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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1. 2. 12. 17:30

마셜 :: 상처




“형편없는 몰골이로구나.”

 

일 년 만에 마주한 얼굴에 대한 마이크로프트의 감상은 그랬다. 눈 밑에 푸른 멍이, 입가에는 찢어진 핏자국이, 부르튼 입술에 남아있는 붓기는 제가 알던 셜록에게 피카소의 그것처럼 칸을 나누어 얼룩덜룩 덧칠을 해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기숙사 제 방 창문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는 셜록에게 다가간 마이크로프트는 냉정하지만 조심스러운 투로 그의 턱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형의 시선이 와 닿는 곳이 거짓말처럼 시리도록 아프다. 셜록은 그의 손을 밀어내며 순간 얽힌 손가락의 감촉을 잊지 않았다. 외면하듯 셜록이 눈을 돌리자 마이크로프트에게서 미약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소식이 없기에 잘 지내나 했더니 그새 싸움질이라니. 이번엔 또 뭐가 불만이어서? 멍청한 학생들? 지루한 강의? 아니면 누가 네 식사에 독이라도 탄 게냐?”

 

대학 기숙사 학생 식당에서 벌어진 소란에 대한 연락이 학교 측에서 가기도 전에 마이크로프트는 제 동생에게 벌어진 일을 비서에게서 보고 받았다. 싸움은 사소한 말다툼에서 기인했고, 셜록이 보기 좋게 같은 학과 학생에게 얻어맞았다는 내용의. 조용히 지내던 그가 갑자기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마이크로프트는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키진 않았지만, 그가 일 년 만에 셜록의 학교에 찾아 온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처음엔 제 두뇌보다 한참 모자란 보통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워 시작했던 모든 행동들이, 결국 자신을 홀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이 미련한 동생의 과시 혹은 오기는 멈추어 지지 않았다. 셜록이 사춘기 소년이었을 때 같은 반 학생들에게 저질렀던 일들과 그에 동반한 잦은 싸움들은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분별력 있는 성인의 행동들을 기대하게 되는 나이가 되고 나서부터는 아무것도 그를 보호할 수 없었고 때문에 부모님의 걱정들은 커져만 갔다. 다 큰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비틀리면 상처 입은 어린아이처럼 공격적으로 돌변하고 마는 이 어린 동생을 자신이 보호하겠다고 말하며 부모님들을 안심시킨 건 마이크로프트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셜록이 타인에게서 상처를 받는 것에 대한 방어기제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서 악의적으로 군다는 것을 알게 된 마이크로프트는 그에 대한 걱정을 그만 두었다. 셜록에게 필요한 건 동정심이 아니었다. 셜록이 벌이는 소란의 대부분의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이크로프트는 눈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동생을 한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셜록이 가장 싫어하는 그 표정으로.

 

“비웃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마이크로프트.”

 

뒤늦게 엉켜든 파란 눈에 어린 거만한 표정과 말투는 여전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지나치지 않고 그의 안에 유년시절부터 자행했던 치기어린 싸움의 흔적들이 새파란 멍이 되어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높은 자존심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뒤틀려버린 욕망을 가진 어린아이. 그러나 원하면 안 되는 것을 가지겠다고 우기는 데에는 마이크로프트도 더 이상 동조할 수 없었다.

 

“네가 또 이럴 생각이라면 어머니께 말하는 수밖에 없다. 셜록,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 없는 거냐.”

 

셜록이 부모님을, 혹은 마이크로프트 자신을 괴롭히고 싶은 거라면 마땅히 그 자신도 셜록을 괴롭힐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매번 같은 일을 저질렀고 '일부러' 라는 단어는 굳이 쓰지 않아도 그의 행동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번에도 역시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마이크로프트는 한심한 동생을 구박하는 대신 손을 뻗어 그의 눈 밑에 어린 푸른 상처 자욱을 덧그렸다. 네가 행한 짓을 보라는 듯. 그것이 과연 보답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어리석다. 익숙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셜록의 눈이 찡그려졌다.

 

“어머니라…. 늘 똑같은 레파토리군, 마이크로프트. 지겹지도 않나.”

 

두 번째에는 그저 스치고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셜록은 제 얼굴 곁을 맴도는 마이크로프트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그를 단단히 옭죄었다. 도망치지 못한 형을 끌어당겨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내리누른 셜록은 혀를 내밀어 아슬아슬하게 그의 것을 쓸었다가, 떼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것이 셜록을 위로했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동정어린 시선에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 하기란 어려웠다. “이것도 어머니께 일러바칠 생각인가?” 셜록은 형을 향해 냉소했다. 정말 그에게 필요한 건 동정심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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