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lailar

Rss feed Tistory
Gen 2011. 1. 6. 00:30

셜존 :: 생일선물




  그날은 셜록의 생일이었지만 물론 당사자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 담고 있지 않았다. 마침 사건도 똑 떨어져 셜록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나날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서 존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나갈 채비를 했을 때, 셜록은 마냥 병원 일이 바쁜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존이 떠난 베이커 가에서 그가 끓여놓고 간 차를 마시며 총알구멍이 난 벽을 감상하던 셜록은 다음은 벽에 폭탄을 달아볼까 하는 생각에 빠져 머릿속에 구체적인 계획을 짜느라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듣지 못했다. 텍스트 알람이 다섯 번 쯤 울렸을 때 셜록은 폭탄을 제조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밀매업자에게 구매하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고 있었고, 여섯 번쯤 울렸을 때에야 자신을 방해하는 알람 소리에 신경질을 내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안시아에게서의 메시지였다. 물론 그녀의 번호가 셜록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첫 번째 문자 서두부터 자신임을 밝히고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시아입니다. 셜록, 마이크로프트에게서 들었어요. 생일이라면서요. 축하드려요.]


  메시지함에 가득한 생일 축하 이모티콘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셜록은 왠지 그녀가 자신의 답장을 받을 때까지 이모티콘들을 보낼 것 같아 결국 답신을 보내고 말았다.


  [스팸 메시지로 신고하기 전에 그만 보내요. 덧붙이자면, 흔한 이모티콘들을 복사해서 붙이다니 성의가 없군요.]


  텍스트를 보내고 5초 만에 답신이 왔다. 그 놀라운 속도도 속도지만 그 내용에 셜록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제가 직접 하나하나 작성한 이모티콘이예요. 제 창의력을 무시하시는군요.]


  그거 정말 놀랍군. 아니 이게 아닌가. 근데 오늘이 내 생일이었어? 근데 어쩌라고. 그녀의 메시지에 수많은 상념들이 교차한 셜록은 [굿 잡] 한 마디로 답신을 끝내고는 핸드폰을 꺼 두었다. 부디 그녀가 더 이상의 이모티콘을 보내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고는 다시 소파에 앉아 폭탄 조달에 대한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서두른 존은 셜록의 선물을 사러 나온 건 아니고 병원에 와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룸 메이트의 생일인데 그냥 보낼 수 없다 싶어 일이 끝나는 대로 빨리 선물을 사러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적당한 게 떠오르지 않아 진료하는 내내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게 힌트를 얻으려 했지만, 손님들 태반이 아주머니들에 할머니들이라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귀걸이나 머리핀 같은걸 사다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궁리하다 지쳐버린 존은 오전 진료가 끝날 때 즈음 한 통화의 전화를 받았다. 마이크로프트에게서였다.

  셜록 생일 3일 전부터 존에게 셜록의 생일임을 문자로 통보해대던 마이크로프트는, 흐뭇한 목소리로 존에게 셜록의 생일 선물에 대해 논의할 게 있으니 당장 자신의 사무실로 와 달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존은 몸이 좋지 않아 조퇴하겠다고 사라에게 말했고 냉랭한 그녀는 나보다 셜록의 생일이 더 중요한 거냐면서 화를 내며 달려 나갔다.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는데 왜 셜록 생일 얘기가 나온 건지 모르겠고 그녀가 어떻게 셜록의 생일을 알고 있었는지 그것도 모르겠지만 여튼 그녀를 달래려 그녀가 뛰쳐나간 길로 나가보니 검은 차가 한 대 서 있었고 그 안에서 안시아가 나왔다.


  “데리러 왔어요, 존.”


  그녀는 여전히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을 빛의 속도로 놀리며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존은 사라에게 마음속으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차를 타고 마이크로프트의 사무실로 끌려향했다.

