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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1. 1. 6. 00:00

셜존 :: 별이 빛나는 밤에

 


for 가므님



  셜록은 마이크로프트가 준비해 놓은 차에 타는 것을 거부하고 싶어 했지만, 우리 둘이 택시를 타고 가기엔 목적지까지 너무 멀었다. 운전기사가 안내하는 차에 무뚝뚝한 얼굴로 올라탄 셜록은, 런던을 가로질러 도심을 빠져나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 도로 한복판의 매캐한 스모그와 답답한 정체를 벗어나고 나니, 주변은 온통 고요한 주택가들과 서리 내린 빈 터들만 한없이 이어졌다.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게 젖어가는 하늘은 멀갰다.

  그는 어떨지 몰라도 솔직히 나는 조금 설렌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부정하지 못하겠다. 서섹스에 있는 그의 본가에 초대되리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1월의 첫째 날이 지나고 며칠 뒤, 마이크로프트로부터의 일방적인 통보는 그를 무려 사흘이나 침묵에 잠기게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했던 내게 그는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것도 please가 붙지 않은, 결코 그의 형보다 나을 것도 없는 꼿꼿한 태도로.

 

 - 서섹스에 갈 거야. 하룻밤 자고 올 예정이니까 필요한 게 있다면 챙겨두는 게 좋을 거네.

 

  그리고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곳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모일 것이며 자신의 생일 축하를 위한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을.

  그의 생일이란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바로 내일이었다. 근데 가족 모임에 왜 내가 같이 가야 하지? 되묻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는 것으로 대답하기 어렵다는 말을 대신했다. 나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 오랜만에 가는 거지?


  침묵을 깨기 위해 입을 열었다. 눈을 감고 있는 셜록이 잠들어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작년에도 이맘때쯤 갔었지.

 - 생일 파티 때문에?

 - 파티랄 것도 없어. 그냥 조용히 식사하고, 조금 얘기를 나눈 다음, 웃고, 헤어지는 거지.

 

  셜록은 그것이 매우 귀찮다는 듯 굴었지만 내겐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와 반대로 생일이란 걸 챙겨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을 원하지도 않았지만, 난 그 가족모임에 대해 든 솔직한 감상을 말하는 것으로 그의 태도를 살짝 비난하기로 했다.

 

 - 사이좋은 가족들이잖아. 아직까지 생일을 꼬박 챙겨 주고.

 

  내 말에 그는 하, 하고 짧게 비웃고는, 자조 섞인 뉘앙스를 숨기지 않으며 투덜거렸다.

 

 - 그게 문젠 거야.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생일을 챙기다니.

 

  차는 덜컹거리지도 않고 미끄러지듯 어두운 도로를 달려 나갔다. 나는 이 가족들에 대해 더 묻는 것이 실례일까 싶어 입을 다물었다. 셜록도 묵묵히 차창에 턱을 괸 채 나를 외면했다. 우리의 침묵이 또다시 깨어진 것은, 내가 꾸벅거리며 창에 머리를 박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 존, 사실은...

 

  나는 졸지 않았다는 증거로 눈을 부릅떠 보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뭐? 하니 그가 다시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문다. 한숨 뒤에,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 어머니가 데리고 오라고 하셨네.

 - 누구를?


  지금 함께 가고 있는 게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이 덜 깼는지 저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셜록은 미간을 찌푸렸다.

 

 - …자네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자 결국 셜록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폭발했다. 하여튼 마이크로프트!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언제나 그가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이지만 이번 경우엔 부가 설명이 더 필요했다. 요구하자 셜록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의 생활을 언제나 서섹스에 있는 어머니께 전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자신과 함께 지내게 된 존 왓슨이라는 의사에 대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일 년쯤 전부터 매우 궁금해 하셨다는 이야기를. 마이크로프트가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들 형제의 어머니라는 사실만으로 모르는 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제와 관심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나는 아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거 때문에 삼일 동안 잔뜩 날카로워져 있었던 건가?

 - 딱히 그랬다기보단… 거절의 말을 생각하느라.

 - 셜록, 그랬다간 마이크로프트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야. 자네랑 나를 당장에 납치해갔을 걸.

 -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지.

 

  셜록과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창밖으로 드문드문 하얀 불빛이 스쳐 지나간다. 그의 웃음이 가라앉고 나서도 나는 좀체 스스로를 주체할 수가 없어 결국엔 사레들린 듯 켁켁거리며 웃어댔다. 어둠이 내린 차창에 매달려 그렁한 눈물을 닦아내려니 빛에 반사된 셜록이 얼굴을 쓸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나와 셜록이 그의 어머니 앞에 앉아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 떠올라 그럴 때마다 프흡, 하고 웃음을 참으려 애를 써야 했다. 셜록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거였겠지. 나는 짐짓 걱정스러운 체 했다.

 

 - 음, 식사 예절 같은 거 잘 모르는데.

 - 군인이었단 얘기는 어머니도 들었으니 괜찮을 거야.

