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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2. 31. 00:00

마안/셜존 :: Happy New Year!



  창 밖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마이크로프트는 눈을 떴다. 그 소리는 언젠가 템즈 강가에서 쏟아지는 불꽃들을 보며 들었던 소리보단 작았지만 심장은 그 울림을 기억하는 듯 쿵쿵거렸다. 잠시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던 그는 눈앞에 검고 긴 머리카락이 물결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자신이 런던 아이 근처의 호텔 스위트룸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 속에서 마이크로프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에게선 장미 향기가 났다. 그의 긴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 닿기도 전에 그 머리카락의 주인이 고개를 돌려 생긋 웃었다. “Happy New Year.” 마이크로프트는 안시아의 미소에 이끌려 마주 웃고 말았다.


  “12시가 넘었어요, 마이크로프트.”


  이럴 때 잠만 자고 있는 거냐는 질책처럼 들려 마이크로프트는 으음, 하며 이불을 들어 올려 팔을 뻗었다. 품 안으로 굴러 안긴 안시아의 몸을 그의 두 팔이 끌어안는다. 부드러운 살결과 따듯한 체온을 느끼며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하니 간지러워 몸을 뒤튼다. 그것도 잠시, 안시아는 이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녀의 습관에 마이크로프트는 다만 그녀의 손가락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라도 온 건가.”

  “그 반대예요. 새해잖아요.”

  “새해 인사 메일?”


  민첩하게 손가락을 놀려 문자들을 만들어내는 안시아를 보며 마이크로프트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ha..p..py...ne..w...yea...r.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누가 메일을 보내나요. 텍스트랑 트위터죠.”

  “트위…터라고?”

  “네. 트위터요. 보스는 안 하시잖아요. 하면 제가 팔로잉 할 텐데.”


  그 짧은 순간에도 메시지가 도착한 듯 여러 번 진동이 울리고 그녀는 그 작은 기계에 수많은 글자들을 쏟아내 전송 버튼을 누른다. 팔로잉? 마이크로프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자네는 언제나 날 따라다니잖나.”


  영국 국방성의 두뇌라고까지 불리는, 이 비밀스런 거물의 바보 같은 말에 안시아는 핸드폰을 쥐고 깔깔거리며 웃어버렸다.

  “그렇죠. 보스, 전 당신의 비서니까요.” 너무 웃어대 숨을 몰아쉬는 안시아를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그녀가 왜 웃는지, 트위터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처럼 손가락을 놀리는 일은 딱 질색이니 앞으로도 그걸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폭죽 터지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던 바깥은 어느새 조용해졌다. 해가 바뀌었다지만 숫자 맨 뒷자리가 0에서 1로 바뀌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1월 1일이었다. 몇 개의 메시지를 더 보낸 안시아는 등 뒤의 마이크로프트가 침묵에 잠겨있자 손에서 핸드폰을 놓고는 그를 향해 뒤돌았다. 이 피곤한 얼굴을 한 보스는 지나치게 똑똑한 탓에, 수많은 업무들을 과다하게 짊어지고 생각하느라 깊이 패여 지워지지 않는 주름을 자신의 미간에 만들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요즘 그녀의 보스는 다른 업무들보다도 그의 혈육에 관해 걱정하느라 내내 찌푸린 상이었다. 그런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안시아가 물었다.


  “새해 인사 텍스트라도 보내지 그래요?”

  “누구한테?”

  “셜록 말이에요.”


  낮고 허스키하지만 다정한 그녀의 목소리는 아쉽게도 그를 달래는 데 실패했다. 마이크로프트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전 같았으면 홀로 런던에서 지낼 셜록을 생각해서 싫어하는 그를 끌고 본가로 내려가거나 했겠지만, 그의 특별한 메이트가 함께 있는 지금 마이크로프트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지금 안시아와 함께 있는 거겠지만. 자신을 올려다보는 안시아의 깊은 눈을 바라보며 마이크로프트는 새해를 달콤한 장미향에 휩싸여 맞이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안시아가 제안했다.


  “그럼 제가 대신 보내드릴까요, 보스.”

  “뭘?”

  “셜록에게 텍스트로 Happy New Year 라고….”

  “관두게.”


  마이크로프트의 만류에도 개의치 않고 안시아는 머리맡에 놓인 보스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럴 필요 없다는 그에게, 소통은 관계를 원만하게 해요. 라고 대꾸한 그녀는 재빨리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눈 깜짝 할 사이에 끝을 냈다. 마이크로프트는 툴툴거렸다. 소통이 관계를 원만하게 한다고? 자네는 늘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잖아. 근데 뭐라고 보냈나? 떼쓰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그의 볼에 키스하며 안시아는 말했다. 걱정 마세요. 동생을 향한 형의 사랑을 가득 담아 보냈어요.

 

+ + +

 

  샴페인의 마개를 열자 거품이 흘러 나왔다. 식탁 위에 흘리지 않도록 재빨리 싱크대로 가져가 진정시킨 뒤, 머그컵에 따라 들고 소파로 향했다. TV에선 왁자지껄한 런던 시내의 풍경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몇 분 전에 있었던 불꽃놀이를 보여 주던 화면이 바뀌고 홍조 띈 얼굴을 한 아나운서가 시민들과 새해 소망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존에게 머그컵을 내밀며 셜록은 가만히 TV를 지켜보았다.


  “이 추운 날씨에 사람 많은 템즈강에서 새해를 맞이하다니, 최악의 날로 기억되겠군.”


  그의 말에 웃으며 존은 샴페인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


  “런던에 와서 한 번도 특별한 새해를 맞아본 적이 없어? 저 불꽃놀이, 명물이잖아. 사람들도 많이 보러 가고.”

  “없어. 날짜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야.”


