜록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엘라의 말에 고분고분 대꾸하는 것을 보니 그녀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안심하며 마이크로프트는 가슴 포켓에서 얇은 철제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그러자 애덤은 옥스퍼드에서, 그리고 고등학교 기숙사 뒤편의 비밀스럽고 은밀한 장소에서 마이크로프트와 담배를 나누었던 역사가 담긴 익숙한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결코 기분이 좋을 때 피운 적이 없는 담배 연기가 폐부를 깊숙이 찌르자 마이크로프트는 반사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럼 그녀를 포기할 텐가?” 그 질문은 언뜻 너무 뒤늦은 농담처럼 들렸다. 자신이 내뿜는 희뿌연 연기 속으로 얼굴을 감추며 마이크로프트는 담배를 꺼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안 그랬더라면 애덤이 필요 이상으로 굳어지는 자신의 표정을 보고 수상함을 느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애덤은 순진하게도 파안대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그럴 순 없지.” 마이크로프트는 함께 웃지 않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체념하듯 떨어진 건 찰나였다.

 

 애덤 버나드의 약혼과, 그 상대가 엘라 탤봇이 될 거라는 예상은 그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엘라는 그들이 고등학교 시절, 이제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누군가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학생이었다. 그때 그녀는 지금보다 머리가 더 길었고, 조금 더 수줍게 웃을 줄 알았다. 그녀는 두 남자가 가지고 있던, 여자와의 데이트란 의외로 지루하고 시시하다는 생각을 버리게 해 준 최초의 이브였다. (그녀를 처음으로 이브라 지칭한 건 애덤 쪽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 표현에 그저 웃었다.) 그리고 애덤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빛나는 눈, 설레임에 가득찬 말투. 엘라 탤봇이라는 이름은 그의 혀 끝에서 달콤한 시어처럼 숭배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라와 애덤이 은밀한 시선과, 엉키는 손, 비밀이 담긴 미소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는 걸 알게 된 마이크로프트는 그 관계를 해치지 않으려면 어중간하게 서 있던 자신이 한 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우정은 믿을지언정 사랑과 같은 깊은 관계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다고 점차 확신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비친 애덤과 엘라는 진정 성경책에서나 나오는 애덤과 이브일 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천국은 그에게서 멀었다. 한편으로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이 선악과를 건네 두 사람을 타락시킬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으나, 그건 진정으로 그가 바라는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타락해버리는 것은 마이크로프트 그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비로소 그는 체념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남은 위스키 잔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이크로프트는 애덤의 어깨를 두드렸다. “곧 있으면 엘라가 자넬 버리고 셜록을 택할 것 같으니, 그렇게 되기 전에 난 이만 동생을 구하러 가야겠어.” 그러자 애덤이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 고맙군, 마이크로프트. 부디 그녀를 내게 돌려보내줘. 자네의 동생은 내가 보기에도 몹시 매력적이지만, 너무 어리잖아.” 이내 익살을 부리며 마이크로프트가 피우던 담배를 빼앗아 입가에 머금는 애덤의 얼굴은 벌써 몇 잔을 마셨는지 술기운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미소 끝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한숨도 이내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찾아왔던 사람들이 서서히 빠져나가 군데군데 텅 빈 홀에서 웨인은 콧노래를 부르며 산더미 같이 쌓인 컵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엘라에게 건네줄 칵테일을 주문한 마이크로프트는 바에 기대어 엘라와 셜록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엘라의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허공에 번지며 그녀가 외쳤다. “, 아니야. 셜록. 네가 잘못 봤어.” 셜록은 그런 그녀를 덤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의아해진 마이크로프트는 웨인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사람들을 헤치며 느릿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엘라.”

