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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2011. 4. 17. 04:30

셜존 :: 복수의 이유



  벌써 두 번째의 데이트 약속이 셜록에 의해 취소되자, 존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맨 처음에, 존이 '그녀'와의 성공적인 데이트를 위해 피카딜리 극장 근처에 있는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 디너를 예약한 것을 셜록이 멋대로 전화해 취소해 놓고, 그 대신 두 블럭 떨어진 주택가의 살인사건 현장에 존을 끌고 갔었던 것은 그래도 참을만 했다. 처음이었고, 사건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엔 정도가 심했다. 존은 셜록에게 문자메세지 창을 띄운 핸드폰을 디밀었다. "내가, 그녀와의 주말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는데." 셜록은 입꼬리를 내리며 그래서 뭐? 라는 표정을 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존은 최대한 소리지르지 않으려 애썼다. "난 그런 문자를 보낸 적이 없는데 그녀는 내가 그랬다는군. 발신함을 확인해보니 그래.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나 대신 그런 친절한 문자를 보냈더라고."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그것에 집중하던 셜록은 대수롭지 않은 일 가지고 뭐 그러냐는 듯 "사건이 들어왔잖아, 존. 바쁜데 한가하게 데이트 할 시간 없다고." 말해서 결국 존이 소파 위에 핸드폰을 내동댕이 치게 하고 말았다. "일 하는 건 너고 난 돕는 거지. 네가 그 하드디스크를 굴리고 있을때 내가 나가서 저녁 식사 좀 하겠다는 게 그렇게 큰일이야? 그리고 남의 핸드폰 함부로 쓰지 마!" 존을 가장 기분 나쁘게 하는 건 마지막 항목이었다. 이 쯤 되면 사생활 침해를 넘어서 제압당하는 꼴이었으니. 씩씩거리는 존을 셜록이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 그 눈은 일말의 죄책감은 커녕-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약간의 짜증마저 담고 있었다. "알다시피, 존, 난 누군가에게 말하는 편이 집중하는 데 더 도움이 되서 말이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존은 제 머리카락을 쥐어 뜯을 기세로 벅벅 긁었다. "내가 이 저녁 약속을 잡느라 얼마나-" 끝말을 흐리며 입술을 깨무는 존을 향해 셜록이 되물었다. "얼마나?" 도끼눈을 뜨고 셜록을 노려보던 존은 흥, 하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됐어. 말해봐야 자네가 뭘 알겠나. 자넨 이런 쪽에 관심도 없잖아." 그러자 셜록이 피식 웃었다. "어떡하면 상대를 침실로 끌어들일까 하는 고민 말인가? 그래, 그게 요즘 최신 유행인가 보더군. 너도나도 따르려고 애쓰는 걸 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존은 핸드폰을 쥐고 일어났다. 저 작자에게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2층 침실로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을 흘깃 거리며 셜록이 중얼거렸다. "뭘 모르는 건 자네지 내가 아니야."
  그리고 그 다음으로 존의 소심한 복수가 시작되었다. 왜 소심하다 하느냐면, 그건 셜록의 분노를 깨우기는 커녕 비웃음만 샀기 때문이었다. 실험에 쓰려고 갖다 놓은 눈알이나 손가락, 발목 등이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거나 셜록의 실험도구 몇 개가 깨어져서 싱크대 속에 나뒹구는 건 복수 치고는 그리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새벽에 사건 피해자의 핏방울 속에 포함된 독소 추출 실험을 하다 그냥 내버려 둔 샬레가 그 날 저녁 식탁 위에 나뒹구는 모양새로 뒤집어져 있는 것을 보고 셜록은 혀를 끌끌 찼다. 존은 태연하게 TV를 보며 리조또를 먹고 있었다. "자넨 정말 구제불능이군." 흥, 존은 코웃음을 치며 접시에 든 리조또의 남은 흔적을 말끔하게 먹어치웠다. 그의 행동에 셜록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셜록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행동은 정당방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을 위해선 존도 함께 애써야 한다는) 존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정당하지 않은 복수로 그를 괴롭-그리 괴롭진 않았지만-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셜록은 샬레를 싱크대 속으로 던지듯 집어넣고는 존에게 말했다. "내일 저녁 시간 비워놔. 마이크로프트가 자네 줄 사건을 준비해 놨다고 했어." 접시를 싱크대에 넣으려 자리에 일어나면서 존은 일부러 더 냉정하게 말했다. "그게 왜 내 사건이야? 자네가 가기 싫어서 날 보내는 것 뿐이잖아." 그리고 그 다음 말이 셜록을 멈칫하게 했다. "난 내일 저녁 약속이 있어. 애석하지만 자네 형을 만나러 가는 건 내가 아니라 자네가 되겠군."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의 우유를 꺼내 마시는 존에게 셜록이 확인하듯 물었다. "약속이라고?" 그 목소리가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들렸지만 존은 굴하지 않으려 일부러 더 그를 도발했다. "그래. 식사를 한 후엔 침대에서 사랑을 속삭이도록 되어있는 그 최신 유행 말이지."
