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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2011. 7. 31. 06:00

셜존 :: 流



赤流

눈을 감자, 잊혀져 있던 그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온통 붉었다. 터져버린 풍선처럼, 새빨간 자국들이 산산조각 난 그의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질척한 그것들을 끌어 모으며 존은 흐느꼈다. 그의 흰 목과 선혈이 새어나오는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그렇게 하면 모두 멈추어 그가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 듯이. 존은 그의 가슴에 귀를 대어 보았지만 익숙하게 쿵쾅대던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존이 외쳤다. 뜨겁게 흐르는 눈물은 붉은 피와 섞이지도 않고 두 갈래로 나뉘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선혈은 구멍에서 폭포수처럼 뿜어 나오더니 조용히 고여 생이 멈추었음을 알렸다.

존. 끊임없이 울고 있는 그를 상냥한 목소리가 흔들어 깨웠다. 왜 울어요, 진정해요, 존. 따듯하게 감싸오는 그녀의 체온에 존은 금방이라도 통곡할 것처럼 입을 벌리며 끅끅거렸다. 존은 손을 뻗어 그녀의 모든 것을 움켜쥐고는 아프도록 끌어당겼다. 물컹한 그녀의 가슴에서는 그토록 바라던 맥박치는 소리가 들렸다. 둥그렇게 몸을 말고 우는 존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녀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존, 괜찮아요, 그러니까… 언젠가 들었던 악몽들이 현실을 침범해 올 때면 그녀는 위로해야 하는 것이 그인지 그의 꿈인지 알지 못한 채 다만 중얼거렸다. 존. 그만 울어요. 한동안 서러운 몸부림을 가라앉히려 애쓰고는 젖혀진 이불을 끌어 덮어 준다. 그의 눈물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는 한숨에 저민 손이 안쓰러워, 이번엔 그녀가 입술을 깨물고 슬픔을 참아냈다. 존.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흐르게 놔두어도 멈추지 않는 먹먹함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언제까지 그를 태아처럼 오그려 울게 만들 것인지를. 그렇게 슬픈 새벽이 갔다.




110110






白流

묵묵히 토스트를 굽고 잼을 바르는 아침은 그것들이 서걱거리는 소리만큼이나 익숙했다. 물을 끓여 홍차를 준비하는 침묵 속에서 존은 밤 속의 악몽이 없었던 것처럼 또 하루의 삶을 맞이했다.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으면서 버릇처럼 틀어놓은 TV에서 아나운서가 읊어대는 소식은 마치 오늘도 어제와 다를 게 없다는 듯 전날 밤의 것들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일부러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새로운 것은 없었다.

morning? 빈 옆자리에 습관처럼 손을 뻗었다가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나서 식탁에 앉은 존을 향해 웃었고, 미소를 얹은 대답을 들었다.
은색 파자마가 그녀의 몸 위에서 물결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존은 어젯밤 꿈같은 일들이 지나치게 생생하다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다정했던, 온기를 품은 손. 흐느끼던 자신을 끌어안은. 울었던가? 그랬겠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두 장째의 토스트에 잼을 발랐다. 마주한 그녀의 앞에 놓인 홍차의 진한 향기가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좋은 향이었지만, 언제부턴가 그는 그 씁쓸함을 견딜 수가 없어 더 이상 홍차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홍차 대신 빈 머그컵에 우유를 따르며 그 누군가를 떠올린 그는- 과거로부터 도망치려는 마음과 반대로 그것들을 붙들어 놓으려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가 얼마나 이상한지 생각했지만, 애써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무심코 테이블을 본 존은 그 위에 쌓여있는 자질구레한 고지서들을 보았고, 그녀 대신 오늘 은행에 들렀다 출근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무덤한 말 속에 숨어있는 진심을 의심했지만 되묻지 않았다. 그건 언젠가 자조하며 그가 그녀에게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차가 밀려서 베이커가에 멈춰 섰는데, 이전에 우리가 살던 집이 눈에 들어오더군. 근데 그 집 2층의- 커튼이 쳐진 창가에 익숙한 인영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어. 얼마나 놀랬는지 심장이 쿵쿵 뛰더라니까. 정말 바보같지. 그러나 그건 조금도 바보같은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짓는 존의 그 미소가 더없이 슬펐다. 한동안 그랬던 것처럼, 다시 그는 우연을 가장하고 베이커가로 차를 몰았다가, 신호대기로 멈춘 거리에서 그리움을 담고 그 집을 올려다 보겠지. 잠시 추억에 빠져들 것이고, 그들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 짧은 기억들을 더듬다가 마지막엔 결국 그의 부재로 슬퍼질 것이다. 그곳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러나 추억은 이리도 강렬하고 잔인했다.
끝 모를 슬픔을 옆에서 유일하게 지켜본 그녀는 그러나 그것을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 바싹 마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닦아낼 수 있을 만큼 젖어드는 것으로 그칠 거라고 믿었기에. 그러나 한 사람을 위해 흘릴 수 있는 눈물은 대체 얼마만큼인 걸까. 가늠할 수 없었던 그녀는 오늘도 위로의 말을 건넬 새벽을 준비하며 조용히 그러라고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존은 무심코 우유팩에 손을 뻗었다가 그것이 빈 것을 깨달았다.