 - 그거 어째 군인들은 죄다 예의 없는 놈들이라는 말로 들리는 걸.

 - 아니었나?

 - …자넨 언제나 날 할 말 없게 만드는군.

 

  굳어있던 그의 표정이 아까보다 많이 풀어져 있었다. 나는 일부러 그가 농담에 끼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린 그 사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고 눈치 없는 셜록이 그런 것들을 신경 쓸 정도라는 건 어떤 의미로 굉장했다.

  그러니까- 셜록은, 그의 어머니 앞에서 ‘함께 살고 있는 존 왓슨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것이 마치 우리는 신혼여행 중이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게 할 자신이 없다는 그의 패배감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그로 인해 내가 받을 충격을 위로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으로 그로 인해 자신이 받을 충격은 생각하고 있지 않는 듯 했다. 나는 그가 가시를 잔뜩 곧추세우고 저녁식사시간 내내 누구든 우리를 공격하면 쏴죽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아 더 걱정인데.

 

 - 어머니는 괜찮을 거야.

 - 그럼 누군 안 괜찮고?

 - 마이크로프트. 그는 언제나 평화를 해치는데 한 몫 하니까.

 - 그는 자네의 몫이지. 남겨두겠네.

 - 하아, 매번 싸우는 것도 지겨워.

 

  셜록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의 호흡의 깊이만큼 형에 대한 폭언을 퍼부어댔다. 운전기사가 듣고 보고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워 백미러를 흘끔거렸지만 그는 말수가 적고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지 조용히 운전만 하고 있었다. 하긴 마이크로프트의 밑에서 일을 하려면 많은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할 것이다. 셜록의 말을 곰곰이 듣던 나는 그가 숨을 쉬기 위해 텀을 두었을 때 재빨리 끼어들었다.

 

 - 자네, 어릴 때 어머니께 걱정을 많이 끼쳤다며? 그래서 형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거야?

 - …누가 그런 말을 했나? 오, 보나마나 마이크로프트겠지.

 - 정말 그랬나?

 - 그도 만만치 않았어.

 

  어릴 때 모든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말썽쟁이였으니까. 그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그런 말을 했다.

  서섹스로 향할수록 검푸른 하늘의 반짝거리는 별들은 런던의 멀건 하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아졌다. 언젠가 셜록이 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가 가진 천문학적 지식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에 전혀 관심 없을 줄로만 생각했지만 그는 어릴 때 이런 하늘을 보고 자란 것이다. 말썽쟁이 셜록 홈즈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어린 셜록 홈즈가 하늘을 보며 감탄하는 것은 눈에 보듯 상상할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아름다웠다.

 

 - 어머니는…

 

  셜록은 창밖을 보았다. 차창에 비친 그의 어둠이 담긴 눈동자는 고요했다.

 

 - 걱정이 많으신 분이야. 어릴 때부터 그랬지. 우리가 워낙 말썽을 부리고 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부턴 집에 갈 때마다 사이좋은 형제를 연기하는 게 당연해지더군. 안 그러면 마이크로프트가 날 죽이려 들었거든.

 

  주위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사고뭉치였다는 형의 언질과는 다른 셜록을 보며, 나는 조그맣게 웃었다. 그는 내가 왜 웃는지도 모른 채 따라 웃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표정으로. 그가 내게 보여주는 솔직함의 절반의 절반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가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은 줄어들 텐데. 갑자기 위로하고 싶어져서 난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 셜록, 자넨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하는군.

 

  나의 말이 우스웠는지 셜록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곤 자신의 어깨에 얹힌 내 손을 잡아 내렸다. 여전히 그 미소는 그대로였다. 붙잡은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기며, 그가 예상치도 못한 진실의 고백을 귓가에 속삭였다.

 

 - 걱정 마, 내 사랑의 범주엔 자네도 들어가있으니까.

 

  그 낮선 고백은 아까 본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워서, 나는 아이처럼 몸을 떨었다.

  열 오른 손가락이 뺨을 타고 내려온다. 은밀히 입술을 부딪혀오자, 나는 솟아오르는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래도 이 셜록 홈즈가 모든 진심을 다 내보이는 상대는-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빌고 마는 것이다. 어린 날부터 지금까지 그를 지켜보았을 저 수많은 별들에게.

  찰나의 입맞춤에 달아오른 호흡을 진정시키며 엉킨 손가락을 풀고, 운전기사의 눈치를 보았다. 나는 일부러 민망함을 감추려 셜록의 어깨에 발개진 얼굴을 묻었다 떼었다. 그는 이제 곧 도착이라고 말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계를 보니 런던을 떠난 지 한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어깨가 쑤셨다. 나는 팔을 쭉 뻗고 기지개를 키며 말했다.

 

 - 좋아, 그럼 어머니께 자네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좀 들려 달라 해볼까?

 - …제발 관두게.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셜록은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그 분노가 다시 마이크로프트에게 향하는 것을 보며 나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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