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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1. 1. 18. 08:00

셜존 :: 221B Baker의 아이들 - 2




:: 누가 더 좋아? ::


  풀기 어려운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레스트레이드의 권한으로 셜록이 불려오는 일이야 비일비재했고 그 때문에 레스트레이드 관할 소속 팀원들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언젠가부터 그들의 문제제기의 초점은 셜록이 아닌 그가 데리고 오는 동행에게 맞춰지고 있었다.


  “저 셜ㄹ…, 또 불렀어요, 경감님?”


  아이 앞이라 차마 그 아버지에게 freak이라는 표현은 쓰지 못하고 그렇다고 셜록이라고 이름을 불러주기도 싫었던 도노반 형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레스트레이드를 쏘아보았다.

  사건은 런던 시내의 한 귀금속점에서 일어났고 살해당한 사람은 그 주인 부부였다. 한겨울이라 날씨는 무척 추웠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를 깜찍한 분홍 리본으로 양 갈래 묶고 흰 머플러와 장갑, 귀마개를 한, 털 달린 갈색 코트 차림의 귀여운 빅토리아 홈즈-왓슨과 참으로 안 어울리는 예의 그 파란 코트 차림의 셜록이 손을 잡고 귀금속점 앞에 나타났을 때, 레스트레이드는 진심으로 팀원들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살인 사건의 현장에는 미성년자를 데리고 나타나면 안 된다고 못 박아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안녕, 빅토리아.” 도노반이 억지로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빅토리아가 방긋 웃었다.

  “안녕, 춥지 않니?” 레스트레이드의 말에 빅토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인사가 끝나자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붙잡고 빅토리아가 들리지 않을 만 한 거리로 끌고 간 다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대체 애는 왜 자꾸 데려오는 거야? 여기가 무슨 놀이방이라도 되는 줄 알아?”


  레스레이드의 항의에 셜록은 눈썹 하나 꿈쩍 하지 않으며 대꾸했다.


  “그럼 애를 집에 홀로 두고 나오란 말인가? 자넨 그러고도 아버지라 할 수 있나? 정말 매정하군.”


  엄연히 레스트레이드도 처자식이 있는 몸이고 언제나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라 자부하며 살았는데 사이코패스 저리가라면 서러울 셜록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에게 매정 어쩌고 운운하는 건 정말 모욕적인 발언이었기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한 레스트레이드는 그래도 아이 앞이니 진정하려 애쓰며(그러나 얼굴은 한껏 구기며) 셜록을 몰아세웠다.


  “그럼 존은 집에서 뭐 하고? 우리가 자네 애 봐주는 보모냐고! 자네야말로 아이를 이런 곳에 데려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 안 해?!”

  “존은 지금 에밀리를 데리고 장 보러 갔어. 급하게 부른 건 자네고 난 불평 들을 이유가 없으니 잔소리는 집어 치우게.”


  너무나 당당히도 말을 마친 셜록은 다시 빅토리아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작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레스트레이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때마침 귀금속점 입구에서 앤더슨이 장갑을 벗으며 걸어 나왔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홈즈-왓슨 부녀를 본 순간 급 구겨지는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천재 나으리 납시셨군. 괜히 현장 어지럽히지 말고 애 데리고 놀이동산이나 가지 그래?”

  “놀이동산은 재미없어요. 사람도 너무 많고, 소리 지르는 애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싫어요.”


  일부러 빈정거리는 앤더슨의 말에 셜록이 반박할 틈도 없이 빅토리아가 끼어드는 바람에 순간 현장은 벙찐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셜록 하나만으로 족했지만 졸지에 둘이 되어버린 앤더슨은 코웃음을 치며 빅토리아에게 인사했다.


  “안녕.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지, 꼬마 아가씨?”

  “아빠 따라 온 것뿐이에요, 앤더슨 아저씨.”


  빅토리아가 몸을 돌려 셜록을 끌어안는 바람에 (키가 작은 그녀는 결국 셜록의 다리를 끌어안은 꼴이 되었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레스트레이드는 애 앞에서 한심하게 뭐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셜록을 재촉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셜록, 시간이 없으니 얼른 들어가기나 해. 빅토리아는… 잠시 앤더슨에게 맡겨두고. 앤더슨, 자넨 여기서 기다려.”


