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lailar

Rss feed Tistory
Gen 2011. 1. 21. 09:00

셜존 :: 221B Baker의 아이들 - 4




:: 비 오는 날 ::


  흐린 밤이었다. 낮 동안 게릴라성 호우에 시달려 가면서 범인의 흔적을 쫓느라 얼굴 한 가득 짜증을 달고 집으로 돌아온 셜록은, 젖은 코트를 벗고 사건에 몰두하면 으레 그렇듯 소파에 누워 혹은 방에 처박혀 말없이 노트북만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빅토리아와 에밀리는 그런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존이 차려놓은 저녁을 먹고 TV를 보았다. 늦은 저녁이 되자 스르르 잠들어 버린 에밀리를 안아 방에 눕힌 존은 점잖게 제 방으로 들어오는 빅토리아에게 굿나잇 키스를 했다.


  “파파 셜록은?”

  “파파는 지금 바쁘니까, 오늘은 굿나잇 인사 생략하자. 잘 자, 비키.”

  “응. 굿나잇, 파파”


  그 때 갑자기 우르릉 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쏴아아- 하고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꺅, 하고 작게 비명을 지른 빅토리아는 놀라 어깨를 움츠렸지만, 존이 바라보자 이내 몸을 세우고 당당한 표정을 했다.


  “갑자기 왠 소나기가… 비키, 안 무서워? 에밀리랑 같이 잘 수 있겠어?”

  “괜찮아. 조금 놀랐을 뿐이야. 잘 수 있어 파파.”


  움찔거리면서도 어른스럽게 대답하려 애쓰는 빅토리아가 걱정이 되었지만, 존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방문을 닫았다. 안에선 에밀리가 잠꼬대를 하는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한참을 닫힌 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던 존은 이윽고 조용히 뒤돌아섰다. 그를 맞이한 건 창백한 피부를 드러내며 드라큘라 백작처럼 서 있는 셜록이었다. 존은 아까 천둥소리에 빅토리아가 놀란 것보다 더더더 울트라캡숑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셜록!”


  탄식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며 버릇처럼 뒷주머니에 손을 가져다댄(그러나 주머니엔 다행히도 아무것도 없었다) 존은 후하후하 심호흡을 했고 방금 하마터면 그의 총에(총이 있었다면) 맞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셜록이 태연스럽게 말했다.


  “존, 비가 오는군.”

  “그래. 방에 있던 거 아니었어? 언제 내려 온 거야?”

  “방금.”


  거실에 켜 둔 스탠드 불빛이 어슴푸레 셜록을 비춘다. 밤이 늦었는데 옷도 갈아입지 않고 수트 차림으로 내려온 그는 무표정했지만 눈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건 존이 익숙하게 보아왔던 광채였다.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을 때 주로 나타났던-. 존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가정을 입 밖에 냈다.


  “설마..., 이런 날씨에, 이 밤에, 나가려는 건 아니겠지, 셜록.”


  언제나 존의 예상을 벗어난 적이 없는 셜록은 이번에도 그가 우려했던 최악의 대답을 했다.


  “지금 레스트레이드에게 연락하려던 참이야.”

  “지금?”

  “그래.”

  “농담이지?”

  “존, 사건 현장에 중요한 단서가 있었어! 바보같이 그걸 놓치다니! 늦으면 내일 아침에나 돌아올 거야.”


  거실 문에 걸려있는 덜 마른 코트를 집어 든 셜록은 재빨리 그것을 꿰입었다. “셜록!” 존이 외쳤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번쩍하며 하늘을 가른 번개가 창문을 뚫고 내리꽂혔다. 구멍이라도 난 듯 들이 붓는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이런 날씨에 단서를 발견하려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범인은 그가 있는 곳에서 도망가지도 못할 거라고 존이 말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기적처럼 아이들 방의 문이 열리면서 빅토리아가 엉엉 우는 에밀리를 데리고 걸어 나왔다. 그녀의 요정의 날갯짓 같은 속삭임이 셜록을 멈추게 했다.


  “파파?”

  “빅토리아.” 셜록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빅토리아는 흰 곰 인형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엉엉 울고 있는 에밀리에게 말했다. “쉿, 조용히, 에밀리.” 그리곤 다시 그녀의 아버지들을 예의 똘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파파 셜록, 어디 가?”

  “파파, 파파, 무서워. 하늘이 꾸르릉 해.”


