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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0. 27. 03:00

셜존 :: The Science of Communication



“좋은 냄새가 나는군요.”

 

 차가운 바람 속을 한참 동안 누비고 다닌 듯 붉어진 뺨을 하고 셜록이 말했다. 난롯불로 따뜻하게 데워진 거실의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셜록은 코트를 벗어 문고리에 걸어 두었다. 갑작스럽게 영하에 가깝게 내려간 요 근래의 날씨는 런던 사람들을 한없이 움츠러들게 했지만, 사건을 맡은 셜록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는 듯 했다.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던 존이 셜록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인사했다.

 

“아, 마침 잘 됐어. 저녁을 만들고 있었거든.”

“오늘 메뉴는 스튜인가 보네요.” 셜록의 말에 존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지?”

“스튜 특유의 냄새가 나니까요. 존, 그건 별로 놀랄 일도 아닙니다.”

 

 머쓱해하는 존의 얼굴을 보고 셜록은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셜록은 매의 눈처럼 방안을 훑어보고는, 거실의 너저분한 테이블과 소파, 존의 옷들이 걸려있는 의자 근처에서 잠시 서성였다. 그런 그의 뒷통수에 대고 존은 준비 다 되었으니 와서 앉으라고 소리쳤다.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부엌의 식탁을 보고 셜록은 존이 아까 지은 놀란 표정을 그대로 재연했다. 구운 소시지, 데운 야채와 콩이 섞인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좋은 냄새가 나는 치킨 스튜가 놓인 식탁은 존 자신이 보아도 놀랄 만큼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셜록의 관심은 먹음직스러운 저녁 메뉴가 아니었다.

 

“존, 여기 있던 내 실험도구들은 다 어디 갔죠?”

“……절반은 찬장에, 절반은 싱크대에. 버리진 않았으니 걱정 말고. 그리고 셜록, 거듭 말하지만 여긴 부엌이지 실험실이 아니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존이 식탁에 앉자, 셜록은 재빨리 실험도구들의 안부를 확인한 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고개를 저으며 존이 스푼을 손에 쥐었다. 스튜를 한 입 떠 넣으려다 말고 존은 셜록이 스튜와 야채 등등을 맛보는 것을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셜록은 그걸 알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 음식들을 입에 넣고 있었다. 나이프로 잘게 썬 소시지를 입에 넣다가, 셜록은 존이 먹지도 않고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을 보며 미심쩍다는 듯 말했다.

 

“존, 혹시 나 몰래 음식에 독이라도…”

“아니야, 됐으니까 그냥 먹어!”

 

 평소에도 들은 적 없는 맛있다는 말 같은 걸 바란 내가 잘못이지. 존은 중얼거리며 포크로 소시지를 푹 찔렀다. 그 위용에 잠시 움찔한 셜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먹기에 열중했다. 방금 전까지 하지 않았던, 킁킁거리며 스튜의 냄새를 맡거나 물컵에 무슨 흔적이 있나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행동을 해서 존에게 빈축을 사긴 했지만.

 접시 위의 음식들이 거의 다 없어졌을 때 즈음, 생각났다는 듯 셜록은 입을 열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왔다 갔군요.”

 

 존은 ‘그걸 네가 어떻게…!’ 라고 말하려다 말고, 재빨리 벌어진 입을 수습했다. 그 모습을 본 셜록은 예의 그 잘난 말투로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술 잘도 꺼냈다.

 

“존, 아무리 추워도 휴일 내내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당신이 오늘 하루 종일 뭘 했는지 맞출 수도 있습니다만, 마이크로프트의 일도 포함해서.”

 

 저도 모르게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 그리고 곧 후회했다.

 

“제가 오늘 늦은 아침에 나갈 무렵에 당신은 카우치에 누워서 의학 서적을 읽고 있었죠. 저기 카우치 위에 펼쳐진 채 놓여 있는 책이 보이는군요. 그리고 제가 나간 뒤에 늦은 점심으로 시리얼을 먹었구요. 싱크대 옆에 다 먹고 남은 시리얼 포장이랑 우유팩이 놓여 있던데, 혹시- 우유는 사 왔나요?”