  그 말에 앤더슨은 정색을 하며 반항했다.


  “여긴 제 담당이라구요! 왜 제가 애를 봐야 합니까??”

  “그냥 잠시만 봐 달라는 거잖아. 5분이면 된다고.”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빅토리아는 여느 아이들보다 더 조숙하고 자기 주관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무의미한 설왕설래를 중단시킨 건 이번에도 그녀였다.


  “앤더슨 아저씨랑 놀면 바보가 옮는다고 아빠가 그랬어요.”


  라며, 그녀는 셜록의 손을 놓고 도노반 형사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꼬옥 붙들었다. 얼결에 선택당한 도노반 형사는 웃어버렸고 순간 턱이 목까지 떨어진 앤더슨의 비명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무, 뭐, 지금 뭐라고?” 셜록은 역시 내 딸은 똑똑하다는 표정으로 빅토리아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손이라도 하나 까딱 했다간 넌 끝장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시선에 담아 앤더슨에게 쏘아 보내며 셜록은 귀금속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르는 레스트레이드는 피식거렸고 앤더슨은 셜록에 이어 그 딸까지 자신을 무시한다며 뒷목을 잡고 거품을 물었다. 꼬르르륵.

 





  셜록이 사건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 도노반은 빅토리아의 손을 꼬옥 잡고 현장 주변을 거닐었다. 도노반은 아이를 귀여워하는 편이었고 빅토리아는 그 나이 또래에 걸 맞는 귀여움과 순진함을 가졌지만, 저 악랄한(?) 셜록 홈즈의 딸이니 만큼 지나치게 솔직하고 도도했기 때문에 도노반은 그녀를 상대하는 것에 조금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도노반은 행여 그녀가 추울까 경찰차 뒷좌석의 문을 열어 그녀를 태웠다. 빅토리아는 귀여운 양 갈래 머리를 흔들며 공주처럼 긴 코트자락을 붙들고 차 안에 올라탔다. 도노반은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머리 예쁘네. 직접 묶은 거야?”

  “아뇨. 파파 존이 해줬어요. 오늘은 성공했지만 가끔 이상하게 묶어서, 그럴 땐 제가 다시 매지만요.”


  도노반은 존이 빅토리아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아침마다 씨름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풉, 하고 웃고 말았다.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전혀 가정적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도노반은 서툰 아버지로서의 셜록을 기대하며, 여차하면 그를 비웃어줄 요량으로 빅토리아에게 캐내듯 물었다.


  “정말 앤더슨 아저씨랑 놀지 말라고 아빠가 그랬어?”

  “네. 멍청하니까 조심하라고 했어요.”

  “그럼 레스트레이드는?”

  “레스트..?” 빅토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홍 리본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함께 팔랑인다.

  “아, 아까 아빠랑 함께 간 흰 머리 아저씨 말이야.”

  “아아, 그 아저씨요…”


  빅토리아는 입술을 뾰족하게 모으더니, 샐쭉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 아저씨에 대해선 별 말 없었어요. 단지 파파 존이…”

  “파파 존이 왜?”

  “틈만 나면 그 아저씨가 파파 셜록을 불러낸다고 싫어해요. 파파 셜록이 그 아저씨를 너무 좋아한다구요. 제 생각엔 파파 존이 질투하는 것 같아요.”


  할 수만 있다면 도노반은 빅토리아가 안 보는 곳에서 배를 잡고 실컷 웃고 싶었다. 빅토리아에게서 몸을 돌리고 부들부들 떨며 웃음을 참은 그녀는 빅토리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레스트레이드는 파파 셜록과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그저 둘이 같이 일하는 걸 좋아해서 자주 만나는 것뿐이라고 자신의 상사를 변호해 주었다. 그러자 빅토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 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겠죠. 파파 셜록한테는 파파 존뿐이니까요.”

  “풉.. 빅토리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다 알아요. 파파 셜록은 파파 존이 혼자 나가버리면 힘이 없어지는 걸요. 꼭 시든 양배추 같이 흐물흐물하게 변해요. 으엑, 그거 진짜 맛없는데.”