 

 

 

  같은 시각, 레스트레이드는 사무실 안에서 미해결 사건 파일 무더기를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곧 있으면 셜록의 생일이라며 3일 전부터 그를 귀찮게 굴던 마이크로프트는, 집에서 생일 파티라도 열 작정인 거냐고 빈정대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쯧쯧 혀를 차며 미해결 사건들을 셜록에게 선물로 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무리 신세를 많이 졌다지만 내가 그걸 왜 선물로 줘야 하냐고 반항하자 마이크로프트는 자꾸 그러면 셜록을 무보수로 부려먹었던 것들을 노동부에 신고할 거라고 협박했다. 잘못 걸리면 벌금이라는 걸 알기에 레스트레이드는 어쩔 수 없이 반항하던 입을 꾹 다물고 미해결 사건 파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셜록이 끼어들 수 있는 사건이란 사건엔 죄다 고개를 내밀어서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별로 없었던지라 몇 년 전에 쌓아두었던 사건들까지 꺼내 올 수밖에 없었다. 꺼내고 꺼내다 보니 레스트레이드가 이곳에 새로 부임해오기 전에 일하던 형사들은 월급만 처받고 일은 안 했던 건지 당시의 미해결 사건 파일이 그의 키 높이만큼 쌓였기에, 그것들을 정리하다 폭발한 레스트레이드는 제 분노에 제가 못 이겨 책상에 머리를 쾅쾅 박고 있었다. “신고해! 신고하라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외침을 들으며 도노반은 그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흘끔거리며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은 택배로 도착한 가로세로높이가 손바닥만 한 작은 박스였다. 이마가 시뻘개져서 이게 뭐냐고 묻는 레스트레이드에게 도노반은 어깨를 으쓱였다.


  “주소는 이 사무실이 맞는데 수취인은 셜록이라고 되어 있어요. 어떤 또라이가 여기가 그가 근무하는 곳인 줄 알았나 보죠.”


  그러게 그 사이코패스 좀 그만 데리고 다니라는 잔소리도 빼먹지 않고 던진 그녀는 온갖 파일들이 가득한 책상 위에 그것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송장을 들여다보니 택배 기사에게 적는 비고란에 생일 축하해 셜록! 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내는 이의 이름은 M..으로 시작했는데 뭐에 젖었는지 글자가 번져 흐릿해져 있었다. 택배 기사가 셜록도 아닌데 거기다 메시지를 적은 걸 보면 도노반의 말처럼 어떤 멍청이가 셜록네 집에 보낼 걸 여기다 보낸 게 분명한 듯 했다. 레스트레이드는 발끈해서 반송해버리려다 또라이가 무슨 해꼬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이따 파일 갖다 주러 집으로 들르는 김에 함께 가져가기로 했다. 레스트레이드는 미해결 사건 파일을 랜덤으로 적당히 뽑아놓고는, 셜록에게 업무가 끝나는 대로 곧 집으로 찾아갈 테니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는 문자를 보냈다.

 

 

 

  마이크로프트는 사무실 안에서 존을 맞이했다. 평소에도 존을 보면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그였는데, 오늘따라 그는 부드럽다 못해 자비롭고 중생을 구제할 것만 같은 부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심쩍은 얼굴로 그가 가리키는 의자에 앉은 존은 사무실 구석에 평소에 보지 못했던 상자가 하나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매우 컸고 튼튼해 보였다. 새로 가구라도 하나 산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새로운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존은 짐이라도 옮기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것이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라는 것을 그는 간과하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존의 시선을 그 상자에서 떨어지게 하려는 것처럼 그를 불렀다.


  “존, 당신은 셜록의 생일 선물로 뭘 준비했나요?”


  그의 물음에 정신 차린 존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듯 말했다.


  “사실 그게- 마땅한 게 생각나지 않아서요. 조언을 좀 구해도 될까요?”

  “어떤?”

  “셜록이 좋아하는 게 뭐죠? 그에게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군요.”