 

 마이크로프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하자, 셜록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노트에 시선을 고정했다. 웃음을 멈춘 엘라는 몸을 돌렸고, 희고 곧은 두 팔이 곧 마이크로프트의 목에 감겼다. “, 마이크로프트.” 키가 작은 그녀는 마이크로프트를 포옹하기 위해 두 발을 한껏 올려야 했고 도와주듯 허리를 숙인 마이크로프트는 그 마른 등을 한동안 토닥이며 감싸 안았다. 드물게도 부드러운 표정을 한 마이크로프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파티의 주인공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피앙세를 놔두고.”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이 마이크로프트의 볼을 간질였기에 그는 그 속에 얼굴을 파묻고 한껏 들이마셨다. 그녀에게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꽃향기와 달콤한 칵테일 향이 풍겼다. “귀여운 작은 신사와 이야기하고 있었지.” 몸을 뗀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셜록에게로 몸을 돌렸다. 쏟아지는 시선에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하며 셜록은 제 형을 보았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엘라에게 셜록을 소개했다. “, 소개가 늦었군. 이쪽은 내 동생, 셜록 홈즈.” 그러자 엘라의 큰 눈이 더욱 더 동그랗게 뜨였다. “동생이라고? , 세상에. 네가? 네가 그 홈즈 가의 작은 도련님?” 이 이상한 호칭에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를 다시금 올려다보았고 그가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하길 재촉하자, 하는 수 없이 단답했다. “.” 마이크로프트는 동생과의 동행을 변명하고 싶어 했지만, 엘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네가 마이크로프트의 얘기를 꺼낸 거로구나?” 웃음을 참으며 엘라가 말하자 마이크로프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 얘길 했다고? 무슨?” 셜록의 얼굴에 잠깐의 죄의식이 스쳐 지나갔고, 마이크로프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마이크로프트의 팔짱을 낀 엘라는 그의 팔에 머리를 기대었다. “내가 미스터 홈즈의 여자 친구냐고 묻던데.” 그 당돌한 내용에 마이크로프트는 잠시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엘라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사랑스런 미소를 지을 때까지. “물론 미스터 홈즈도 애덤 만큼 멋지지만.”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말을 꺼내려 했지만 한 발 앞선 셜록이 먼저 끼어들었다. “무례를 범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러자 엘라가 손을 뻗어 셜록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럴 수도 있지. 네 형은 정말 멋진 사람이야. 그렇지 않니? 얼른 좋은 피앙세가 나타나야 할 텐데.” 그제야 마이크로프트는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지루함과 불쾌감,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자주 내보이곤 했던 그 미소를.

 

 셜록은 방금 전까지 그리기에 열중하던 노트를 뜯어 그 윗면에 무어라고 끄적였다. 그리고는 엘라에게 그 종이를 내밀었다. “결혼 축하드려요.” 그것을 받아든 엘라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고마워, 셜록.” 그 종이 위에는 알 수 없는 그림과 함께 엉망인 글씨로 'happy wedding'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마이크로프트에게 말했다. “내가 이걸 달라고 했거든. 뭘 열심히 그리나 봤더니 서섹스의 비밀 지도라지 뭐야. 해적이 보물을 감춘 곳을 표시했다는데, 정말 멋지지 않아? 보물이라니. 마이크로프트. 게다가 이 지도를 봐. 무척이나 세세하다니까. 셜록은 정말 똑똑한 애야. 자랑스럽겠어.” 이 칭찬에 셜록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엘라는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다시 몸을 돌려 마이크로프트를 끌어안았고, 그는 엘라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결혼 축하해, 엘라.” 축하의 말은 무덤덤했다. 종이를 쥔 손을 흔들어 보이며 그녀는 형제의 곁을 떠나 자신의 피앙세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멀어지자마자 마이크로프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보물 지도라...”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지. 저건 그냥 지도야. 심심풀이로 그린.” “그래. 지도일 뿐이겠지, 셜록. 그걸 핑계로 네가 그녀와 대화를 나눈 이유가 있을 테고.” 순진함을 무기로 삼아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동생의 모습은 감탄스럽기도 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되려 조금 두려워졌다. 그들이 형제답게 진정으로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왜 그런 얘길 한 거냐, 셜록.” 노트를 덮고 콜라 잔에 꽂힌 빨대를 휘젓던 셜록은 형의 추궁이 시작되자 말없이 그것을 질겅이기 시작했다. “네가 엘라를 본 것이 오늘 처음이라 해도, 그녀가 내...” 마이크로프트는 말을 끊고 작게 뜸을 들였다. “여자 친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을 텐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사방은 엘라와 애덤의 결혼을 축하하는 건배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서 셜록이 그걸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다. 마이크로프트는 의문스러웠다. 이 영악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셜록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난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형은 쭉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잖아.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여기 온 이후부터, 계속.”

