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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1. 18. 03:30

마셜/셜존 :: 그를 위한 선물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해 1월은 변덕스런 폭설과 폭우의 영향으로 여느 때보다 강한 추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난롯불을 피웠지만 여전히 싸늘한 공기는 달궈지지 못한 채 방 안을 맴돌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손을 뻗어 셜록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이 추운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그의 마른 몸을 뒤덮던 열꽃은 반나절 전에 이미 내려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몇 번이고 조심스레 그의 이마와 팔을 만져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침대 꼭대기에 걸려있는 링거 병에서 흘러내리는 수액은 핏기 없는 셜록을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지만, 동시에 그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형의 입에서는 작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는 마이크로프트의 침실은 고요했다. 주황 불빛에 반사되는 셜록의 얼굴은 어젯밤과 달리 매우 평온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드슨 부인의 발견과 안시아의 재빠른 보고가 없었더라면, 지금 그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싸늘하게 식은 시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들에게-특히 안시아에게- 감사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동생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유일한 타인이었다.

 

  발작이 있었다. 베이커가에서 마이크로프트의 집으로 셜록은 옮겨졌고 연락을 받고 달려온 홈즈가의 주치의는 셜록이 영양실조에 심각한 코카인 중독 상태라고 말했다. 다행이도 마지막으로 투여한 코카인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가벼운-의사는 이것이 가벼운, 이라고 말했다- 중독 증세만을 보이고 있었다. 고통스럽게 뒤틀리는 사지는 펄펄 끓는 체온과 반대로 극심한 추위를 호소하고 있었고 기력이 없어 고통을 외치지도 못하는 목구멍은 타들어가듯 괴상한 신음을 냈다. 마이크로프트는 전에도 그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서섹스로 돌아간 이후 그는 종종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제 혈관에 약물을 집어넣었다. 그는 대중없이 마약을 했고, 늘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런 동생을 말리지 않았던 이유는, 셜록은 오로지 제가 약을 했을 때만 형이 자신의 침대 위로 올라오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제 형에게 안기며 셜록은 존의 이름을 불렀다.

 

  뒤늦은 죄책감이 마이크로프트를 덮쳤다.

 

  런던에 올라온 뒤 근 한 달이 넘도록 셜록은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은 채 오로지 마이크로프트를 위해 많은 사건들을 해결했다. 마지막으로 삼 일 전에,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에게 부탁했던 비밀 서류 도난 사건은 그의 도움으로 사건의 발단이었던 스파이를 잡아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때 셜록에게 직접 감사의 말을 전했고 그는 덤덤히 그 의례적인 말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삼 일 만에 시체와 같은 몰골을 하고 제 형의 침실에 누워있게 되었다. 이 모든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은 명백했다.

 

  이젠 무의미하게 서로를 괴롭히는 건 그만 둘 때도 되었을 텐데.

 

  마이크로프트는 그 삼 일 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셜록, 혹시라도… 불안한 눈을 하고 있는 제 형을 내려다보며 벽에 걸린 코트를 집어든 셜록은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마이크로프트, 난 괜찮으니까. 뒷말은 생략되었고 셜록은 말없이 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걸친 뒤 밖으로 나갔다. 잘라내버린 말들만이 그가 없는 베이커가에 남아 부서지듯 떨어졌다. 난 괜찮으니까, 그/냥/내/버/려/둬

 

  그 말을 충직히 이행한 댓가가 이거였다면, 차라리 그때 솔직해지라고 화를 내며 널 붙잡을걸 그랬지.


  그러나 진심을 표현하는데 지극히도 서툰 그들 형제가 택한 건 여전히 눈에 보이는 거짓말이었고, 누군가 먼저 거짓을 던져버리지 않는 이상 그들 사이에서 그것들은 유지되어야만 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뼈와 가죽만 남은 동생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그리고 그 고집스런 미련함에 볼을 부비며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텅 빈 베이커가는 일 년 사이에 골동품 수집상처럼 변해버렸다. 누군가에겐 의미 있지만, 누군가에겐 덧없는 물건들만이 가득한 곳으로.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셜록은 서섹스의 그의 집보다 텅 빈 베이커가에 홀로 머무는 것을 택했다.

