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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0. 18. 02:00

셜록 :: I'm fine, thanks, and U?



 카우치에 길게 누운 셜록은 머리맡에 놓아둔 티슈 케이스에서 신경질적인 손놀림으로 티슈를 두 장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코를 풀고 그것을 거실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이전 같았으면 곧바로 잔소리가 날아왔을 터인데,-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하지 않았나, 셜록! 과 같은 -베이커가의 하숙집은 조용하기 이를데 없다. 왠지 짜증이 난 셜록은 파자마의 옷깃을 여미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지루할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해주겠나, 친구?”

“……”


 나무를 새로 넣지 않아 불씨가 사그라져가는 벽난로 위에서 해골은 말이 없었다. 묵묵히 옆모습만 관철하고 있는 그를 보다가 셜록은 한심스런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말없는 자네보단 잔소리쟁이 의사 쪽이 더 나은 것 같군. 설마 자네, 부정하진 않겠지.”


 하도 코를 풀었더니 귓속마저 멍멍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며칠 동안 벽난로에 불을 지피는 것도 잊고 싸늘한 거실에서 오로지 연구에 몰두했더니 찾아온 컨디션 난조가 결국 감기를 불러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아침부터 불을 피우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셜록은 카우치에 누워 티슈 케이스를 끌어안은 채 뒹굴거리고 있었다. 때때로 ‘지루해 죽겠군’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불이 꺼져 가니 얼른 나무를 넣어야 할 텐데 그 몇 걸음 걷는 것도 귀찮았다. 싸늘해지는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셜록은 담요를 가지러 침실까지 가는 것이 간단할지 아니면 난로에 나무를 집어넣어 불길을 되살리는 것이 빠를지 그 명석한 두뇌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빼꼼히 들어, “자네, 나대신 난로에 나무를 넣어 줄 생각은 없나?” 하며 애절한 눈빛으로 해골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털썩, 카우치에 쓰러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거실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목소리가 들리기에 누가 있는가 했더니,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나보군.”


 귀찮다는 듯 눈꺼풀을 들어올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고 자시고도 없다. 그 목소리는 그의 형 마이크로프트의 것임에 분명했으니까. 셜록은 코를 들이마시며 보기 싫다는 듯 돌아누웠다. 마이크로프트는 우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난로 앞의 소파에 가 앉았다. 재가 날리는 벽난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것을 잊지 않으며.


“셜록, 네 룸메이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너에게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나한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던데.”

“어인일로 행차신가 했더니, 그래서였군.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내 룸메이트가 아니야.”

“그래, 그럼 정정하지. 네 룸메이트‘였던’ 으로. 그리고 왜 텍스트에 답장을 안 했나?”

“글쎄, 텍스트를 받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별 볼일 없는 내용이었겠지. 잘 지내고 있나? 같은 내용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질문에 굳이 대답해야 하는 건가?”


 툴툴거리는 그를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혀를 끌끌 찼다.


“셜록, 이럴 때 보면 넌 영락없는 어린애야. 그럴 땐 그냥 ‘물론이지’ 같은 대답을 해 주는 거야. 머리가 좀 더 돌아간다면 ‘자네는?’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대체 네 머릿속에는 그런 기본적인 대화기술이 왜 입력이 안 되어 있는지 모르겠군.”

“신경 쓰지 마. 그런 건 내게 필요 없는 것들이니까.”

“그러시겠지. 그리고 보아하니 그다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 않고 말야.”


 발끝에 채이는 서류더미와 신문지, 휴지조각 따위를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눈가를 찡그렸다. 그가 몇 시간 전 존에게서 전화를 받은 건 사실이었다. 셜록이 자신의 전화도 받지 않고 메일에 답장도 하지 않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며, 그의 형에게 하는 전화라서인지 한참 어색한 말투로 셜록의 안부를 물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별 일 없을 거라며 그를 안심시켰지만, 몇 주 동안 공무가 바빠 동생의 일에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며 곧바로 이곳으로 찾아왔다.

 존이 사라와의 결혼을 이유로 베이커가를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이크로프트는 동생에 대한 조력자를 이렇게 빨리 잃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무척 아쉬웠다. 물론 존에게 그런 심경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 리고 그 룸메이트가 떠나자마자 셜록에게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나니, 마이크로프트는 존을 불러 기간제로 셜록을 돌보는 것에 대한 협상이라도 다시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한편으로 (몇몇 분야에) 천재적인 두뇌를 소유한 멍청한 동생에 대한 저주도 잊지 않았고. 아마도 셜록은 자신이 지금 쓸쓸하게 홀로 늙어가는 홀아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마이크로프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놓인 셜록의 핸드폰을 우산으로 가리켰다.


“핸드폰은 왜 안 받는 거야?”

“음… 배터리 충전을 한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군.”

