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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1. 9. 04:00

셜록 :: He is AWESOME!




  병원에서 돌아온 존은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5초 뒤에 자신이 왜 밖에서 사라와 함께 식사를 하고 오지 않았는가에 대해 뉘우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뉘우쳐도 이미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존은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TV를 시청중인 셜록에게 말했다. 


 “자네 저녁 먹었나?”
 “아니오.”
 “다행이로군. 적어도 냉장고를 열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 손을 보고 식욕이 싹 달아나는 경험을 하진 않았을 테니. 아, 내게 조심하라고 미리 말해두는 것을 잊었나 보군. 난 괜찮네.”


  전혀 안 괜찮은 표정으로 존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두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그 손을 냉장고에 집어넣은 사람은 아마도 셜록이었을 것이라는 것과, 그 손의 손가락이 하나 없었다는 것을. 그렇다. 손가락이 하나 없었다. 원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그 누군가가 그 누군가라는 것을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잘랐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가끔 난 자네의 비위가 강한 것에 놀라게 되는군. 나도 시체는 많이 봐 왔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특히 여러 개로 (이 말을 할 때 존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뉘어 있는 것엔 적응이 잘 안 되거든.”
 “살인 사건을 보다 보면 그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존, 당신도 얼른 적응하는 게 좋겠군요.”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뻔뻔스럽게 말하는 셜록을 보며 존은 격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참아내려 이를 악물며 말했다.


 “오, 셜록, 자네는 여기가 사건 현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나 보군. 부디 왜 부엌에 저런 것들이 굴러다녀야 하는 건지 설명해 주겠나?”
 “사후 지문 제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구요, 존. 마땅히 보관해 둘 장소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누누이 말했을 텐데요.”
 “대체 그런 연구를 왜 집에 와서 하는 거냐고!”


 결국 폭발하고 만 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셜록은 TV를 끄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휘적휘적 부엌으로 걸어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모양을 옆에서 지켜보던 존은 셜록이 냉장고 문을 닫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우유가 없어서 신경이 날카로와졌나 보군요’ 운운하는 것에 현기증을 일으킬 뻔 했다. 안 그래도 활활 타오르는데 기름 붓는 격이 따로 없다. 난 지금 손 얘기 하고 있는 거라고! 넌 잘린 손으로 우유 따라 마시냐! 조금의 연관성도 없는 대화 내용에 어이가 없어진 존은 이참에 장보는 것에 대한 불만이라도 토로해볼까 생각하는데, 셜록이 코트를 걸쳐입고 외출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어디 가?”
 “마트에요.”


 이젠 너무나도 당당히 논란의 요점을 회피하고 있다. 존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런 그에게 뭐 사올까요? 라고 순순히 말하는 셜록이란 좀체 없는 일이어서 존은 좌절하다 말고 퍼뜩 고개를 들어 통조림이랑, 달걀이랑, 우유랑, 갖가지 야채들 이름을 열거하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셜록은 문 밖으로 사라졌다.


 “문자 보내요.”


 마음 같아선 바톨로뮤 병원으로 달려가 왜 이런 녀석을 소개해줬느냐고 스탬포드의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은 심정이다. 존은 한 달 뒤쯤에 자신이 성인(聖人)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꺼내 굼뜬 손가락을 놀렸다. 리스트를 길게 작성하며 마무리는 ‘잊지 말고 꼭 사와.’ 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몸을 돌리는데 1초도 안 되어서 셜록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연구실에 잠시 들렀다 올 겁니다. 늦을지도 몰라요. - SH]


 제때 저녁 먹기는 글렀군. 핸드폰을 든 손을 힘없이 늘어뜨리며 터덜터덜 부엌으로 향한 존은 토스트라도 구워야겠다는 생각에 식탁 위에 놓여있는 마가린 통을 열었다가 너무 놀란 나머지 허드슨 부인이 ‘무슨 일이에요?’ 라며 쫒아 올라올만한 엄청난 비명을 질렀다.
 냉장고 안에 놓여있던 손의 것임에 분명한 손가락 하나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 + +


 셜록이 실수로 마가린 통 속에 손가락을 넣어 둔 걸까 아니면 스푼이 없어서 대신에 손가락으로 마가린을 퍼 빵에 발라 먹은 걸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존이 지쳐 잠들기 직전, 셜록이 양 손에 봉지를 들고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존은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가린 통 따위는 깨끗이 잊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셜록을 향해 달려갔다.


 “잊지 않고 전부 사왔겠지?”


 그 의 손에서 봉지를 반갑게 맞아든 존은 무심코 그것을 열어보았다가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풀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고 얼이 빠진 표정으로 셜록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존은 그가 식탁 밑에 내려놓는 봉지에는 제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들어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셜록, 내가 사다달라고 한 리스트에는 ‘사람 발 두 개’ 같은 건 없었을 텐데
 “그건 제 겁니다.”


 손을 내미는 셜록에게 덜덜거리는 손으로 봉지를 쥐어주고는, 존은 그가 내려놓은 봉지 안에 식료품들이 가득한 것을 득달같이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놀라움과 경악은 이내 존을 지배했다. 저 ‘사람 발’은 어디다 보관할 작정인거지!


 “셜록, 자네 설마 이 집을 시체안치소로 만들고 싶은 건 아니겠지.”
 “가져온 건 발 뿐이니까 걱정 마세요, 존.”
 “그건 또 어디서 난 건가?”
 “연구소에 다녀온다고 했잖아요.”


 아무래도 셜록을 위한 (사체 보관용)냉장고를 놓는 편이 좋을지도…. 존은 절대로 그가 들고 오는 봉지는 함부로 열어보지 말아야겠고 다짐했다. 그런 존의 머리에 난데없이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 그럼 연구소에 먼저 다녀온 거야? 아니면 나중에?”
 “연구소는 오후 5시가 넘으면 다들 퇴근하니까요. 먼저 들렀다가 마트에 다녀왔는데, 그건 왜 묻죠?”


 존은 경악했다. 


 “그, 그럼 저 발목 두 쌍을 들고 마트에 갔다는 건가?”
 “물론이죠.”
 “세상에…”


 발이 든 봉지를 들고 마트에 가 이런저런 물건들을 주워 담았을 셜록을 상상한 존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자신이 왜 웃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소시오패스 한 명은 고개를 갸웃한다. 절대로 셜록을 혼자 마트에 보내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은 존은- 만약 그 봉지 안을 누군가 봤다면, 혹은 그걸 떨어트려 그 안에서 발 두 쌍이 굴러 나왔으면 넌 그냥 감방 행이야-! 를 속으로 외치며 하도 웃어서 아픈 배를 부여잡고 헐떡였다. 


 “정말, 후우- 여러 의미로, 자네는 정말 굉장해.”
 “별말씀을.”


 셜록은 싱긋 웃으며 태연히도 사람 발이 든 봉지를 봉지 째 냉장고 안에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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