  마이크로프트는 빙그레 웃었다.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 왜냐면 내가 오늘 그에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거든요. 그냥 대충 생각나는 대로 당신이 주고 싶은 것들을 말해 봐요.”


  하마터면 치사하다고 말할 뻔한 존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구두?”

  “내가 얼마 전에 입 생 로랑 걸 사줬죠.”


  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이크로프트가 대답했다. 아 그러세요… 존은 다시 말했다.


  “음…셔츠?”

  “돌체 거 아니면 안 입더군요, 셜록이.”


  개색…ㅎ라고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고 존은 아무렇게나 말했다.


  “시계”

  “이걸 어쩌나. 며칠 전에 물에 빠져서 망가졌기에 내가 사줬는데.”


  형이 호구였어… 존은 좌절감에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심정을 눈치 챈 마이크로프트는 달래듯 그에게 말했다.


  “걱정 마요, 존.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할 테니까. 당신은 그냥 날 좀 도와주면 되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존의 강아지 같은 동그란 눈이 마이크로프트를 올려다본다. 마이크로프트는 뭐라 말하려다가 때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잠시만, 하며 핸드폰을 귀에 댔다. 그래. 준비 되었나? 뭐? 리본? 빨강이랑 핑크가 있다고? 글쎄. 뭐가 좋을까. 갑자기 마이크로프트가 존에게 물었다.


  “빨강이랑 핑크 중에, 뭘 좋아해요?”


  느닷없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마이크로프트가 간절한 눈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기에 존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빨…빨강이오.” 잘 골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로프트는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빨강으로 부탁하네.

 전화 통화가 끝나고 미안하다고 사과한 마이크로프트는 만족스러운 (뭐가 만족스러운지 존은 알지 못했다) 미소를 띠고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기 선물 상자를 준비했거든요.”


  마이크로프트는 거대한 상자를 손으로 가리켰고 존은 그제야 그것이 셜록의 선물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역시 마이크로프트는 스케일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존은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이 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마이크로프트가 갑자기 어딘가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문 밖에서 수상쩍은 모습의 두 사람이 들어왔다. 존에겐 보이지 않았지만 파란 점퍼를 입은 그들의 등 뒤에는 퀵서비스 마크가 붙어있었고 그들은 마치 얼굴을 가리기 위한 것처럼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한 손에는 빨강 리본 뭉치와 수건을 들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존은 마이크로프트를 올려다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처음에 보았던 부처의 미소를 보이며 존에게 말했다.


  “셜록이 가장 좋아하는 건 뻔하죠, 존.”


  설마 해부학 실습용 머리? 내 두개골은 아니겠지? 소리치기도 전에 복면을 한 두 사람이 재빨리 존에게 다가왔고 그들은 준비해온 수건으로 존의 코와 입을 막았다. 이게 무슨…! 몸부림 칠 겨를도 없이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과 동시에 존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당신이잖아요.”


  마이크로프트의 마지막 말이 멀리서 울리는 것을 들으며 존은 정신을 잃었다.

  묶을까요? 복면을 한 사람들 중 하나가 묻자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반항이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손만 묶어 두지. 나머진 예정대로 진행하게.”


 그러자 그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상자가 열리는 것을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아, 벗기는 거, 잊지 말고.”

 

 

 

  셜록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요란한 벨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핸드폰 소린가 싶어 책상에 시선을 두었지만 몇 시간 전에 안시아 때문에 꺼둔 게 생각난 셜록은 그 요란한 소리가 현관문 벨소리임을 2분쯤 뒤에야 깨달았다. 그 와중에도 요란하게 벨은 울리고 있었고 허드슨 부인은 외출중인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짜증이 난 셜록은 파자마와 맨발 차림으로 계단을 내려가 현관문을 벌컥 열었고, 거기 서 있는 두 사람의 퀵서비스 배달원과 커다란 상자를 보았다.


  “꺄악! 셜록이다!”


