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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2011. 1. 14. 01:00

셜존 :: 셜록이 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 이유



  “오오, 점마ㄹ 지르하근.”


  끝까지 자신은 병자가 아님을 주장하려고픈 마음이 그의 말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존은 알았지만, 체온계를 입에 문 채 되도 않는 발음으로 말해봐야 설득력만 떨어질 뿐이다. 감기에 걸려 펄펄 끓는 몸을 하고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것 같은 (실제로 그는 사건 현장을 보러 외출했다 감기 옮기지 말라며 레스트레이드에게 쫓기듯 돌아왔고 코트도 안 벗은 채 풀썩 하고 소파위에 드러누웠다.) 허옇게 질린 얼굴로 “난 점마ㄹ 갠찬타거!” 고집스레 중얼거리는 말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게 다년간의 의사 생활에서 얻은 (혹은 동거 생활에서 얻은) 결론이기에 존은 그렇게 했다.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감기 걸린 셜록을 보살피게 된 존은 오늘따라 굉장히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환자를 앞에 두니 직업의식이 튀어나와 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엄연히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한, 환자를 우선시해야 할 의사의 몸 아닌가.

  며칠 동안 사건 때문에 뛰어다니느라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을 셜록을 위해 존은 작은 냄비에서 끓고 있는 스프를 부지런히 휘저었다. 야채가 있었다면 좀 더 영양가 있는 환자식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냉장고에 고작 당근과 감자밖에 없는 형편이라 스프라도 끓일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하도 안 먹어서 부엌 한구석에서 말라빠져 저절로 크루통이 된 식빵을 잘게 부수어 올려놓으니 볼품없던 스프가 그럴싸해졌다. 존은 불평이 가득한 셜록의 입에 물린 체온계를 휙 낚아채고 스프 접시를 내밀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좋은 냄새를 풍기는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 본 셜록이 구시렁거렸다.


  “스프라. 먹기 싫은데.”


  존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히포크라테스도 셜록이란 환자를 눈앞에 두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의 생명을 존중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냥 접시를 확 내던지고 감기가 폐렴이 되어 죽던지 말던지 내버려두는 게 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이 경우엔 존의 평안이 우선시 되겠지만) 좋은 일 아닐까? 지금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히포크라테스가 날 욕할 수 있을까? 치미는 충동과 싸우며 존은 접시를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


  “먹어. 안 먹으면 강제로라도 먹이겠어.”


  존의 강압적인 태도에 기가 죽었는지 아님 감기 때문에 저항할 힘도 잃은 건지 셜록은 입을 삐죽거리며 손을 내밀어 접시를 받아들였다. 한 번 더 거부를 하면 어린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듯이 숟가락을 내밀고 아~해봐, 라고 말하며 모욕감을 줄 작정이었던 존은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랬다면 셜록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조금, 아주 조금 궁금하기도 했지만.

  셜록의 입에 물려 있던 체온계를 보니 37도를 조금 넘어 있었다. 존은 빠른 판단으로 셜록을 현장에서 집으로 돌려보내버린 레스트레이드가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안 그랬으면 셜록은 사건 흔적을 뒤쫓겠다고 밤새도록 돌아다니다가 열이 더 심해져서 돌아왔을 게 분명했으니까. 새벽에 저 고집스런 환자를 데리고 응급실로 가는 건 아무리 의사래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존은 차가운 수건을 만들기 위해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거실에선 접시를 휘젓는 스푼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바보 같은 쇼 프로의 사회자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셜록이 쿨럭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얼음이 없어 차가운 물을 받아 수건을 담그니 천근만근이던 눈꺼풀이 번쩍 뜨일 정도로 정신이 바짝 났다. 물기를 꼭 짜 거실로 나가니 셜록이 멍한 얼굴로 TV를 보며 스푼을 마냥 휘젓고 있었다. 채 반도 안 먹은 접시에 또다시 한숨이 절로 나온 존은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잡아채어 TV를 껐다. 셜록이 물에 빠진 고양이 같은 모양새로 열이 올라 충혈 된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남편의 부정을 드디어 아내가 눈치 채려던 순간이었는데 TV를 끄면...”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존이 말을 가로챘다.


  “셜록, 벗어.”


  이 당돌한 발언엔 제 아무리 셜록이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존, 갑자기 그게 무슨...”


  존은 한 걸음 성큼 다가갔다. 셜록이 미간을 찌푸리며 접시를 디밀어 거리를 확보했지만 무능력하게 빼앗긴 접시 때문에 모든 방어는 허사가 되었다. 노력의 산물이 제 가치를 발하지 못하고 식어빠져 버린 것이 기분 나빠 접시를 책상위에 던지듯 내려놓은 존은, 그가 아직 벗지도 않은 코트 깃을 잡아끌어 그에게서 해방시켰다. 그 다음엔 수트 자켓 차례였다. 존의 손아귀에서 맥없이 흔들리며 셜록이 불평을 했다.


  “오, 제발. 존, 환자를 막 다루는 건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지금 내가 감기에 걸린 이 시점에 우리가 이런 행위를 하는 건 체력만 낭비할 뿐...”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 와중에도 잘난 듯이 나불거리는 그 입을 막기 위해 존은 차가운 수건을 내밀었고 셜록은 영문도 모른 채 그것을 받아들었다.


  “열나니까 벗어야지. 체온을 떨어트려야 하는데 집에 해열제도, 냉습포제도 하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침실로 가서 옷 갈아입고 그걸로 몸 닦고 와. 목욕은 안 돼. 이건 의사로서의 처방이야. 어서.”


  존의 손에 질질 끌려 침실로 향하던 셜록이 방문을 닫기 전에 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평소에 환자들에게도 이러나?”

  “뭐?”


  잔뜩 찌푸린 존을 보며 셜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어째 좋은 소리 못 듣겠는 걸.”


  문손잡이를 확 잡아당겨 일부러 쾅 소리가 나게 닫은 존은 당장 책상 서랍으로 달려가 총을 꺼내 벽에 난사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벽에 주먹을 쿵쿵 박았다. 어딘가 히포크라테스 흉상이 있었다면 열댓 개쯤 깨 부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의사고 뭐고, 저놈의 셜록.


  “난 최고의 의사라고! 자네한테만 그래. 자네한테만!”


  문 너머로 셜록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셜록이 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 이유는 - 존이 빡치니까...
for 가므님 / 감기조심 하시어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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