110415





黑流

잠에서 깬 건 옆자리의 남자가 죽기 직전의 새처럼 푸드덕 거렸기 때문이었다. 무의미한 날갯짓. 목이 졸리는 것처럼 그는 끙끙댔고 이어 몸을 몇 번 뒤척이더니 숨이 끊어진 것처럼 잠잠해졌다. 아침이 찾아오기엔 아직 이른 길고 긴 밤이었다. 어둠 속에서 머리맡에 던져  두었던 핸드폰을 더듬어 시계를 보고, 셜록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낯선 이불은 기분 좋은 남자의 열기를 머금고 지난 밤 몇 번이고 그의 몸에 휘감기며 달라붙었지만, 그 뿐, 지금은 그 주인이 무슨 꿈에 질식했는지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귀찮다는 듯 손을 뻗어 스탠드의 노란 빛을 밝히니 남자가 멈춘 숨에서 깨어나 다시 움찔거렸다. 미간에 생긴 옅은 주름. 작게 벌린 입술이 웅얼거린다. 그 모양을 내려다보던 셜록은 다시 불을 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을 켰다. 베개를 파고든 남자의 머리가 신경질적으로 웅크러들었다.
죽은 자들은 내일이 없고 그렇기에 빛을 잃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제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눈부신 빛이 주는 삶의 부름에, 죽은 자들의 무덤 속에서 기상起牀하는 것으로. 그것이 산 자의 순리라면 순리겠지만, 문득 셜록은 궁금해졌다. 악몽에 시달리는 그 마지막에, 남자를 죽음 속에서 밀어내는 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신비해서 셜록은 몇 번이고 스탠드의 불을 껐다 켜다가, 마지막엔 남자의 몸이 크게 들썩이자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존. 조각조각 갈라지는 목소리였다. 반쯤 뜬 눈이 어둠 속에서 헤매다 길을 찾았다. 셜록은 그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머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셜록. 몸을 일으켜 앉은 그를 올려다보며 존이 날갯짓하듯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왜 안 자는 거야? 그러나 셜록은 다른 말을 했다. 악몽을 꿨군요. 그러자 존은 제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 눈동자엔 어느새 빛과 함께 그림자가 스며들어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랬나. 셜록은 그 애매한 말에 단언했다. 그랬어요. 그러자 존은 의식적으로 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셜록을 향했다. 그냥 꿈이었어. 그러나 뒷말은 감춰졌다. 빗발치는 총탄과, 스며드는 제 것이 아닌 핏물, 그리고 그것들이 붉게 퍼져가는 속에서 누군가를 잃을 뻔한, 그런-
하지만 굳어진 표정에서 단번에 셜록은 남자가 물속으로 잠겨 들어가던 날의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꿈들은 자신이 곁에 있을 때 더욱 그를 괴롭힌다는 것도. 몸을 웅크리며 붉은 피를 닦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품 한 가득 자신을 안고 몸서리를 치던 남자의 모습이- 가물거리는 속에서도 셜록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이미 먼 옛날의 일이지만 꿈속의 기억은 언제든 뒤엉켜 남자는 발작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셜록은 그가 반복하며 느끼고 있을 슬픔과 뒤늦은 후회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가끔은 너무 생생해서 꿈이 현실과 구별이 가지 않을 때도 있어. 남자가 쓰게 웃으며 말했던 것을 셜록은 떠올렸다. 혹시 지금도 그랬습니까. 그러자 그는 아니라고 말했다. 네가 날 깨웠잖아.
셜록은 그제야 자신이 남자에게 빛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고통에 사그라지는 의식 속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죽은 자들이 꾸는 악몽 속에서 마지막에 그를 밀어내 일으킨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고. 이 간단한 답에 셜록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던 존이 손을 내밀어 셜록의 다리를 토닥였다. 깨워준 건 고맙지만 밤 샐 거 아니라면 얼른 자. 그리고는 날개처럼 이불을 들어 셜록을 독촉했다. 셜록은 곧 잠에 빠질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당신을 깨운 거였어요. 중얼거리며 그 이불 속으로 몸을 뉘이자 존이 셜록의 몸을 베개처럼 끌어안으며 이게 무슨 잠꼬대냐는 식으로 대꾸했다. 그래. 그러니 다음에 셜록 네가 악몽을 꾸면 내가 깨워주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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