  마스크를 한 두 사람이 합창을 하듯 소리쳤다. 이상하게 생각한 셜록은 그 높은 목소리에 “여자?” 라고 되물었다. 정체를 들키지 않고 배달해야 했는데 셜록을 실제로 본 나머지 흥분한 두 부녀자는 자신들의 한 실수를 덮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러나 이미 셜록의 흥미는 그들에게서 멀어졌고 눈앞에 놓인 상자로 쏠렸다.


  “이게 뭐지?”


  낮고 깊은 목소리를 실제로 듣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두 부녀자는 상자에 붙은 라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마이크로프트로부터 셜록에게’ 라고 써있었다. 그제야 이 부녀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던 이유와 아까 안시아가 생일이라고 말했던 게 떠오른 셜록은 인상을 찌푸리며 착불 반품은 안 되냐고 물었다. 두 부녀자는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 모양인지 계속 고개만 절레절레 저어댔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준 셜록은 두 부녀자가 낑낑거리며 들고 온 상자를 현관 안쪽에 놓아두고 도망치듯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정말… 수상했다.

  옆으로 넓고 큰 상자를 보니 대체 이게 뭔가 싶어 걱정이 된 셜록은 킁킁거리며 상자의 냄새를 맡았다. 그래봐야 먼지 냄새밖에 안 나는 상자에는 작은 구멍들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그 수상쩍은 구멍들에 더욱 의심이 된 셜록은 설마 형이 저를 죽이기야 하겠나 싶어 테이프로 봉해진 상자 뚜껑을 확 열어 제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상자 안에는 수많은 에어 캡슐에 둘러싸여 목에 빨강 리본을 묶은 존이 알몸으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셜록은 멍하니 5분간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퍼뜩 생각났다는 듯 윗층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서두른 그의 손에는 아까 꺼 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마이크로프트에게 전화하려고 전원을 키던 셜록은 바람과 달리 전화를 하지 못했다. 안시아가 보낸 생일 이모티콘 문자가 스무 개나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쉼 없이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체념하며 그것들이 다 도착할 동안 셜록은 상자 안에 누워있는 존을 그윽한 눈길로 감상했다.

  알람 소리는 이윽고 잠잠해졌고 그 중에 다른 이의 문자가 있든지 말든지 관심 없는 셜록이 싸그리 문자를 삭제해버리는 바람에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문자는 읽혀지지도 않은 채 삭제되었다. (읽었다 해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겠지만)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바쁘게 마이크로프트의 번호를 눌렀고 이어 통화 버튼에 안착한 엄지손가락은 기세 좋게 번호를 누르던 것과 다르게 순간 멈추었다.

머뭇거리던 셜록의 엄지손가락은 통화 버튼을 누르는 대신 취소 버튼으로 향했고, 몇 개의 버튼을 또각또각 누른 셜록은 누워있는 존을 향해 핸드폰을 가져다 댔다.

  텅 빈 베이커가 221B에는 이후 한참 동안 셜록이 눌러대는 셔터 소리로 가득 했다.


 

 

  “머리가 아파.”


  존이 중얼거렸다. 셜록은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춥지는 않나?” 누가 들으면 셜록이 저런 말을 다 하다니 의외라고 하겠지만 친절한 그의 말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아는 존은 소파에 앉아 신문이나 보고 있는 그를 노려보며 최대한 싸늘하게 대꾸했다.


  “이 겨울에 알몸으로 묶여있다면 당연히 춥겠지. 그러니까 이거나 풀게, 셜록.”


  등 뒤로 묶여있는 밧줄을 풀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을 보며 셜록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럴수록 손목에 상처만 날 뿐이니까 관둬. 존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여간 자네 형제들이란!!!”


  탄식하며 얼굴을 감싸고 싶었지만 손이 뒤로 묶여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존은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좀 힘든 자세였지만 어쨌든 성공했고 애석하게도 마음과 달리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목에 리본만이라도 좀 풀어줘어…!!! 셜록은 보채는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떽떽거리는 선물이군. 뭐, 나쁘진 않아.”