  에밀리의 칭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둥소리가 다시 한 번 내리쳤다. 꺄악! 에밀리는 놀라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고 그녀를 재빨리 안아 올린 존은 등을 두드리며 “괜찮아, 괜찮아 에밀리. 울지마-” 그녀를 달랜다. 셜록은 입술을 꽉 깨문 빅토리아를 내려 보다 그의 한 손을 내밀었다. 작게 떨리는 빅토리아의 손이 그 손 위에 얹힌다.


  “빅토리아, 잠이 안 와?”

  “응. 천둥소리 때문에 에밀리가 자꾸 우는데 달래도 소용없었어.”


  셜록은 빅토리아의 작은 손에 입을 맞추더니 코트를 벗어 다시 벽에 걸었다. 눈이 동그래져 저를 보는 존에게 셜록은 한쪽 눈썹을 꿈틀, 하더니 빅토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흠, 그럼 비가 그칠 때까지 동화책이나 읽을까.”


  아까까지만 해도 당장 사건 현장에 가야만 하는 것처럼 굴더니, 빅토리아와 에밀리의 등장으로 180도 바뀌는 그의 태도에 존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맞은 것처럼 벙쪘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건 작은 감동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 셜록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라고 있지만, 반대로 그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셜록 홈즈에게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게 생길 거라고, 그들 가족의 생활을 걱정하던 사람들 중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존은 에밀리를 토닥거리며 기쁜 듯 속삭였다.


  “에밀리, 그만 뚝 하면 파파 셜록이 동화책 읽어준대.”


  에밀리의 정말? 하고 묻는 목소리를 기대했던 존에게 돌아온 반응은 슬프게도, 발버둥치는 에밀리의 울음소리뿐이었다. 그녀는 존의 목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싫어. 파파 셜록 무서워. 늑대 나오는 거 무서워. 싫어…”

  “난 좋은데. 파파, 빨간 망토 이야기 해줘.”

  “시러어!!!!!”


  잘하는 거 하나 없는 셜록이 장보기, 설거지하기, 청소하기, 정리하기, 애보기보다 그나마 아주아주 조금 잘 하는 게 동화책 읽어주기였는데…! 평소엔 순한 양 같은 에밀리가 이렇게 거부감을 표시하는 건 처음이라 존은 적잖이 당황했다. 전에 에밀리에게 빨간 망토 이야기를 읽어줬을 때, 과장 잔뜩 섞어서 늑대는 에밀리같은 어린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잡아먹으려 밤마다 산에서 내려온다고 말했다가 펑펑 울린 적이 있는 걸 존에게는 말하지 않았기에 셜록은 의혹이 가득한 눈초리로 자신을 째려보는 존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시치미를 뗐다. 하는 수 없이 존은 에밀리를 데리고 그녀들의 방을 손가락질 하며 먼저 들어가서 재우겠다고 셜록에게 입을 벙긋거렸다.




  빗소리가 사그라질 무렵, 그러니까 몇 시간 쯤 지나서야 겨우 잠든 에밀리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존은 방을 빠져 나왔고, 거실에서 귀여운 광경을 보았다. 소파에 누워 쿠션을 베고 잠든 귀여운 빅토리아의 손을 그 큰 손으로 꼬옥 잡고 엎드려 잠들어 있는 셜록의 모습을. 그것은 누가 봐도 훈훈한,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정석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존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존이 셜록과 동거 - 그러니까, 진짜 그런 의미의 동거 -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했을 때, 도노반 형사가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당했어요?” 라고 물은 건 어디까지나 농담이었겠지만, 그 두 사람이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는 얘기에는 도노반 뿐 아니라 모두들 “영국의 미래를 망칠 셈이야?” 라는 반응과 함께 꽤나 진지한 얼굴로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그만 두게.” 라고 말했던 걸 존은 기억했다. 그들은, ‘알고 보니 지구가 평평함 ㅇㅇ’ 이라는 논문 발표가 인정되는 것과, 그 자신 밖에 모르는 셜록이 그의 삶에 존을 받아들였다는 얘기 중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전자를 택할 사람들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존도 셜록이나 자신의 생활 방식이 아이들에게 끼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존은 제 눈앞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영국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육아를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셜록과 빅토리아가 덮을 이불을 가지러 침실로 향하는 존의 발소리가 고요한 베이커가를 나지막이 울렸다.




- 가므님이 딸바보 셜록이 밤늦게 나가려다 빅토리아에게 발목잡힌 귀여운 이야기를 주셔서 그대로 쓰려고 했는데 어찌 하다 보니 시작과 끝이 두리뭉실하다 ㅠㅠ 죄송 ㅠㅠㅠㅠㅠㅠ




,
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