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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2. 25. 08:32

셜존 :: 셜록존 이야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느 외딴 영쿡이라 불리는 섬나라에는, 모리아티 왕비가 지배하는 홈즈 왕국이 있었다. 영쿡 옆의 또 다른 섬나라 왕족 출신인 그녀의 총명함은 널리 알려져 있어, 홈즈 왕의 전 왕비가 죽자마자 새로운 왕비로 맞아들여졌지만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왕인 남편을 잃고 스스로 대비(大妃)의 자리에 올라 정권을 잡았다. 남편을 잃었으나 슬퍼하는 모습도 잠시, 그녀는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권력을 휘둘렀는데, 때문에 그녀는 귀족들과 백성들에게서 온갖 미움과 원망과 모함을 받고 있었다. 어떤 이는 그녀가 남편을 독살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그녀가 마녀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모리아티 왕비는 본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일거라고도 했다. 황당한 소문들 중 어느 것 하나 정확한 것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쉬쉬하면서도 그것들을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의 권력과 폭정, 뛰어난 지혜를 두려워하였기에 그녀의 앞에서는 감히 아무도 소문의 진상을 묻거나 대드는 자가 없었다.
 왕과 왕비의 슬하에는 자식이 없었으나 왕과 죽은 전 부인에게서 낳은 셜록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성년이 훨씬 지난 나이였으나 인간적이지 못하고 되바라진 성격 탓에 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되면 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걱정대로 셜록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두뇌게임과 범죄 심리학에만 관심이 있어 추리의 과학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잉여 짓을 하는 게 인생의 낙이었기 때문에 왕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덕분에 수월하게 정권을 잡은 모리아티 왕비는 제 자식이 아님에도 그를 끔찍이 사랑했다. 주위에서 저러다 셜록이 마음이 바뀌어 왕위에 오르게 되면 제가 왕비자리에 앉겠다고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아들에 대한 생각이 깊었으나, 정작 셜록은 새 왕비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넓은 이마는 셜록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셜록이 그녀를 상대할 때는 그녀가 아ㅇ폰으로 낸 수수께끼를 풀 때뿐이었는데 그것도 지루해지면 셜록은 그녀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탐정 흉내를 내며 의뢰인들의 사건을 해결해주곤 했다.
 싹수가 노란 셜록 대신에 그 손자라도 왕위를 잇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에게 짝지어줄 신붓감을 어서 찾으라는 정치가들의 시끄러운 권고 때문에 질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모리아티 왕비는 그냥 며느리로 아무나 맞아들이고 확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널따란 패드 하나를 꺼냈다. 일명 아ㅇ패드라고 불리는 그것은 지구 반대편에서는 흥하는 물건인데 이 소왕국에서는 별로 가진 자가 없었다. 만지기만 해도 신기한 화면들이 뜨는 그것 때문에 제가 마녀 취급을 받는 줄도 모르고 모리아티 왕비는 신이 나서 네ㅇ버를 켜고 검색창에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고 쳤다. 검색 결과로 뜨는 애는 절대로 왕비 후보로 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식ㅇ에서조차도 신통찮은 결과밖에 보지 못한 그녀는 짜증을 내며 그냥 제 아들이나 보자 해서 검색창에 셜록을 쳤다. 왕자의 미모를 찬양하는 동영상 검색결과에 흐뭇해하던 그녀는 어느 글 제목에서 ‘셜록존’이라는 단어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이게 뭐지?
 그녀가 다시 검색창에 셜록존을 치자, 쏟아지는 픽션들과 게ㅇ짤들의 향연을 보고 하마터면 아ㅇ패드를 떨어트려 두 동강 낼 뻔한 모리아티 왕비는 가까스로 그것을 붙잡고 자신의 아들에 대한 그 모든 검색결과를 밤새도록 보았다. 그 양은 방대하여 다 읽는데 밤낮으로 일주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주일 뒤, 셜록존이 뭔지 알게 된 그녀는 벌게진 눈을 하고 모셜을 검색했다가 ‘모리아티 얘 모임? 변덕스러워서 짜증남 ㅇㅇ’ 이란 블로그 글을 보고 격노하여 홈즈 왕국에서 가장 유능한 경찰인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궁 안으로 불러들였다. 다크서클로 가득한 왕비의 퀭한 눈과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를 보며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벌벌 떨었다. 그런 그에게 왕비의 엄명이 내려졌다.


 “당장 이 존이라는 자를 잡아다가 죽여 심장을 가지고 오라! 그리고 셜록존 팬픽을 쓴 자들을 잡아다가 내게 데려오너라!”