 

  그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케케묵은 먼지들과 함께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것들이 놓여있던 공간, 시간들은 여전히 셜록의 하드디스크에 남아서 조금만 방심하면 추억이란 형태로 재생되었다. 수백 번을 정지시켜도 제멋대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 귀찮아서, 어떤 때는 멍하니 그 재생되는 모양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 눈앞에서 존은 신문을 읽었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렸으며, 낑낑거리고 무거운 짐을 들고 들어오기도 했다. TV를 틀어놓고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셜록? 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반가워 존, 하고 대답하면 화면은 거기서 정지되었다. 제어할 수 없게 된 고장 난 하드디스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그가 아는 한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래서 방법대로 책상 서랍 안쪽에 숨겨놓았던 코카인 병을 꺼내어 팔에 찔렀더니 존은 사라지는 듯하다가, 다시 나타났다. 수십 번을 찌르고 나니 셜록은 제가 원하는 것이 존을 없애는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존을 보고 싶은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마저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존이 앉아있던 소파에 아무도 없는 것이 싫어서 결국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존, 존? 셜록은 붉어진 눈으로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내뱉은 수많은 존이라는 글자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중 어디를 찾아봐도 존이 대답하는 셜록이라는 글자는 없었다. 손을 뻗어 덧없는 글자들을 잡으려다가 셜록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 보니 햇살 가득한 창가에 익숙한 인영이 서 있었다. 이곳이 어디고 그가 누군지 알아챈 셜록은 손을 들어 눈을 비비려다가, 그 팔에 길고 가는 호스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한참을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듯한 그를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아주 잠시 미소 지었다.

 

  - 좋은 오후야.

 

  힘없이 팔을 내려놓고 버적한 목소리로 셜록이 말했다.

 

  - …나 때문에 휴가라도 낸 건가? 아직 해가 밝은데 집에 있다니, 마이크로프트.

  - 그래. 네 덕분에 그 휴가는 이틀 째 이어지고 있고. 자신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셜록.

 

  그럼 그 미녀가 찔린 건 물렛가락이 아니라 주사바늘이 되는 건가? 셜록은 그의 말에 잠시 웃는 듯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를 지배하는 정적이 흐르고 한참 뒤에 마이크로프트는 미안하군, 이라고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일부러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무시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커튼을 치고, 의자 위에 올려둔 코트를 집어 들었다. 해질녘의 무렵처럼 어스름한 빛이 그들 앞에 일렁였다.

 

  - 더 쉬도록 해. 그리고 베이커가의 네 방을 좀 정리해 두라고 했다. 없어진 것들을 돌려받고 싶다면 내게 와야 할 거야.

 

  정리라는 것은 어질러져 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다. 셜록은 그가 자신의 방을 뒤졌음을 암시하는 것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 괜찮아, 그 방엔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어.

 

  외로움이 묻어나는 동생의 말에 가까스로 그가 고른 건 빈 껍데기 같은 위로였다.

 

  - 익숙해질 거야.

 

  셜록은 자신을 걱정하는 형의 얼굴이 많이 해쓱해져 있는 것을 보았고 자신이 또 그를 괴롭혔음을 알았다. 이상하지, 전에는 형이 무척 강해 보였는데. 우린 서로 괴롭히면서 즐거워했잖아. 셜록의 말에 마이크로프트가 웃었다. 그랬지. 지금은? 지금은… 셜록은 손을 들어 두 눈을 가렸다. 내가 괴로울 때 형은 나보다 더 괴로워하는 것 같아. 정말 이상해. 그러지 않았잖아.

 

  탄식과 함께 두 눈을 꾸욱 누른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보이지 않는 대신에 마이크로프트의 조심스런 발소리가 들려왔고 이어 다가온 뜨거운 손가락이 귓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셜록은 그가 지금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결국 두 손을 떼지 못하고 그의 손이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도록 내버려두었다.

 









  쌓인 눈이 얼음이 되어 하얗게 굳어버렸다. 지팡이로 그것들을 톡톡 두드리던 존은 문득 제 눈앞에 있는 마이크로프트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하나 뿐인 동생을 숙적이라고 표현하며 정보를 요구했던 그는 얼마나 수상쩍었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은 셜록에 대해 또 얼마나 놀랬던가. 그 기억은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한 편의 희극을 보는 듯한 웃음을 주었다. 흰 입김을 보이며 미소 짓는 존의 얼굴에 마이크로프트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존은 길 한복판에 마술을 부리듯 나타나 자신을 불러 세운 마이크로프트를 마주하며 부디 이번에도 그때처럼 그가 셜록을 위해 221B 베이커가에 거주하라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저 셜록에 대한 이야기만이라도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로지 한 가지 소원밖에 남지 않은 자신에게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 마이크로프트 홈즈. 당신이 보기엔 제가 어때 보입니까.