  존은 확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더더욱 깊숙이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다 잠시 질식해서 켁켁대던 그는 덕분에 눈물을 그렁하게 머금고 셜록을 쏘아보았다.


  “그런 표정 하지 말게. 오늘은 내 생일이라고. 아침부터 형이랑 안시아가 바쁘게 축하해 주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안시아도 축하했다고?”

  “문자를 수십 통 보내더군.”


  어쩐지 나한테는 눈길 한 번 안 주더니. 차 안에서 그렇게 바빴던 이유가 그거였군. 납득한 존은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마취까지 시키고 옷도 다 벗ㄱ… 내 옷!!! 가장 좋아하던 스웨터였는데…!!!! 존은 정말 울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더 울어버리고 싶은 이유는 절대 손목의 끈을 풀어주지 않는 셜록 때문이었다.


  “어떡하면 풀어줄 텐가?”


  존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셜록에게 말했다. 셜록은 피식 웃으며 신문을 접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자네가 준비한 내 생일 선물을 준다면 풀어주지.”


  존은 참지 못하고 또 버럭 소리 쳤다.


  “준비하기도 전에 납치당했다고! 자네 형이! 마이크로프트가!”

 

  희고 둥근 그의 어깨가 분노로 부르르 떨린다. 셜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셜록의 진지한 표정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움찔한 존은 최대한 소파에 들러붙으며 이러지 마, 이건 아니야, 라고 말했다.


  “뭘 이러지 말라는 건가?”


  셜록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얼굴이 맞닿을 정도까지 존에게 다가간 셜록은 응? 뭐가? 라고 그에게 속삭였다. 존이 덜덜거리며 그러니까 이러지 말라는 거야. 하며 소파에 들러붙느라 소파에는 ‘존 왓슨 여기에 앉다’라고 명명할 수 있을 만한 존 모양 자국이 생길 지경이었다.


  “존,” 셜록이 말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손목을 풀어주지.”


  저걸 말이라고 하는 건지… 차라리 그냥 이대로 있을게.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존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아니면 셜록의 선처를 빌며 그의 말에 따라야 하는 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요란한 현관 벨소리가 들려왔고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냥 난 아래층에 가서 문이나 열겠네.” 라고 셜록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존은 저도 모르게 외쳤다.


  “알았어! 대체 원하는 게 뭔가?”


  셜록은 다시 얼굴을 존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에게 달콤한 유혹을 건네었다.


  “볼에 키스하게.”


  어안이 벙벙해진 존은 뭐? 라고 되물을 기력도 없었다. 아래층에서는 끊임없이 벨이 울려댔고 그런 말을 내뱉은 셜록은 정작 표정하나 안 바꾼 채 여차하면 자신을 방치해두고 내려갈 기세였다. 하는 수 없이 존은 눈을 질끈 감고 셜록의 볼에 오므린 입술을 천천히 가져갔다.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여워 좀 더 지켜보고 싶은 요량에 다가오는 만큼 고개를 뒤로 빼던 셜록은 아래층 벨소리가 멈춘 것을 깨달았고, 이어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셜록은 존의 뒤통수를 억세게 붙잡았고 두 사람은 찌인하게 입술을 부딪혔다. 깜짝 놀라 눈을 뜬 존은 버둥거리며 거부했지만 셜록이 잡은 뒤통수의 힘이 어찌나 센지 그럴수록 두 사람의 입술의 마찰은 더욱 거세질 뿐이었다. 그건 키스가 아니라 그냥 뽀뽀였다. 그와 동시에 “셜록!” 하며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거실로 들어왔다.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본 존은 놀라지 말라고 이건 합의하에 한 키스라고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셜록이 입술을 안 놔주는 바람에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그들의 진한 뽀뽀가 끝났을 때, 셜록은 화석처럼 굳어진 레스트레이드를 발견했다. 눈살을 찌푸리며 셜록은 화석 연대기라도 적어줘야 하는 거냐고 물었고 그제야 레스트레이드는 로봇같은 말투로 “좋은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하네.” 하며 뒤를 돌았다. 한 사람은 알몸이고 한 사람은 파자마 차림으로 목에 리본도 감고 그런 장면을 보였으니 오해하는 건 당연했겠지만 그 오해의 주동자는 “잘 가게” 라며 그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둘이 남으면 셜록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공포에 질린 존은 레스트레이드에게 간절함을 담아 외쳤다.