 그래도 성이 차지 않은 왕비는 한 달 동안 모셜 백일장을 열어 가장 훌륭한 팬픽을 쓴 자에게 상을 내린다는 궁궐 배 백일장을 선포했다.
 세상에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얼마나 많은데 잡아들이라는 건지, 레스트레이드는 좀 황당했지만 어쨌든 검색하면 다나오는 요즘 세상에 못 잡을 것도 없겠다 싶어 당장 사이버 수사대를 풀었다.
 이미 인터넷에는 셜록존이 대세이지만 설마 제 아들이 정말 존이라는 놈과 붙어먹었을까 싶어 궁금증을 참지 못한 모리아티 왕비는 셜록을 제 방으로 불러들였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제게 총을 겨누는 셜록을 보고 모리아티 왕비는 엉겁결에 숨을 들이마셨다.


 “셜록, 놀랬잖아. 대체 그게 뭐냐.”
 “나 죽이려고 부른 거 아니었어? 아님 뭐? USB가 필요해?”


 헛소리를 해대는 셜록을 보며 빡친 모리아티 왕비는 외쳤다.


 “죽이려는 건 네가 아니라 그 존이라는 놈이야! 난 네 심장을 태울 거야!” 


 그러나 어깨를 으쓱하며 셜록은 총을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걔가 누군데? 존이 내 심장이라도 갖고 있대?” 


 일주일 동안 읽었던 수많은 팬픽에서 나온 정설에 따르면 존이라는 인물은 셜록의 심장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셜록의 반응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보다고 생각한 모리아티 왕비는 다음에 또 셜록이 총을 들고 설칠 때를 대비하여 유격수라도 하나 배치시켜 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존 몰라? 요즘 유명하던데.”


 다행히도 셜록은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존? 내 하드 드라이브에는 그런 이름 없는데.”


 모리아티 왕비는 안도했다.


 “모른다면 됐다. 가 보거라.”


 셜록은 중요한 실험을 하던 중이었는데 다 망했다며 짜증을 내고는 그 댓가로 새로운 실험용 사체들을 넣을 냉장고를 하나 사 달라고 왕비에게 졸랐다. 귀찮아진 왕비는 알았다고 말하며 인터넷으로 주문하겠다고 했다. 신이 난 셜록은 제 방으로 달려갔다. 이로서 셜록의 신붓감을 찾는 것은 아오안이 되었고 모리아티 왕비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아ㅇ패드를 켜 유ㅌ브에 들어가 옆 동네 언니들이 만든 모셜 팬비드를 재생했다. 그리고 두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존!! 내가 널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왕비가 셜록존을 검색해보고 분노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해리엇은, 제가 한 일이 얼마나 큰 화를 가져왔는지 뒤늦게야 깨닫고 유명하지만 그 정체가 미스테리한 점쟁이 마이크로프트를 부랴부랴 불렀다. 홈즈 왕국의 왓슨이라는 백작 가문의 장녀인 그녀는 얼마 전 무척이나 연모하던 클라라라는 여인이 자신을 버리고 웬 공작 가문의 남자에게 시집을 가 버린 것에 열 받아 몇날 며칠 술을 퍼마시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직위 상승의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행한 것이 셜록존 퍼트리기였다. 공작보다 더 높은 지위가 되려면 왕족이 되는 것 밖에 없는데, 저는 여인에게밖에 관심이 없으니 동생 존이라도 셜록 왕자의 눈에 들게 하여 왕의 외척이라는 신분 상승을 한다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동생의 취향 따위 고려하지 않은 다소 무모한 그녀의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공을 들이기로 작정하고, 여러 날에 걸쳐 왓슨 백작 가문의 귀요미 열매먹은 아름다운 둘째 아들 존과 셜록 왕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을 인터넷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존이 알았다면 허위사실 유포 죄로 그녀를 고소했겠지만,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는 존에게 있어 인터넷의 바다란 그가 항해하기엔 너무 넓고도 깊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해리엇의 계획은 성공하여 셜록과 존이 함께 있는 합성 사진이 이리저리 유포되었고 할 일 없던 부녀자들은 셜록과 존의 데이트 장면 목격담 카더라를 올리며 바람직한 팬픽을 쓰기 시작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셜존 커플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해리엇은 셜록이 그 자신과 함께 인터넷 검색어로 오르내리는 존에 대해 언제 관심을 가져줄까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러나 제 블로그 외엔 전혀 관심이 없는 셜록 덕분에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질투 쩌는 모리아티 왕비의 수배령이었고 그래서 곧 존이 잡혀갈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마이크로프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본 미래도 셜록과 존은 영원히 함께 할 운명이었으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존이 저 왕비에게 잡히지 않는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존 왓슨 도련님과 모리아티 왕비님은 상극이고, 도련님의 앞날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어있습니다. 이대로 계시다간 큰 화를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걱정스러워진 해리엇은 그에게 물었다.