 

 이 갑작스런 폭로에 마이크로프트는 입술을 깨물고 엘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애덤과 함께 셜록이 준 종이지도를 보며 새빨간 열매 같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너무 시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드는.

 

 “내가 틀렸어?”

 

 셜록이 되물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눈을 감았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모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를 잘 숨기고, 예의바르고 성실하게 애덤 버나드와 엘라 탤봇의 친구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했는데. 펍의 한 구석에서 자신을 관찰하던 동생에게만은 숨기지 못했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생각했다. 최악이로군. 어린아이들 특유의 솔직함이 담긴 셜록의 한마디에, 그의 마음속에서 억눌렀던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슬픔. 혹은 아쉬움. 상대에게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놓은 적도 없기에 적당히 두었던 호감.

 

 그러나 마이크로프트가 셜록보다 나은 게 있다면, 거짓말에 능숙한 어른이라는 점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솟아오르던 감정을 억누르고 겨우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틀렸어.”

 

 얼굴을 찡그리며 셜록이 반문했다.

 

아니라고?” 콜라 잔에서 반쯤 녹은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셜록이 대꾸했다. “하지만 형은-”

 

 마이크로프트는 순진하게 반박하려는 셜록의 눈에서, 그가 그저 자신의 관찰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일 뿐, 자신이 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고 있으며, 그 속에 비난하려는 기색 또한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의 미련함을 용서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이 가진 선악과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는 이미 오래 전에 그 열매를 베어 물었는지도 모른다. 제 어린 동생조차 자신의 죄악을 눈치 챌 정도로, 감추지 못한 자신의 욕망이라니.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를 보았고, 곧 입을 다물었기에 하려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본 형의 얼굴엔 놀랍게도 자신에 대한 질책이 아닌, 깊은 우울이 담겨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조용히 셜록의 옆자리에 있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돌아가자. 너무 늦었어.” 셜록은 그가 자리를 모면하기 위한 핑계를 대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걸 지적할 정도로 눈치 없는 동생은 아니었기에 그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어봐야 걱정할 부모님은 집에 없잖아.” 그저 투덜거리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대꾸없이 마이크로프트는 코트를 셜록에게 입혀주었다. 셜록이 제법 능숙한 손놀림으로 코트의 단추를 잠그는 동안 마이크로프트는 머플러를 들어 셜록의 목에 둘둘 감았다. 무성의한 손짓 덕에 얼굴까지 푹 싸이자 셜록은 짜증을 내며 두 손으로 머플러를 끌어내렸다. 조심스레 고개를 드니 마이크로프트는 그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묘한. 셜록은 자신이 발견해 낸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마이크로프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아챘다.

 

정말 내가 틀렸다고?”

 

 자신을 올려다보며 재차 확인하는 셜록에게 마이크로프트는 손을 내밀었다.

 

사람은 누구나 틀리기 마련이니 그런 것들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셜록. 하지만 네 시도는 나쁘지 않았어.”

 

 뾰루퉁해진 셜록의 작은 손이 마이크로프트의 손을 잡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의 거짓말이 통한 것에 안도했다. 그러나 언젠가 셜록이 어른이 되면 자신의 거짓말조차 쉽게 간파할 날이 올 것이다. 홈즈가의 피를 이어받은 이 동생은 누구못지않게 똑똑하고, 영민하니까.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보고 있었던 것이 엘라가 아닌, 엘라의 곁에 있던 애덤 버나드였다는 걸 알아챌는지도 모르지. 마이크로프트는 입가에 미소를 거두었다. 아직은 모르는 게 나을 것이다. 사랑과 질투. 체념과 우울 같은 감정까지 알기엔 셜록은 너무 어리니까.

 

 동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펍을 나서기 전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돌려 엘라와 애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곳이 천국이라는 듯, 애덤과 이브는 서로의 손을 쥔 채 다정하게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과 함께 천국의 문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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