  “Help me!!!! 레스트레이드 경감!!!!”


  동시에 레스트레이드는 그의 외침을 무시하며 몸을 빙글 돌려 손에 들고 있던 상자와 서류봉투를 셜록에게 건네주었다. “(충격이 커서)잊어버릴 뻔 했군. 새…생일 축하하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로봇 같았다.


  “이게 뭔가?”

  “자네 앞으로 배달되어 온 선물이랑, 미해결 사건 파일이네. 자네가 보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렇군. 근데 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왔지?”


  셜록이 묻자 김빠진 얼굴로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열려있던데?”


  퀵서비스녀들이 왔다 가고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셜록이었다.

  상자에는 M어쩌구 하는 이름이 쓰여 있었지만 번져버려 알 수 없었고 셜록은 존이 몸을 비비 꼬며 소파에서 발버둥 치던지 말던지 그 자리에서 상자를 열어보았다. 에어 캡슐이 들어있는 상자 안에는 조그마한 화약 더미와 전선으로 둘둘 감겨 연결된 패널 판이 붙어 있었다. 상자 뚜껑을 열자마자 삑, 하는 소리가 나며 작동되기 시작한 그것은 1:00 이라는 숫자가 표시됨을 시작으로 0:59, 0:58… 초단위로 변해갔다.

  셜록은 중얼거렸다. “폭탄이군.” 그 말에 뛸 듯이 놀란 존과 레스트레이드가 동시에 외쳤다. “뭐라고?” 셜록은 선물을 보낸 어느 미친놈의 센스에 반해버렸다는 듯 말했다.


  “지금 가장 필요했던 물건이야.”


  그래서 제 점수는요… 99점까지 찍을 태세로 만족스러워하며 셜록은 마침 벽을 부수려면 폭탄이 필요했는데 내 맘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모르겠다는 부연설명까지 마치곤 폭탄을 벽쪽으로 던져버렸다. 레스트레이드는 그러다 터지면 어쩔 거냐며 화들짝 놀라 소리 질렀다.


  “정지시킬 방법은 없는 건가? 그대로 두면 터지잖아!”

  “난 사립탐정이지 폭탄 처리반이 아니네. 그리고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떻게 정지 시키라는 건가. 그럴 생각 할 겨를이 있으면…” 얼빠진 존과 레스트레이드를 보며 셜록은 빙긋 웃어보였다.


  “뛰어.”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도망가는 레스트레이드를 보며 그 와중에도 존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셜록이었다. 눈물이 그렁해진 존이 외쳤다.


  “이거 풀어!!!!!”


  그러나 그의 말은 귓등으로 들은 셜록은 그를 덥썩 어깨에 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직 내 생일 안 끝났어.”

 


- 가므님 생일 축하 fic이 원래 이거였으나 생일날 이런 거 끼얹어드리면 안 됨 ㅇㅇ 해서 안 올리려 했으나 일단 완성했으니.. (도망)
- 상자에 존 넣어 보내버리기가 이렇게도 쉽다니..! 역시 마형님은 뭐든 다 되는 캐릭터!!!
- 중간에 잠깐 나온 퀵서비스 부녀자들은 가므님과 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사실 벽은 폭파되지 않았듬. 


,
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