 “그럼 어쩌면 좋지요?”


 잠시 고민하던 마이크로프트는 아! 하며 무릎을 쳤다. 


 “제게 집이 하나 있습니다. 베이커 스트릿 221B 라고. 잠시 그 집에 도련님을 숨겨놓도록 하지요.”


 해리엇은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큰 상을 내릴 테니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 했다. 마이크로프트는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해리엇이 극구 주장하여 어쩔 수 없이 마이크로프트는 그녀가 가진 장우산 하나를 달라고 말했다. 기뻐하며 해리엇은 가보로 내려오던 장우산을 주었고 마이크로프트는 그런 그녀에게 화를 피하고 싶으면 셜존에서 재빨리 모셜로 갈아타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하며 그녀를 떠났다.
 귀엽고 예쁘장한 얼굴을 가졌지만 좀 암울한 탓에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라고 탄식하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다가 해리엇 덕에 영문도 모르고 왓슨가를 떠나게 된 존은 해리엇에게 ‘네 운명의 사람은 왕족이다’ 라는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이별의 선물로 쓰던 핸드폰을 받았다. 이왕 줄 거면 새 걸로 사 주지 이게 뭐냐고 짜증내며 클라라의 키스 마크가 새겨진 핸드폰을 들고 존은 베이커 스트릿 221B로 향했다.
 귀족의 신분을 숨기고 의사로 당분간 살아가기로 한 존은 221B에 도착하여 허드슨 부인을 만났지만 그녀는 이미 그 방엔 계약한 사람이 있다고 말해 존을 당황시켰다. 그 세입자는 공교롭게도 셜록 왕자였다. 그 또한 신분을 감추고 몰래 궁성에서 빠져나와 탐정 노릇을 할 때 묵기 위해 가명으로 계약한 집이 베이커 스트릿 221B였던 것이었다. 이 이중 계약에 통탄하며 해리엇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 어쩔 수없이 존은 셜록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으니 당분간만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좀 귀찮았지만 셜록은 귀염 돋는 존의 얼굴을 보니 나름 괜찮겠다 싶어 그러라고 승낙했다. 핸드폰 외에 가져온 짐도 별로 없는 존은 셜록이 앉은 소파 맞은편에 앉아 긴 여행에 지친 몸을 뉘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 귀엽다고 생각한 셜록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깔고 존에게 물었다. 


 “이름이?”


 딱 보기에 평민 같은 놈이 반말부터 하자 순간 당황한 존은 본명을 댈 뻔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적절히 지어낸 가명을 (역시 반말로)말했다.


 “마틴 프리먼. 의사라네.”
 “자유인? 거참 이상한 이름이군.”


 막 지은 이름이라지만 지적당하니 빈정상한 존은 짜증을 숨기며 셜록에게 물었다.


 “그러는 자네는?”


 역시 당황한 셜록은 제 정체가 드러나게 할 수 없었기에 일부러 발음이 꼬일만한 이름을 둘러댔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탐정이지.”
 “하! 자네 이름도 만만치 않은 걸.” 


 왠지 기분이 나빠진 셜록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냥 베니라고 불러.”
 “난 마틴.”