 

  느닷없는 존의 질문에 마이크로프트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일 년 만에 보는 그의 외모는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군의관이었던 자의 작지만 다부진 몸, 짧은 회색빛 머리카락, 어느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침착성. 그를 처음 보았을 때 함께했던 지팡이가 이번에도 옆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 다리를 저시는 군요.

 -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그 사건 이후로 말입니다. 재발했지요. 왜인지는 아시겠죠.

 

  전장을 떠난 병사에게 남은 것은 외로운 상흔뿐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닙니다. 존은 웃었다.

 

 - 일 년 전에 사라졌던 사람이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는, 태연하게 오래간만이라고 말하는데,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그의 멱살을 잡을지 아니면 한 대 때릴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일 년 동안 참을성이 꽤 좋아진 것 같지 않습니까.

 

  지팡이를 쥔 왼손이 떨려오는 것을 느낀 존은 흥분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겨워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회색 눈동자를 보면서 마이크로프트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진심으로 참담했고 존조차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모든 게 내 탓이지만, 난 그때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조차도 변명처럼 들리는 말들이 입김 새로 얼어붙는 걸 차마 볼 수 없었던 마이크로프트는 눈을 감았다.


 -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고통어린 그의 형의 얼굴을 보면서, 존은 직감적으로 셜록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눈치 챘다. 얼음길에 미끄러지려는 지팡이를 내동댕이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절룩이는 다리로 마이크로프트에게 가까이 다가간 존은 그의 앞에 섰다.

 

 - 셜록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 존.

 - 셜록은 어디 있죠...? 혹시 그가, 그가-

 

  죽었나요.

  일 년 동안 존이 했던 수많은 가정 속에서 가장 질 나쁜 것이 그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제 말에 놀란 존은 멍하니 마이크로프트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쿵쿵거린다. 붉어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셜록이 사라진 이후부터 존은 전쟁통의 악몽은 꾸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모리아티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귀청을 찢는 폭발음,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셜록이 그를 매일 밤 괴롭혔다. 그것들은 이미 모두 과거가 되었지만 올무처럼 그를 옭죄어 한 발짝도 앞으로 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눈물처럼 넘쳐흐르는 불안과 공포를 어찌할 수 없을 때면 존은 노트북을 켜 셜록에게 메일을 썼다. 어쩔 땐 단 한 통을, 어쩔 땐 수십 통을. 전화해 줘. 단 한마디의 메일을.

 

  전화해 줘. 지금 당장. 왜 날 이렇게 불안하게 해. 왜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거야?

 

  악몽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존의 어깨를 붙잡자 그는 비로소 지금으로 돌아왔다. 마이크로프트의 큰 손이 그의 어깨를 위로하듯 그러쥐며 말했다. 아닙니다. 잿빛이 되어가는 존의 눈동자가 꿈을 꾸듯 속삭였다. 아니라구요?

 

  그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눈 그늘에 얼룩처럼 번져있는 절망과 슬픔, 우울이 그런 것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것이 누구의 탓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서섹스에서 그가 오롯이 셜록을 가질 동안 이유도 모른 채 셜록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허덕였을 존에게 그는 말하지 못했다. 나 또한 당신처럼 그를 잃을 것이 두려웠을 뿐이라고.

  마이크로프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솔직함을 저 깊이 숨기는 대신 그는 셜록을 위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존이 원하고 원했을 그 한마디를 꺼냈다.

 

 - 나는 당신에게 셜록을 돌려주러 왔습니다.

 

 

 

 

 


  안시아는 그녀가 문자 중독증에 빠져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비서로서 매우 이상적인 여자였다. 똑똑하고, 사리 판단을 제대로 할 줄 알았으며, 때로 마이크로프트가 놓치는 것들을 그녀는 잘 잡아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핸드폰으로 일정을 확인하며 앞으로의 약속들과 준비해야하는 서류들을 마이크로프트에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 아시겠지만, 내일은 동생분의 생일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그녀를 올려다보던 마이크로프트는 잠시 뜸을 들였다.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는 건 그 구성원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서 가져야하는 당연한 행동양식이겠지만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가족을 가졌을 때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마이크로프트는, 아, 몰랐는데. 라고 말하는 실수를 하는 대신 그렇군. 이라고 중얼거림으로서 그 상황을 모면했다. 안시아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 저녁 시간을 비워둘까요?

 - 부탁하네.

