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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1. 1. 19. 09:00

셜존 :: 221B Baker의 아이들 - 3




:: 마트에서 ::


  파파 존은 마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쇼핑해야할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샐러드를 만들 야채들과 씨리얼, 바나나 한 송이, 사과 몇 알, 우유, 거실 스탠드에 바꿔 낄 전구와 부엌용 세제 정도. 그래서 에밀리를 데리고 재빨리 쇼핑하고 올 수 있겠다 싶어 나섰던 건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존뿐이 아니었던 게 문제였다.


  “사과가 절반 가격! 타임 세일입니다! 지금 아니면 못 사요!!”


  물건들은 모두 다 카트에 담았고, 남은 건 사과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며 점원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지만, 몰려드는 아주머니들이 점점 많아지자 존은 에밀리를 태운 쇼핑 카트를 가까스로 붙잡고 사과를 봉지에 담고 있었다. 그랬다. 마트 안에, 존의 주위에, 사람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그리고 존의 속도 터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사과 다섯 개를 봉지에 담은 존은 ‘사과에 환장했냐!’ 고 버럭 외치지 않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수많은 인파 속에서 몸을 빼냈다.


  “파파?”


  존이 집어넣는 사과 봉지를 만지작 거리며 에밀리가 활짝 웃는다. 통통한 볼이 추위 때문인지 붉게 물들어 있다. 빨간 망토를 입고 후드를 쓴 채 카트에 대롱대롱 다리를 흔들며 앉아있는 에밀리는 바구니만 들려주면 동화책에서 막 튀어나온 소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깜찍했다. 내 딸이지만 정말 공주님이 따로 없구나…생각하며 에밀리의 그 해맑은 모습에 존은 짜증 섞인 마음을 죄다 흘려보내 버리고는 덩달아 방싯 웃어주었다.


  “기다렸지? 다 샀으니까 가자, 에밀리.”


  그러나, 등을 돌리는 존에게 에밀리는 할 말이 있었다.

 

  “파파아?”

 

  쇼핑 카트를 잡는 존의 손등을 장갑 낀 작은 손이 사정없이 내리친다. 놀라 존은 저도 모르게 아오! 하고 소리 질렀다. 이럴 때 보면 외모는 공주님인데 힘은 장사가 따로 없다. 바보 아빠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에밀리는 카트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유. 우유가 없어.”


  들여다보니 정말 그랬다. 분명 아까 유제품 코너를 지나면서 넣었던 것 같은데. 애를 키우다 보면 건망증이 심해진다던 주부들의 이야기는 절대 자신에게 해당사항이 없을 줄 알았건만. 덕분에 셜록의 잔소리를 면한 존은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우유 코너에 가서 녹색 페트를 하나 집어넣었다. 잘 했다는 듯 에밀리가 박수를 쳤다. 몇 번 존을 따라 마트에 와 보았던 에밀리는 그때마다 존이 우유를 샀던 걸 기억하고 있었던 듯했다. 분명 얜 날 닮아서 이렇게 똑똑한 걸 거야. 셜록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생각을 하며 존은 흐뭇해했다.

  또 빠트린 게 없나 하고 카트 안을 살펴보는 존을 에밀리가 이번엔 속삭이듯 불렀다.


  “파파.”

  “응?”

  “에밀리는 당근 말고 쵸코가 좋아.”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에? 하고 쳐다보는 존을 보며 에밀리는 베시시 웃고는 “저거, 저거” 카트 안에 당근 봉지가 담겨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제야 존은 아아, 했다.

  이제 막 네 살이 된 에밀리는 어려서인지 언니인 빅토리아보다 야채류를 좀 더 편식하는 편이었다. 주로 당근, 양배추와 같이 향이 강한 것들을 싫어했는데 존이 당근을 사려고 하는 걸 보고 먹기 싫었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에밀리, 스튜에 당근 넣을 건데 싫어?”

  “당근 싫어.” 에밀리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럼 당근 대신에 쵸코 넣을까? 다 녹을 텐데?”


  그러자 에밀리는 고개를 갸웃 했다.


  “넣으면 맛 없으까?”


  초콜릿을 넣은 스튜라니! 그건 이미 스튜가 아닌 형태겠지만 그래도 먹고 싶어하는 그 순진함이 귀여워 존은 에밀리를 놀렸다.


  “에밀리, 파파 셜록이 전에 말했잖아. 당근 안 먹는 아이는 나중에 늑대가 와서 어흥, 하고 물어간다? 진짜야.”


  그 말에 에밀리는 꺄악 하며 강하게 거부했다.


  “늑대 싫어!”

  “파파도 늑대 무서워. 늑대 입이 얼마나 큰데. 그러니까 에밀리, 쵸코 말고 당근 먹자?”


  사실 늑대가 찾아온다 해도 그녀를 물어가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날렵하게 박제하어 베이커가의 벽을 장식하는데 쓸, 늑대보다 무서운 파파가 둘이나 있다는 걸 알 리 없는 에밀리는 오들오들 거리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착하네, 에밀리. 쵸코는 말 잘 들으면 다음에 사줄게. 파파랑 비키가 기다릴 테니 그만 집에 가자.”

  “꼭 사줘야 해?”

  “그래. 그럼 오늘은 에밀리가 계산도 해볼래?”

  “응!”


  신이 나서 두 팔을 마구 휘젓는 에밀리의 볼에 뽀뽀를 하고 존은 무인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10분 뒤, 존은 아까 수많은 인파에게 시달렸어도 욕 한 번 안했던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마음 따위 깡그리 잊고 계산대 앞에서 외치고 말았다. “젠장, 지금 하고 있잖아!” 옆에서 에밀리가 따라했다. “젠장! 바보!” 그러자 계산대가 대꾸했다. “상품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바코드를 가까이 대 주세요.” 존은 시리얼 봉지를 내동댕이치곤 이마를 감싸 쥐었다. 에밀리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에밀리가 하는 파파의 정확한 발음은 파빠↘아↗? 임.
- 가므님 댓글 보고 뿜긴 나머지 마트에서 싸우는 부녀로 급 연성 ㅠㅠㅠㅠㅠㅠ 역시 아이디어 뱅크 가므님!
- 추가. 에밀리의 모델이 된 애는 얘... http://twitpic.com/3q3tf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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