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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1. 1. 28. 09:00

셜존 :: 221B Baker의 아이들 - 6




:: 도박은 좋지 않다 ::


  셜록은 눈을 들어 빅토리아와 에밀리에게 키스하고 있는 존을 보았다. 어느덧 늦은 밤이었다. 빅토리아가 무어라 존에게 속닥거린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존은 다시 그녀의 볼에 키스를 하고 놓아주었다. 그들을 닮은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가고, 존은 소파에 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 셜록을 돌아보았다. 셜록은 하루 종일 잠들었다 지금 막 깬 참이었다.

  셜록 본인은 요 며칠간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지루해’로 일관했지만 그가 그렇게 늘어진 이유를 존은 잘 알았다. 오늘은 그가 아무런 사건도 맡지 않은 무료한 나날을 보낸 지 딱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존의 눈에 그는 지루하다 못해 지친 듯 보였다. 그리고 그의 지루함이 오늘 특히 더 심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고 빅토리아가 존에게 몰래 말했다) 마침 볼 일이 있었던 존이 오늘 아침 일찍 나간 후 저녁 늦게야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빅토리아는 자러 가기 전, 존의 귀에 속닥거리며 파파 셜록은 파파 존이 없으면 더 지루해해요, 라고 제보했다. 정말 그런 건지 존이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존은 자신이 셜록의 심심풀이 땅콩이라도 되는 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셜록은 언제나 존을 괴롭히며 무료함을 달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존은 그걸 참아주는데 이골이 난 상태였고.


  “셜록, 그만 자고 일어나. 설마 하루 종일 잔 건가?”

  “늦었군, 존.”


  잠이 덜 깬 듯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그를 보며 존은 혀를 쯧쯧 찼다. 사설탐정 셜록 홈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그저 잉여 인간 그 자체라는 걸 누가 알까. 오로지 존과 두 딸들만이 아는 셜록의 또 다른 면이었지만 차라리 모르고 싶다고 생각하며 존은 그의 발을 아래로 밀어내고 소파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지루하면 차라리 뭔가 연구를 해, 셜록.”

  “내 실험 도구를 죄다 찬장 속으로 집어넣고 잠가 둔 사람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놀랍군. 뭐, 열쇠 따위 없어도 그까짓 거 쉽게 언제든 열 수 있긴 하지만.”


  잠결이어서인지 튀어나온 이 놀라운 고백에 존은 마음속으로 찬장에 열쇠를 하나 더 달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실험 도구를 쓰지 않은 연구도 있잖아.”

  “그런 거라면 이미 하고 있네. 그렇지만 결과를 도출하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나중에 내가 이런 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군.”


  셜록이 소파에 드러누워 존의 허벅지에 두 다리를 척 올려놓으며 말했다.


  “무슨 연구인데?”

  “흠. 어릴 때 부모로부터 키스를 많이 받은 아이의 발달상황에 대한 연구. 범죄 심리학에서는 범죄자의 유년시절의 경험이 나중에 범죄를 일으키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범죄자들 중에는 그런 것과 관련 없는 케이스도 많지만, 대부분 범죄자들은 유년 시절에 부모와의 접촉이 충분하지 않거나 매우 나빴어.”


  존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연구한다는 거지?”

  “간단해. 지난 며칠 동안 난 하루 종일 빅토리아와 에밀리에게 자네가 몇 번 키스하는지 세어봤지. 평균 17번이더군. 에밀리에겐 한두 번 더 많았는데 자기 전에 굿나잇 키스에서 그 차이가 났어. 빅토리아는 한 번이면 족하지만, 졸리면 칭얼대는 에밀리를 달래기 위해 자네는 두어 번 더 키스를 하거든. 대체로 자네가 이 평균 17번의 키스를 한다는 조건 하에, 12년쯤 뒤에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어떤 아이들이 되어 있는지 관찰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물론 이렇게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훌륭하게 자랄 거라 생각하네.”


  “별걸 다 세봤군.” 벙찐 존을 보며 셜록은 덧붙였다. “참고로, 자네가 나에게 하는 키스는 하루 두 번도 많은 편이더군. 내가 12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두고 보는 것도 좋겠어.”


  12년 뒤에 훌륭하게 자라 있을 빅토리아와 에밀리를 생각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지만, 저런 괴짜 셜록에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권태기를 지나 무감각해져 있을 12년 뒤를 생각하니 존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


  “하루에 두 번 밖에 키스를 안 한다고? 정말 내가 그랬나?”


  존의 찜찜한 표정을 본 셜록은 다리를 내리고 그와 나란히 앉았다.


  “어쩔 땐 굿나잇 키스 한 번이지.”

  “그래서 방금 전에 빅토리아가 파파 셜록한테 키스해주면 좋아할 거라고 한 거군.”


  빅토리아가? 셜록의 눈썹이 꿈틀 했다. 존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연구 내용에 대해선 아이들에게도 비밀로 했는데. 대체 빅토리아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한 거지?” 셜록은 의아해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무릎을 탁 치며 역시 내 딸이라 무엇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지 잘 아는 거라고, 나중에 범죄 심리학을 공부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존이 아이의 미래를 망치지 말라고 반박하자 셜록이 말허리를 잘랐다.