  소파에 앉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존은 제가 든 컵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올해가 처음이겠군.”


  셜록의 눈썹이 올라갔다.


  “뭐가 말인가?”

  “이거.”


  존은 샴페인이 든 컵을 흔들어보였다.


  “베이커 가에서 맞이하는 특별한…새해를 맞이하고 있잖아. 기념하기 위해 사온 거 아냐? 샴페인.”

  “아니. 그냥 마시고 싶어서 사 온 거야.”


  딱 잘라 말하는 셜록의 표정은 어딘가 어색했다. 컵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벌컥벌컥 들이키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존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렇다고 해 두지.” 셜록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사업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영원히 그녀와 함께하고 싶어요, 등등. 셜록에겐 전혀 흥미 없는 사람들의 소원이 한바탕 지나간다. 넌 어떤 소원을 빌고 싶냐고 물으려던 존은 테이블 위에서 울리는 셜록의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핸드폰 액정에 뜬 이름을 본 셜록의 얼굴이 확 구겨진다.


  “누군데 그래?”

  “마이크로프트.”


  메시지를 확인도 하지 않고 던져버린다. 볼 필요도 없어, 그는 늘 무슨 날만 되면 날 괴롭히고 싶어 하거든. 부루퉁한 셜록이 비어진 잔을 채우려 다시 부엌에 간 사이, 존은 그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잠금을 풀고 마이크로프트에게서 온 메시지를 본 존은 쿨럭 대며 웃느라 하마터면 손에 든 컵을 놓칠 뻔했다. 존이 자신의 핸드폰을 손에 들고 거의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낄낄대고 있는 것을 본 셜록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정말 마이크로프트가 보낸 건가?”


  액정에는 평소의 마이크로프트의 행동과 상반되는 글이 떠 있었다.


  [Happy New Year, 셜록. 올해에도 네게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 언제나 너를 사랑하는 마이크로프트로부터.]


  셜록은 존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아 메시지를 삭제하고 다시 집어 던졌다.


  “말이랑 글이 달라지는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컵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웃어대며 배를 붙잡고 몸부림치는 존에게 셜록이 당연하지 않냐는 듯 말했다.


  “안시아가 보냈을 거야. 마이크로프트는 귀찮아서라도 텍스트는 보내지 않으니까.”

  “안시아가?”


  존의 웃음이 겨우 멈추었고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존은 놀랐다.


  “그럼 안시아는 지금 이 시간에… 마이크로프트와 함께 있다는 거야?”


  셜록은 입술을 삐죽였다.


  “야근이라도 하나 보지.”


  아아, 존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그대로 멈췄다. 새해에 야근이라고? 그의 의문을 눈치 챈 것처럼 셜록이 덧붙였다.


  “……조금 특별한.”


  어깨를 으쓱이는 셜록을 보며 앞으로 다시는 안시아를 아는 척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존이었다. 행여 그의 무서운 형에게 오해라도 사면 큰일이니.

  셜록이 가져온 샴페인 병을 기울이며 존은 그제야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는 걸 생각해 냈다.


  “셜록, TV의 저 사람들처럼 자네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면 뭐라 할 텐가?”

  “흥, 말하면 들어주기라도 하는 건가?”


  빈정거리는 그 때문에 존은 이마를 감싸 쥘 뻔했다.


  “그래, 그러니까- 예를 든다면 말이지.”


  곰곰이 생각하던 셜록은 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음…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리고 그 대답은 너무도 탁월해서 존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존은 샴페인이 든 컵을 들어올렸다. 영문도 모르고 셜록은 그를 따라 컵을 들어 올렸다. 미소 띤 얼굴로 존이 말했다.


  “나도 동감일세.”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두 개의 잔이 맞부딪혔다. Happy New Year.

  시간은 어느 덧 새벽 1시를 달려가고 있었다.

 

+ + +

 

  “이걸 타임라인이라고 하고, 이걸 누르면 이 사람에게 답장을 보낼 수 있어요. RT는 리트윗이라는 뜻인데 이걸 누르면…”


  핸드폰으로 트위터 사용법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안시아의 옆에서 흥미롭게 그것들을 내려다보던 마이크로프트는 내친김에 새로 계정을 만들라는 안시아의 권유에 그건 다음에 하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보스, 이런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찾아내는데 굉장히 유용해요.”

  “알겠네.”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침대 옆 서랍에 두고, 마이크로프트는 속삭였다.


  “근데 난 내 옆에 있는 사람이랑 소통하는 것도 힘들어서 말이지.”


  마이크로프트는 그녀를 끌어당겼다.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안시아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내려앉는다. 길고 긴 입맞춤이 끝나자 마이크로프트는 사랑스럽다는 듯 그녀의 허리를 쓸어내렸다. 마이크로프트의 품에서 안시아는 그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아까 들은 폭죽 소리보다 더 생생하고 아름다웠다. 안시아,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린다. 몸을 일으켜 그의 푸른 눈을 내려다보니 그가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말한다.


  “내가 그 트위터라는 것에 계정을 만들면 자넨 날 따라올 텐가?”


  팔로잉을 특이하게 표현하는 그의 말에 안시아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보스. ‘팔로잉’ 할 겁니다.”

  “그럼 만약 내가 계정을 만들지 않는다 해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넨 지금처럼 날 따라올 텐가?”


  이중의 의미가 담긴 그의 언어유희에 안시아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나 동시에 밀려오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그 대답은 조금 늦어졌다. “보스.” 절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안시아는 그 푸른 눈에 맹세하며, 마치 자신의 말을 그에게 새겨 넣으려는 듯 속삭였다.


  “물론입니다, 전 당신의 비서니까요.”


  기다리지 못하고 그들의 입술은 맞닿았고 마이크로프트는 그녀를 강하게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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