“메일은?”

“화학 실험을 하느라 메일을 확인 할 겨를이 없었어. 기계들은 화학 약품에 약하니까 가급적이면 켜지 않는 게 좋거든. 그런데 대체 왜 내가 이런 걸 일일이 설명해야 하지? 내가 그렇게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으로 보이나? 텍스트나 메일에 바로바로 답장할 수 있는 사람처럼?”

“그 말은 내가 아니라 존 왓슨에게 하는 것이 좋겠어, 미련한 동생아. 난 너랑 이렇게 몇 분 동안 앉아서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질리는데, 그는 어떻게 이곳에서 생활했는지 새삼 존경스러워 지는군.”

“형이야말로 그 말은 존에게 직접 하도록 해. 그리고 그는 더이상 내 룸메이트도 아무것도 아니니까 여기 없는 사람 이야기는 이제 관두는게 어때. 듣고 싶지 않으니까.”

“걱정해주는 사람에게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셜록?”


 마이크로프트의 그 말에 셜록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결국 폭발하듯 발끈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왜- 그는 직접 와서 물어보지 않지? 내가 그렇게 걱정된다면 말이야!” 여파로 뎅뎅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셜록은 어린애처럼 다시 휙 돌아누웠다.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마이크로프트는 없던 편두통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셜록, 넌 정말 구제불능이고-”

“…어린애 같다고 말하려는 거 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 제발 좀 나가는게 어때?”


 헐어버릴 것 같은 코를 어루만지며 셜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붉어진 얼굴이 참으로 볼만했다. 휘청거리는 그를 보며 어제 오늘 뭘 좀 먹긴 한 거냐고 묻는 자신의 형에게 셜록은 갑자기 엄마라도 된 것 마냥 굴지 말라며 침실로 향했다. 쾅, 하고 닫히는 문 뒤로 마이크로프트는 외쳤다.


“셜록, 대체 왜 사건은 안 맡는 거야? 요즘 한가한 거 다 알고 있어!”


  그리고 셜록은 “지루한 것들 투성이야!!!” 라는 마지막 외침을 끝으로 모든 의사소통을 거부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전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갑갑한 동생을 둔 형의 죄려니… 생각하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눈에 벽난로 끝에 놓여 있는 나이프와 서신들이 들어왔다. 평소라면 날카롭게 꽂혀 있었을 봉투 칼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왠지 호기심이 동한 마이크로프트는 그것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가운데가 조금 찢어져 있는- 아마도 셜록이 나이프로 꽂았다가 뜯어보았을 -편지의 겉봉에는 그가 아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Dr. John H. Watson.


 서신은 열어보지 않은 것 한 두통과 열어본 것들 서너 통 정도가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 중 하나를 펼쳤다.


 [셜록, 내가 그곳을 떠나 온지도 벌써 삼 주가 흘렀군. 자네는 잘 지내고 있나? 답장이 없어서 걱정이지만 그만큼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말일 테니 나는 내심 안도하고 있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게나.]

 [오랜만에 펜을 드는군. 자네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메일도 핸드폰도 확인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바쁘지 않다면 전화, 아니, 텍스트라도 한 통 보내 주겠나? 베이커가의 그 하숙집에 찾아가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이 바빠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하는 날 용서하게나, 셜록.]


 대충 그런 내용들과 소소한 자신의 이야기들이 빼곡이 적혀있는 편지를 보면서, 마이크로프트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보다가 그 중 맨 밑에, 글자체가 다른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꺼냈다. 누구의 것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존. 처음으로 편지를 쓰는군. 연락이 늦어서 미안하네. 바쁘다 보니 다른데 정신을 쏟을 여력이 없어. 나는 잘 지내고 있네… 자네는…]


 마지막 줄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자네가 잘 지내길 바라네. 라고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자네는 어떤가? 라고 형편없는 글씨로 고쳐 쓰고는 결국 그만 둔 모양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피식 웃으며 그것들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순서가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면 귀신같은 관찰력을 가진 셜록이 자신의 물건을 뒤졌다고 화를 내겠지만 그런 것쯤은 무섭지도 가렵지도 않았으니까 상관없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조금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어색한 전화를 하는 대신 천천히 손가락을 놀려 텍스트를 작성했다.


 [셜록 홈즈 위독. 긴급 의사의 내진 요망. - M.H]


 나는 잘 지내, 너는? 그 한마디가 어째서 그리 어려운건지, 마이크로프트는 아무래도 날 잡아서 셜록에게 사교 화술의 기본부터 가르쳐야(잔소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찌 되었든 곧 감동적인 재회의 현장이 있을 테니 일단 눈치 있게 사라져 주고, 대신 비서에게 말해 이 집에 감시 카메라를 하나 놓아볼까, 고민하며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있는 베이커가의 하숙집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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