  “자네가 하루 두 번이란 말에 신경 쓰나 본데, 괜찮아. 나는 이미 다 자랐기 때문에 범죄자가 될 확률은 적네. 흠. 다만… 그때쯤 애들도 다 커서 떠나보내고 나면 쓸쓸해지겠지. 범죄는 그 때에도 많겠지만 요즘 범죄자들은 하나같이 독창성이 떨어지거든. 그런 일들만 해결하다보면 난 지루해질 거야…. 너무 지루해져서 정말 범죄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안 그런가, 존?”


  존이 셜록의 이마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열은… 없는데. 오늘따라 헛소리가 심하군.” 존의 손목을 잡은 셜록이 난데없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그에게 제안했다.


  “만약 자네가 원한다면 자네에게 연구 주제를 내어줄 수도 있어.”

  “무슨 연구? 난 관심 없어.”


  그러나 셜록은 존의 말은 들은 체도 않았다. 멀뚱하게 있는 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점점 가까이 대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윽하게 속삭였다.


  “키스를 하루 두 번에서 하루 열 번으로 횟수를 늘렸을 때 12년 뒤 내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지 않나? 정말 좋은 연구 주제라고 난 생각하는데.”


  피식 웃는 셜록의 얼굴을 흘겨보며, 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데 내 찬장 열쇠를 걸지.”


  다가오는 셜록의 얼굴에 존은 눈을 감았고, 입술이 맞닿기 전 그의 마지막 속삭임을 들었다.


  “그러면 자네와 자네 찬장 열쇠는 머지않아 내 것이 되겠군. 존. 사람은 누구나 다 변하기 마련이야.”






:: 그 댁의 아드님은... ::


  겨울 상품 세일을 하고 있는 백화점에서 홀로 여자아이들을 위한 옷을 구경하는 건 이전의 존에겐 꽤나 어려웠던 일이었지만 지금의 존은 점원의 안내를 받으며 요즘 아이들은 이런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는 편이죠, 누구나 공주님이 되길 원하니까요. 라는 얘기를 귀담아 들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점원의 말에 반쯤 혹해 빅토리아에겐 빨강 코트가 좋을까 분홍 코트가 좋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존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셜록이었다. 그러나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튀어나온 목소리는 존을 놀라게 했다.


  - 파파!

  “빅토리아?”

  - 파파가 방금 접시 두 개랑 컵 하나를 깼어.

  “뭐? 셜록이?”


  순간 높아진 존의 목소리는 깜짝 놀라는 점원의 눈치에 다시 낮아졌다. 안 그래도 셜록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나올 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찜찜해하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적중하다니. 물론 그 무슨 일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존의 마음속에서 암암리에 지목하고 있던 사람은 두 아이들이 아니라 셜록이었다.


  - 응. 찬장에서 현미경 꺼내다가 그랬어.


  현미경이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말하는 빅토리아가 대견했지만 그 내용은 참담했기에 존은 한숨을 내쉬며 소곤소곤 말했다.


  “다치진 않았어? 빅토리아나 에밀리 둘 다 괜찮아?”

  - 괜찮아, 파파. 근데 부엌이 엉망진창…


  이야기는 거기서 끊겼다. 잠시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빅토리아가 응- 하고 대답했다.


  - 저녁은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사오라고 파파가 전하래.


  존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실험을 한 거야, 셜록. 이쯤 되니 파트너와 함께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아니라 혼자 아이 셋을 키우는 것 같은 기분이다. 화가 났지만 화 낼 상대는 빅토리아가 아니기에 존은 침착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마치 그러면 셜록이 들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소리 높여 외쳤다.


  “어질러 놓은 거 다 치우라고 해! 안 그러면 저녁 안 줄 거라고!”

  - 응. 끊을게. 사랑해 파파.

  “…사랑해, 빅토리아.”


  사랑의 위로와 수화기 너머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에 조금 화가 난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이들은 어떤 상황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늘 밝았다. 그래서 존은 늘 고마웠다. 다음번엔 셜록이 아니라 두 아이들에게 셜록을 잘 부탁한다고 말한 후에 외출해야 할 판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던 존은 점원과 시선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었다. 점원이 다 알겠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아이들은 특히 방 어지르는 걸 가장 좋아하죠. 누가 그렇게 활기찬가요? 꼬마 숙녀?”


  그녀의 작은 오해에 실소한 존이 어깨를 으쓱이며 맞장구쳤다. “아뇨, 큰 아들 녀석이오.” 그리곤 덧붙였다. “항상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거든요.” 그러자 점원이 이해한다는 얼굴로 자기 아들도 어릴 때 엄청난 말썽꾸러기였다고 말해 참지 못한 존을 폭소케 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떼면 이런다니까요.” 존은 점원에게 미안해하며 다음에 사겠다고 말한 뒤 매장을 나섰다. 등 뒤에서 점원이 덧붙였다. “다음에 아드님 선물 사러 오세요. 예쁜 남자 아이들 옷도 많아요.”




- 찬장에 보통 열쇠도 달려 있나요? 라는 건 묻지 말기로 합시다... 울집엔 없지만. 존이 빡쳐서 만들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지못미 존
- 마지막에 추가 글은 집에 갔더니 빅토리아는 셜록한테 부엌 치우라고 잔소리 하고 있고... 뭐 그런 걸 쓰고 싶었는데 결말이 나질 않아서 ㅠㅠㅠㅠㅠ 걍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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