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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2011. 1. 12. 01:00

셜록 :: 자가당착



 - 입대할 거야. 


 시국이 좋지 않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서슴없이 그렇게 말했다. 분명 어제 밤까지 머리를 싸매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음에도, 그런 갈등을 내보이지 않고 애초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다는 듯이 무표정을 가장했다. 커피잔을 앞에 놓고 뚫어져라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굳어진 얼굴을 풀고 웃었다. 바라던 바였다.


 - 언제?
 - 다음 달에 훈련소에 입소하기로 했어. 훈련이 끝나는 대로 선발대에 뽑히겠지. 의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 중엔 자원자가 많지 않아서 인원이 모자란다니까.
 - 아니 그게 아니라, 언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거냐고.
 - 아... 글쎄. 꽤.....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순간 망설이느라 대답은 조금 느리게, 더듬고 말았다. 그것이 실수였다. 그녀는 내게서 틈을 보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 마리 맹수로 탈바꿈하여 길다란 발톱을 내밀어 내 빈틈을 헤집었다. 


 - 존, 설마 너... 클라라 때문이야?


 갸르릉 거리는 맹수가 혀를 내밀어 피가 묻은 발톱을 핥는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얼이 빠졌고 동시에 짜증이 나서 일부러 과장하며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 번도 그녀에게, 다른 누나들이 가지고 있는 '다정함' 혹은 '상냥함' 같은 걸 하나 뿐인 남동생에게 보여주길 원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억울해졌다. 그렇다면 적어도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는 '조심스러움' 같은 걸 보여주어도 괜찮지 않은가. 그녀가 적어도 맹수가 아닌 다른 것, 아니, 귀여운 새끼 호랑이 정도만 되었어도 우리의 유년 시절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의 관계가 이렇게 껄끄럽고 최악인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그녀의 거대한 발 아래 눌려 꼼짝 못하는 초식 동물의 기분을 느끼며, 조이는 숨통을 풀기 위해 가까스로 발버둥 쳤다.


 - 해리엇,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 너야말로 그렇잖아. 그건 그냥 해프닝 아니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의 입에서 클라라에 대한 내 마음이 '아무 것도 아닌 일' 이 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비록 술김에 그녀에게 한 열렬한 고백이 우스개소리가 되어 해리엇의 귀에 흘러들어 간 건 전적으로 내 부주의함을 탓해야 하겠지만, 그것을 한낱 철부지 동생의 재미없는 농담으로 여기며 비웃을 땐 언제고 이렇게 꾹꾹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동생의 생사가 달린 결심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설마 너 진심으로 클라라를 좋아했니?' 라고 그녀와 결부지어 의심하듯 추궁하는 건 무슨 경우냔 말이다.
 존은 자신과 꼭 닮은 갈색 눈을 보며 때론 상대방에게 모든 걸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 해리엇, 아냐. 그러니까 쓸데 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 정말 아니야?


 의자에 등을 기대며 그녀는 팔짱을 끼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눈을 피하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동생에 대해 쓸데 없는 의심을 한 그녀가 뉘우치고 미안하단 표정을 지어 보이며 걱정스런 '잘 다녀 와' 한 마디를 하게끔 만들기 위해 단호하게 말했다.


 - 아니야.


 그런데 어째서,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군입대를 자원함으로서 누나의 여자를 넘본 죄를 용서받고 싶어 하는 어느 멍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두통이 오려는지 눈가가 시큰해졌다. 찡그린 얼굴 그대로 미간을 꾹꾹 눌러 마사지하는데 그녀가 테이블에 팔을 기대어 내게 몸을 숙이며 속삭였다.


 - 그래. 알았어, 존. 네가 꼭 그래야 한다면야.


  난 아까에 이어 두 번째로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였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맹수의 발톱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그런데 존, 넌 켕기는 게 있을 때 꼭 내 풀네임을 부르더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평소엔 해리라고 잘도 부르면서 꼭 그럴 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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