  그리고 다음날, 피카딜리 극장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존은 어젯밤 자신이 그를 도발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셜록이 푸른 코트를 펄럭이며 침울한 얼굴로 존과 그녀가 앉아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 앞에 나타리라곤 생각도 못했으니. "셜록?" 존은 이를 악물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내가 왜 이 레스토랑을 다시 예약했을까. 그냥 다른 데로 갈 걸... 그러나 만약 존이 그랬다 하더라도 셜록이 바뀐 약속 장소를 찾아내는 건 식은죽 먹기였을 것이다. 이마를 감싸쥐는 존에게 셜록이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충격적인 소식을 말했고, 셜록의 등장과는 별개로 그 내용은 존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이크로프트가 총에 맞았어. 자네는 지금 나와 함께 가 주어야 겠네." 그러더니 셜록은 존의 상대 여성에게 미안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하며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당황한 존이 그녀와 셜록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셜록이 다급하게 그의 팔을 끌어 일으켰다. 그리고 셜록은 그 자리를 떠나기 전,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안타깝지만 오늘 존과 침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셔야 겠군요." 그녀의 아름다운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영문도 모른 채 존은 셜록에게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모습으로 레스토랑을 나섰다.
  "마이크로프트가 총에 맞았다고? 왜? 오늘 자네랑 만나기로 되어 있는 거 아니었나?" 이거 좀 놔 봐, 셜록! 존은 잡힌 팔을 뿌리쳤고 그가 그 레스토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단념할 만큼 피카딜리 극장과 멀어진 곳까지 걸어온 셜록은 존을 순순히 놓아주었다. "얼마나 중상인데?" 심각한 얼굴의 존을 보며 셜록은 피식 웃었다. "이로서 세 번째군."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존은 순간 당황했다. "뭐?" 셜록은 말없이 미소 지었고, 그제야 그 뜻을 알아들은 존은 눈앞이 핑 돌며 동시에 심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그게 다- 거짓말이라고? 오로지 내 데이트를 방해하기 위해서?" 셜록이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복수는 이렇게 하는 거야." 존은 진심으로 화가 났으며, 상처받았다. 자신의 복수같지 않은 복수를 복수하기 위해 진심을 담은 큰 복수-악질의-를 한 셜록에게.
  다 끝났다는 해방감과 승리감에 도취된 셜록이 유유히 횡단보도 앞으로 걸어가자, 그 뒤를 쫓은 존은 아까 셜록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셜록의 팔을 아프게 잡아끌었다. 놀라운 힘에 이끌려 뒤를 돌아 본 셜록은 분노와, 체념과, 우울, 등등의 감정이 깃든 존의 옅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데이트를 하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셜록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고, 존의 말을 다시 생각했고,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 이미 예상했었지만, 그가 자신의 행동을 오해하고 있는 것을 정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었던 이 상황들을 그만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셜록은 대답했다.
  "그러면 자네는 대체 내게 왜 이러나?"
 






 셜록 말을 못 알아 들었다면 존은 골룸. 아.. 아니, 호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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