 

  생일이라. 마이크로프트는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은 채 회상에 잠겼다. 셜록은 어릴 때부터 생일 선물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아이였다. 마이크로프트는 그가 생일날 고배율 현미경이나 자신은 전혀 흥미가 없는 청소년용 과학 잡지, 혹은 랩탑 따위를 덤덤히 받았던 것을 기억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날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랬다는 것은 다른 이가 태어난 날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의미했다. 웬만해선 얼굴도 마주하지 않는 그들 형제가 기꺼이 만나는 것은 일 년에 한 번뿐이었는데, 자신의 생일인지 뭔지 관심도 없을 셜록을 위해 마이크로프트 쪽에서 제안하는 조촐한 저녁식사 모임이라는 형태였다. 그 때마다 셜록은 짜증을 내며 또 무슨 시시한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 불러내는 거냐고 투덜거렸다.

  마이크로프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가, 지웠다. 고작 작년의 기억이 마치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의 한구석 테이블에 앉은 셜록은 부루퉁한 얼굴로 접시에 담긴 음식을 조금 먹었고, 형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으며, 선물처럼 내밀어진(물론 전혀 그런 언급은 없었지만) 새로운 범죄사건 파일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어느 누구도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작 그만큼의 관계가 이제 와서 망가진 이유를 마이크로프트는 이해할 수 없다가도, 아마도 잘못된 욕심의 댓가인가 보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애초에 그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다정함을 원했기 때문에- 평생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셜록의 눈물마저 닦아내야 했던 거라고. 마이크로프트는 그 얼룩이 남아있는 듯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 셜록은, 잘 지내고 있나?


  문득 마이크로프트가 물었다. 안시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글쎄요, 달아놓은 감시카메라는 베이커가로 돌아간 첫 날에 부서졌으니까요. 그녀가 내밀은 캡쳐 사진에는 마이크로프트가 안시아를 시켜 베이커가 한 구석 천장에 달아놓은 감시카메라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셜록이 있었다. 그 뒤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총으로 쏘아버렸겠지. 녀석 답군. 마이크로프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달아두었음에도 금방 알아채는군.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동생을 생각하는 형의 얼굴에서 근심을 읽어낸 안시아는 곧 그가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고개를 끄덕인 마이크로프트는 핸드폰과 서류철을 챙겨 들고 뒤돌아서는 안시아에게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 안시아, 자네라면 어떤 생일 선물을 받고 싶나?

 - 제 생일 선물 벌써 주시게요?

 

  그녀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는 전염처럼 옮아 마이크로프트의 입가에도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낸다. 안시아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아! 하며 말했다.


 - 로맨틱한 데이트?

 

  마이크로프트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 참조하겠네.

 

  그 말 기억해 둘게요. 안시아는 웃으며 서재의 문을 열었다가 다시 보스, 하며 그를 불렀다.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 선물을 고민하시는 거라면, 그냥 그 사람이 가장 갖고 싶은 걸 선물해 주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이따 약속 시간에 다시 오죠. 그 말을 끝으로 안시아는 문 뒤로 사라졌다. 턱에 손을 괴고 그녀가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보던 마이크로프트는 뒤늦게 대답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화려한 샹들리에와 아름다운 야경, 고급 와인과 눈앞에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셜록이 신경 쓰고 있는 건 오로지 잔잔하게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의 음악이었다. 모차르트? 아니면 차이코프스키였던가. 익숙한 선율은 반대로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러 기억하려 애쓰는 것은 다른 것에 몰두함으로서 제 눈앞의 형과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운데 접시 위에 놓인 스테이크 대신 샐러드 접시를 휘적대고 있던 셜록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런던아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은 그의 형이 그를 위해 잡아둔 것이었지만 셜록에겐 지금 자신의 상황부터 밖에 보이는 풍경까지 모든 것이 너무도 낯설기만 했다. 런던에 오면 모든 것이 이전 같아질 줄 알았는데 어디서부터 뒤틀린 걸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귀를 아까와 다른 선율이 잡아끈다.


  아. 멘델스존이다.

 

  언젠가 존에게 연주해주었던… 셜록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음악을 듣는 게 가장 좋지요. 깊은 밤에 흐르는 셜록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누워있던 존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종종 그를 괴롭히는 악몽 때문에 자다가도 일어나 거실에 나오곤 했다. 존이 속삭인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군. 왜죠? 더 듣고 싶은데 자야 하잖아. 셜록이 미소지었다. 세상의 모든 자장가란 그런 겁니다. 존은 눈을 감았다.

 

  셜록은 눈을 감았다.

