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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2011. 1. 16. 04:30

셜존 :: 그와 그



  생각은 존이 셜록을 위한 차를 끓이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 이 남자는 대체 뭐기에 누군가로 하여금 어쩔 수 없게 만드는가. 그 ‘무엇’ 에 대한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것 같지만, 그 남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일화라면 존이 베이커가에 살기 시작하면서 한숨을 내쉰 횟수만큼 있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방금 전만 해도 그랬다. 힘들게 하루 일을 마치고 온 존을 보자마자 셜록이 한 첫마디는 “Tea?” 였다.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 건 아니겠지, 라고 묻자 그는 너무도 당당하게 “그랬다면, 안 되는 건가?” 라고 답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물을 끓이면서 존은 자신이 가정부 취급을 당하는 것에 무감각해진 건지 그냥 포기해 버린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사실 존은 그다지 상냥한 성격은 아니었다. 타인을 위한 배려라던가 희생은 그가 택할 삶의 방식으로서 별로 고려해보지 않았던 단어였다. 또한 그는 그다지 누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랑스런 동생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그들 남매가 일반적인 남매들이 그렇듯이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좋아야 할 필요를 몰라서였다. 존이 상냥해 질 때는 그의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났을 때뿐이었다.

  전쟁터에서, 사람들은 그 생명을 살리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 없이 죽어나갔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그 노력을 비웃듯이 많은 이들을 하찮게 죽였다. 그 때문에 존도 자신이 소중히 여긴 사람들을 많이 잃었고 결국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무기력하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즈음엔, 행운인지 불행인지 자신마저 깊은 총상을 입게 되어 죽음의 소용돌이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러나 이미 존은 한때 친했던 친구조차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그래 반가워, 잘 지내지? 다음에 연락해, 따위의 흔한 인사말도 겨우 내뱉게 만들 정도의 무뚝뚝한 성격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랬던 그가 저 셜록 홈즈라는 생판 모르는 타인과 함께 살면서 그의 말이라면 온갖 짜증을 다 내면서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벼락을 맞아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던가, 아니면 갑자기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실천하고자 마음먹게 되었다던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다른 이유도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억울하지만 존이 생각하는 이유 중 가장 타당성 있어 보였다. 다름 아닌 그와 동거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셜록 홈즈라는 사람에게 많이 감화되었다는 것.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존이 억울하다는 부연설명을 붙인 건, 자신이 셜록의 모든 변덕을 다 받아줄 정도로 성격적으로 많은 부분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처음과 지금이 너무도 일관성 있게 한결같다는 점 때문이었다. 존은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내밀었고 셜록이 “고맙네.” 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평소 셜록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하는 것 자체가 매우 놀라운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존은 그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릴 때, (특히 그 상대가 여자일 때) 여심을 녹일만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자신에게 간단하게 쏟아지는 그 말 한마디로 존의 친절에 셜록 또한 감사할 줄 아는 성격으로 변화했다고 단정 짓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이(어쩌면 셜록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셜록은 비록 자신의 추리력을 뽐내는 것을 좋아하고 빛나는 두뇌를 과신하는 덕에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앤더슨의 헛소리에는 집어치우라고 말하는 걸 서슴지 않으면서 굳이 존의 의견을-설사 그것이 멍청하다 하더라도-물어보는 이유는, 자신이 보는 “추리의 과학”과 같은 세상을 존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발단은, 존이 셜록의 추리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던 “굉장하군.” 이라는 한 마디였다고 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무덤덤하게 질려가던 셜록은 오랜만에 보는 새로운 사람이 자신의 추리에 놀라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날카로운 말들을 마치 시험하듯 던져놓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너도 그들과 똑같아.” 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99.9퍼센트 정도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조금 달랐다. 가끔 존은 셜록이 예상치 못했던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신기하게도 셜록의 신경을 조금도 거슬리게 하지 않았다. 셜록은 어쩌면 이번 룸메이트는 오래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조금 덜 지루할 지도 모르겠다고. 가끔 그는 신경이 날카로워 있는 존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고, 방 청소에 지겨워하는 그를 위해 필요 없는 책 몇 권을 처분하거나 버리기도 했다. 너무 미미해서 셜록조차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건 그 자신에게 있어 큰 변화였다.

  그래서, 이런 셜록의 생각들을 몰랐던 존은, 자신의 “사라와 함께 살기로 했어. 미안하지만 곧 이사할 예정이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셜록이 지은 놀라는 표정과 유달리 길었던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꼭 그래야 하나?” 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떠난 뒤 셜록이 한동안 우울과 침묵에 휩싸여 베이커가에 은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마이크로프트에게 듣고, 이어 “당신이 그를 북돋아 주어야 해요.” 라는 말을 전해오자 난감한 반응을 숨길 수 없었다. “그가 나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다구요? 그걸 날더러 믿으란 말입니까?” 돌아오는 마이크로프트의 미소에 존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피차일반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존의 긴 생각은 거기서 끝이 났다.







 님 셜록 버리고 가시면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나라고 지푸라기 인형 만들어 꽂을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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