 

존은 싱크대를 향해 외면하며 중얼거렸다. “망할 놈의 우유-”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마이크로프트가 왔겠죠. 그와 대화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부터 당신은 지금까지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왜냐면 어제 당신이 책상 의자에 걸어둔 자켓이 아침에 본 모양 그대로 놓여 있으니까요. 소파에서 누워 있느라 덥수룩해진 머리도 그대로고.”

 

 셜록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존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빙긋 웃으며 셜록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롯가 앞 테이블에 미처 치우지 못한 찻잔 두 개가 보이는군요. 하나는 왼손 방향으로 손잡이가 놓여 있는 걸로 보아 존, 당신이 마신 거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잡이의 것입니다. 카펫에는 마이크로프트가 늘 들고 다니는 우산의 찍힌 자국이 있고.”

“우산 자국? 난 안 보이는데?”

“동그랗게 눌린 자국이 몇 개 있는데 거의 지워졌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형의 이름이 겉봉에 적힌 서류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걸 방금 전 들어오자마자 확인했어요. 차 대접을 한 걸 보니 그 이름의 소유자가 직접 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자넨 역시 굉장해! 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왔다 간 것을 시인했다. 그리고 지금 셜록이 맡고 있는 사건 외에도 마이크로프트가 의뢰하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며 나중에 봉투를 열어보라고 하자 셜록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집안에만 있는 존에게 좀 나다니라며 잔소리하자 존은 펄쩍 뛰며 평소에 네 행동을 돌이켜보라고 반발했다.

 

“그나저나, 저리 찻잎이 수북이 쌓이도록 차를 마시며 둘이 무슨 얘길 했습니까?”

 

 셜록이 싱크대를 손가락질 하자 존은 아- 하더니 금세 웃어 보인다. 내리깐 눈에 즐거움이 어려 있어 셜록은 호기심이 동했지만 조용히 기다렸다. 혼자 큭큭거린지 한참이 지나서야 존이 말했다.

 

“그냥 자네에 대한 조언을 조금 들었지.”

 

 셜록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얘길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무시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냐, 셜록. 들어봐-” 존은 그에게 손짓했다.

 

“마이크로프트가 그러더군. 자네 형은 감시카메라나 사람을 시켜서 누군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데 일가견이 있지만, 자네는 놀라운 관찰력과 추리력만으로 그걸 대신한다고 말이야. 그러니 마치 의처증에 걸린 남편같이 매번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뭘 했는지 줄줄 꿰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라고 하더군.”

 

 푸른 눈이 ‘내 행동이 정말 그렇습니까?’ 하는 의문을 담고 존을 올려다보았다. 존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난 자네의 두뇌를 존경하고 있어.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알아채는 그 훌륭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말이야. 그리고 이미 익숙해져 있으니 내가 뭔가를 설명하기도 전에 모든 걸 대답하는 것도 전혀, 상관없네.”

 

 셜록이 무언중에 정말입니까? 하고 물어오는 것을 느낀 존은 어깨를 으쓱이며 “가끔 놀랄 때도 있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셜록, 누군가와 단지 대화하는 것만으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더 많이 있다는 걸, 자네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 난 자네와 달리 관찰력이 그리 좋지 못해서, 그런 방법들을 주로 쓰거든.”

 

 예 를 들면, 난 내가 만든 이 요리들에 대해서 대화하고 싶군. 셜록, 오늘 저녁은 어땠나? 존의 물음에 셜록은 웃으며 Good, 이라고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기분 좋게 속삭였다. 고맙다고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치우려던 존은, 생각났다는 듯이 셜록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세상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묻는 것들도 있지.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셜록이 고개를 들었다. 존은 아직 사람에 서툰 남자를 내려다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날 사랑하고 있나, 셜록?”

 

 셜록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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