  셜록을 양배추에 비유하며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빅토리아의 발상이 귀여워 도노반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꼭 끌어안고 말았다.


  “너 정말 귀엽구나. 빅토리아는 파파 셜록이 좋아?”


  빅토리아는 그녀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빠를 꼭 닮은 파란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그럼요.”

  “어떨 때 가장 좋은데?”

  “동화책 읽어줄 때요. 파파 셜록은 빨간 망토를 잡아먹는 늑대 연기를 정말 잘 해요!”


  동화책이라니…! 그것도 늑대!! 머리 묶어주는 존에 이어 빅토리아를 앉혀놓고 동화책 읽어주는 셜록을 상상한 도노반은 그것이 자신의 정신에 강렬한 2연타를 날렸음을 부정하지 못했다. 참지 못하고 결국 낄낄대며 웃어버린 그녀에게 그들 부녀의 생활도 평범한 가족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셜록이? 정말 그 셜록이?” 중얼대며 웃는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보던 빅토리아는, 귀금속점 문을 열고 셜록이 걸어 나오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차 문을 열고 그를 향해 총총 달려갔다.


  “파파!”


  셜록이 빅토리아를 안아 올리자 그녀의 손이 셜록의 목을 휘감았다. 일순 셜록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정말 완벽한 아빠의 미소였기에 도노반은 자신이 본 것을 의심했지만 다시 보았을 때 그것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빅토리아와 나눈 이야기와 그 미소가 합쳐져, 도노반은 진정 셜록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재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의 증거물을 기반으로 범인의 특징을 레스트레이드에게 설명해준 셜록은 그만 점심 먹으러 가봐야겠다며 빅토리아를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셜록의 검은 장갑 낀 커다란 손 안에 빅토리아의 귀여운 토끼 무늬 장갑이 폭 파묻혔다. 다른 한 손을 흔드는 빅토리아에게 마주 인사하려던 도노반은 문득 장난치고 싶은 마음에 빅토리아에게 물었다.


  “빅토리아, 빅토리아는 파파 존이랑 파파 셜록 중에 누가 더 좋아?”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 1순위에 뽑힐 금기의 그것을 묻는 도노반에게 그게 무슨 쓸데없는 질문이냐고 떽떽거릴 줄 알았던 셜록의 눈썹이 꿈틀, 하더니 아무 말도 않는다. 레스트레이드도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빅토리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셜록의 얼굴을 한 번 올려다보고 입을 열었다.


  “…파파 셜록이 조금 더 좋아요.”


  이 깜찍한 고백에 셜록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왜, 왜?” 놀란 레스트레이드가 저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자 셜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단 두 마디에 실린, 어째서 이런 놈을 그 존 왓슨보다 더 좋아한다는 말이냐는 함축적인 의미를 파악한 건 역시 그녀의 아버지 뿐. 모종의 무언가를 원했던 질문자의 의도와는 달리, 빅토리아는 너무도 단순한 이유를 댔다.


  “음…난 비키라는 이름이 싫은데 파파 존은 날 비키라고 부르거든요. 그건 좀… 너무 어린애 같지 않아요? 난 빅토리아가 더 좋아요. 파파 셜록은 날 한 번도 비키라고 부른 적이 없어요. 사실 그것만 빼면, 파파 존도 좋아요. 근데 이런 멍청이 같은 질문에 답하지 말라고 파파 셜록이 그랬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빅토리아. 그렇지만 정말 멍청한 질문이로군. 그만 가자.”


  빅토리아는 셜록의 손을 잡고 깡총거리며 발걸음을 놀렸고 틈만 나면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 셜록은 코트를 펄럭이며 빅토리아에게 반쯤 끌려가는 모습으로 걷기 시작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멀리 사라지는 두 부녀의 뒷모습을 보며 빅토리아에게 손을 흔들던 레스트레이드가 도노반을 향해 말했다.


  “굉장하지?”

  “굉장하네요.”

  “정말 닮았어.”

  “닮았어요. 신기하게도.”


  그러면서 그들은 다음번에 만나면 절대 비키라고 부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 매 화 스토리는 존잘 가므님의 망상을 기반으로 제 망상이 쪼끔 더해짐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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