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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0. 20. 00:30

셜존 :: Just kiss him



 가끔 존은 셜록이 자신의 관찰력이나 판단력을 너무 과소평가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는데, 지난 검은 수련 사건 때도 그랬고- 지금이 그랬다.

 저녁식사를 위해 마트에서 사온 식료품들을 낑낑거리며 들고 올라오니, 레스트레이드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아침에 나갔던 셜록이 어느새 집에 돌아와 카우치 위에 누워 있었다. “존, 왔나?” 눈을 감고 있어도 귀신같이 존의 발소리를 알아맞히는 셜록의 능력은 요즘의 존에게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늦게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일찍 왔군, 대꾸하며 존은 식탁 옆에 무거운 봉지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거실의 공기가 매우 탁해져 있음을 눈치 챘다. 존은 킁킁거리며 셜록에게 물었다.

 

“셜록. 자네 또 실험했나?”

“아니- 지금 나는 그럴 여유가 없어. 새로운 사건을 맡았거든. 그러니 말 걸지 말아주게.”

“뭔가 태운 것 같은 냄새가 나는데-?”

 

 오랜 동거생활로 인해 셜록을 괴롭히는 법 또한 터득한 존은 충실히 그것을 이행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셜록에게 들릴만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먼저 부엌으로 가서 가스렌지를 확인했고, 주변에 탄 흔적이나 잿가루가 남아있는지 살펴보았다. “여긴 아무 것도 없어.” 그 다음은 거실이었다. 마치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냄새가 나는 곳을 찾기 위해 존은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킁킁대며 셜록이 누워있는 카우치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셜록은 눈을 번쩍 떴다.

 

“존, 지금 뭘 하고 있는 지 설명해주겠나.”

 

 그러나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존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셜록, 오른손을 잠깐 내밀어 보게.”

“…무슨 문제라도?”

“자네가 좋아하는 관찰과 추리를 좀 연습 해보려는 것뿐이니까. 어서-”

 

 동그랗게 뜬 셜록의 눈이 존의 눈과 마주쳤다. 평소 같았으면 존의 말엔 흥 하고 코웃음 치며 무시했을 그였지만, 지금은 웬일인지 압도적으로 존의 기에 밀리고 있었다. 셜록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아주 천천히, 느리게 오른손을 펼쳐 존의 앞에 내밀었다. 존은 그 손을 잡을 듯 말 듯 하며 살펴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곤 인상을 쓰며 셜록의 손을 홱 나꿔챘다.

 

“셜록! 금연을 위해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있는 게 아니었어?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데!”

“존, 잠깐 이거 놓고…”

“역시나 담배 연기였어. 담배는 어디다 숨겨둔 거야?”

 

 존은 재빨리 몸을 돌려 거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어찌나 강하게 쥐었는지 빨간 자국이 남아있는 손등과 정신없이 탐색중인 존을 번갈아 보며 셜록은 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떨구었다.

 

“존, 자네의 관찰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고맙네만, 난 자네의 의지력이 떨어진 걸 슬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

 

 책상 주변에서 강한 담배 냄새를 감지한 존은 많은 책더미와 서류더미 속을 하염없이 뒤지다가 사기로 된 작은 재떨이를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담배꽁초 하나와 그 옆에 놓여있는 담배갑과 라이터도. 존은 담배꽁초의 끝을 만져보더니 셜록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피운 게 맞잖아? 아직 온기가 남아있어-” 셜록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정말로,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정말로 전보다 많이 좋아졌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담배는 끊겠다더니, 갑자기 왜 피운 거야? 니코틴 패치로도 모자라나? 아님 그게 다 떨어진 건가?”

“마치 지금 내가 피의자가 된 기분이군. 그렇다면 존, 증거를 발견했을 때 다음으로 중요한 건 피의자의 진술이야.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 주겠나?”

 

 입술을 삐죽거리며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셜록은 우아하게 두 손을 턱 밑에 모으고는 범죄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판사처럼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어.”

 

 존은 피식,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음, 그래, 그럼 누군가 담배 피우러 베이커가 221B번지로 왔다 간 거로구만. 나 지금 범인 취조하는 기분인데?”

“정말이야, 존.”

“여기 증거가 남아 있는데도?”

 

 눈앞에 재떨이를 들이미는 존을 보며 셜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오 제발-

 

“존! 난 그냥 불만 붙였을 뿐이야.”

“…불만? 붙였다고?”

“그래! 대체 왜 이렇게 흡연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난 지금 니코틴 패치가 필요한 사건을 맡았고 그래서 두 개나 붙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담배 냄새라도 맡아볼까 했던 거라구! 기필코, 맹세코, 제길, 안 피웠어!”


 씩씩거리던 셜록은 두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그리고는 팽 토라지며 카우치에 쪼그려 누웠다. 그러나 그런 셜록의 반응에도 익숙해져버린 존은 얼굴색 하나 안 바뀐 채 손에 든 재떨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담배갑과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참지 못한 셜록은 카우치 위에서 몸부림쳤다.

“손에선 냄새가 날지 몰라도 내 입은 안 그러니까!”

 

 절규와 비슷한 셜록의 외침이 방 안을 가득 울렸다. 아- 그래? 갸웃하던 존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면 실험해 보면 되겠군.” 누워있는 셜록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곤 당황한 표정을 한 셜록을 지그시 내려다보더니, 그가 뭐라 말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셜록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혔다. 두 손으로 셜록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의 얼굴을 부여잡는 것을 잊지 않고.

 존의 말랑한 혀끝이 자신의 입 속을 훑어 내리는 감각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셜록의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셜록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까스로 한 팔을 들어 존의 목을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혀와 혀를 휘감고, 서로의 입술 끝을 물어뜯을 듯 핥던 두 사람이 몇 초 후 아쉬운 듯 떨어졌다. 거친 숨을 내쉬는 셜록의 붉어진 입술을 내려다보며 존은 미소 지었다.

 

“자네 말이 맞군. 그렇지만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끊는 게 좋겠어. 의사로서의 충고일세. 이건 압수.”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흔들며 존은 거실의 창문을 모두 열어 제끼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입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경험을 한 셜록은 뭐라 대꾸도 못한 채 입술을 달싹거리다 말고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존은 자신의 관찰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셜록의 말을 녹음이라도 해 둘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냉장고 정리를 시작했다. 




 

 다음날, 존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에게서 빼앗아 온 시가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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