 

  멀리서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존은 없었고, 대신 걱정스러운 눈길로 저를 바라보는 마이크로프트만이 보였다. 그의 입이 말한다. 괜찮니, 셜록? 셜록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아. 바이올린 선율이 서서히 잦아든다.

  함께 있으면서도 줄곧 다른 곳을 보는 셜록을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셜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 런던에 오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어.

 

  근데 이젠 뭐가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어. 긴 한숨을 내쉬는 셜록을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그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의 생일날 자신이 보고 싶었던 모습이 아니었다. 셜록은 부정할지도 모르겠지만 마이크로프트가 생각할 때 뒤틀린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러나 셜록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미련하게 굴었다. 참다못한 마이크로프트가 물었다. 베이커가에 네가 찾던 사람이 없었으니까. 왜 넌 런던에 오자마자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지? 추궁하는 그의 말에 셜록은 깊숙이 묻어두었던 진심을 꺼내 천천히 그것들을 끼워 맞추었다. 그제야 느릿한 낱말들이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난… 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어져.

 

  자신의 마음과 놀랍도록 닮은 그것이 그의 안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에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떨구었다. 넌 정말 잔인하구나. 그를 향한 중얼거림이 화살처럼 다시 제게 되쏘였다.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했는지-

 

  한숨처럼 지낸 그 일 년이란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다. 존. 존 왓슨. 언젠가 제 품에 안겨 그 이름을 말하던 약에 취한 셜록을 이제 마이크로프트는 잊기로 했다. 대신 아주 오래 전,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들던 버릇없는 동생을 떠올렸다. 서로를 향한 거짓말이 진심보다 강해서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았던 그 때를. 그래서 오히려 더 아프지 않았던 그 때를.

  수많은 과거가 셜록을 잡아채지 못하도록 저 멀리 서섹스까지 도망갔다가 결국 다시 돌아와야 했던 패배자 마이크로프트는, 기꺼이 모든 것을 놓고 조용히 그를 떠밀 준비를 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셜록의 진심을 엿본 것으로 족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에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했다.

  돌아가자.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한 셜록을 내려다보며 그는 말했다. 줄 게 있어.

 

  네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을.

 

 

 

 

 

 

 

  떨리는 오른손을 맞잡으며 존은 스쳐지나가는 차창 너머 어둠이 깔린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수십 년도 넘게 보아온 그 모습들은 머릿속에 데자부를 불러 일으켰다. 마치 존이 처음으로 베이커가의 그 하숙집으로 들어가기를 결심했던 날을 기억해보란 듯이.

 

  셜록이 사라지고 난 뒤 처음 찾는 베이커가였다. 존은 내쫓기듯 그 집을 떠난 이후 하루에도 몇 번이고 행여 셜록이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그 집으로 찾아갈 생각을 했지만 그때마다 두려움이 그를 막았다. 만약, 셜록이 이전처럼 그 집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지 않으려 했다면, 그것 또한 가슴 아프기는 매한가지일 테니까.

 

  며칠 전 보았던 마이크로프트는 마치 자신이 셜록을 소유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돌려주겠다는 말부터가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전장 속으로 다시 들어갈 생각이 있습니까? 시험하려는 질문에 존은 최대한 그에게 화내지 않으려 애쓰며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비웃듯 그가 말했다. 용감하시군요. 존은 피식 웃었다. 멍청하다는 말을 돌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것들이 과거의 연속이었다. 베이커가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존은 이제는 거의 잊혀지려 하는 셜록의 목소리와 흐릿한 미소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것들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떨리는 목소리로 존은 말했다. 그에겐 내가 필요할 겁니다. 마이크로프트는 웃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죠? 그 여유로움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존은 최대한 간절함을 담아 그의 형에게 자신의 말을 대신 전했다.

 

  내가 그를 필요로 하니까.

 

  그 마음이 그에게 전해졌을까? 존은 알지 못했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절룩거리는 다리를 그리운 거리 위에 내딛었다. 이전과 달라진 게 없는 베이커가 221B 번지의 그 집 앞에 서서 존은 빛바랜 문패를 올려다보았다. 떨리는 손을 들어 노커를 두드리려는 순간, 존은 또 다른 택시의 엔진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검은 머리카락과 순진한 미소를 가진 이가 검푸른 코트를 펄럭이며 서 있었다. 존은 숨이 멎을 듯 놀랐고,

 

 - Hello.

 - 셜록…?

 

  존의 오른손의 떨림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껏 받은 선물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받은 셜록은 그의 형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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