 두 사람은 악수했다. 그런 그 둘의 모습을 미스테리한 점쟁이 마이크로프트가, 몰래 설치한 CCTV 화면으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존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수백 수천 명의 존을 찾아다니던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한 달여만에 그가 찾던 존을 드디어 죽이고 그 심장을 꺼내 모리아티 왕비에게 가져왔다. 심장을 태우고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치하한 모리아티 왕비는 인터넷 세상에 존이 죽었음을 널리 알리라고 명했다. 뒤이어 궁궐 배 모셜 백일장의 우승자를 데려와 그녀에게 평생 모셜 팬픽 제작의 권한을 주며 ‘앤드류 스캇의 병신미와 우아미가 공존하는 영화 100선’ DVD를 부상으로 내렸다. 그리고 셜존 팬픽을 대표적으로 제작/유포한 부녀자들을 불러 엄중히 경고하고 ‘셜록존’ 혹은 ‘셜존’ ‘셜록/존’ 이라는 단어를 쓰면 저절로 인터넷 유해물 차단 창이 뜨면서 컴퓨터 사용을 방해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그녀들의 컴퓨터에 영구적으로 깔도록 했다. 셜존의 합성 사진과 그림을 게시한 부녀자들과 존의 미모를 찬양하는 포스팅을 한 부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처벌이 내려졌다. 이 모든 사건의 주동자 해리엇은 마이크로프트의 조언대로 재빨리 모셜로 갈아탄 덕에 화를 면했다. 이렇게 온 인터넷 세상의 셜존을 박해하니 수많은 부녀자들이 울며 모셜로 전향했다. 왕비가 그 결과에 너무나도 만족스러워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혹시나 해서 아ㅇ패드로 셜록존을 검색한 모리아티 왕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존이 죽었다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엔 여전히 셜록존이 대세였던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정황을 알아보니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대충 잡아온 존은 그 존이 아니라 배우 존 심이었다. 두 사람이 매우 닮은 데다가 이름도 같아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그만 착각한 것이었다. 졸지에 좋은 배우 하나를 잃은 홈즈 왕국은 가장 유능하다던 경찰이 보인 병신미에 할 말을 잃었다. 하는 수 없이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짜르고 모리아티 왕비는 존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궁정에서 사는 것보다 베이커 스트릿에서 마틴(이라고 부르고 존이라고 쓰자)과 함께 사는 것에 재미를 느낀 셜록은 그 후로 뻔질나게 하숙집을 들락거렸다. 셜록은 자신의 추리력에 순수한 감탄을 보이는 존이 좋았다. 궁궐에서는 누구든 그를 소시오패스라고 칭하며 쌀쌀맞게 대했고 셜록 또한 그의 흥미를 돋게 할 만한 인간을 만난 적이 없었다. 줄줄이 추리를 읊어대니 ‘굉장하군!’ 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며 웃는 존을 보자마자 뺨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셜록은 날 이렇게 대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그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탐정 놀이에 존을 늘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자신이 의사라고 둘러 대버린 탓에 졸지에 셜록이 가는 사건 현장에 함께 가게 되었지만 개뿔 아는 거 하나도 없던 존은 늘 헛다리만 짚어 셜록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얄밉게 바라보아야 했다.
 존에 대한 셜록의 (짝)사랑은 커지는 한편 셜록에 대한 존의 스트레스는 폭발할 듯 치솟았고 그것은 셜록이 우유는 매번 처마시지만 사오지 않고 그들이 방세를 내지 않는다며 허드슨 부인이 닦달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셜록이 방에 찾아갈 때마다 없어서 화가 난 모리아티 왕비는 대체 왕자가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지, 대체 왜 존에 대한 제보는 없는 건지 미칠 것만 같았다. 답답해진 그녀는 결국 미스테리하지만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 마이크로프트를 불러들였다. 셜록이 어딜 가 있는 거냐고 그에게 묻자 마이크로프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온 세계 부녀자들은 다 아는데 왜 너만 모르냐고 답했다. 그의 말에 확 총이라도 쏴버릴까 울컥했지만 참아내고 모리아티 왕비는 그에게 부디 알려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왕비가 소중히 끌어안고 있는 아이패드를 빼앗아 구글 창을 열고 검색어를 쳐 그녀에게 보여줬다. 


 “셜록과 존의 하숙집이라고 치면 다 나옵니다. 구ㄱ 스트리ㅌ뷰를 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스트리ㅌ뷰라니 그렇게 좋은 것이 있는 줄은 몰랐다는 건 둘째 치고 셜록과 존의 하숙집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왕비를 떼어내며 마이크로프트는 그 둘이 처음 보자마자 함께 동거하기 시작했으며 주말쯤 되면 행복한 소식도 들려올 것 같다고 전했다. 비명을 지르며 질투에 눈이 먼 왕비는 그를 붙잡고 존을 죽일 좋은 약을 주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주겠다고 절규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웃었다.


 “그 말, 기억하겠습니다. 왕비님.”


 마이크로프트에게서 약을 손에 넣은 왕비는 당장 베이커가의 하숙집 주인을 부르라 명했다. 얼마 못 가 끌려 온 허드슨 부인에게 왕비는 존이 먹을 음식에 이 약을 타라고 지시했고, 그 댓가로 셜록이 밀린 반 년치 방세를 주겠다고 하자 안 그래도 하숙집 두 남자들이 제때 돈을 안 내서 짜증났던 허드슨 부인은 순순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것도 모르고 바깥나들이를 마치고 룰루랄라 궁궐로 돌아오던 셜록은 모리아티 왕비의 명을 받은 경비대원의 급습을 받고 핸드폰이며 장갑이며 머플러며 코트며 죄다 털린 뒤 제 방에 갇혔다. 내게 왜 이러는 거냐며 항의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왕비의 명령이라는 말 뿐이었다.
 



 우유가 없어 이 추운 날 장을 보러 나가야 하나 한숨을 내쉬고 있던 존은 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셜록인가? 싶었지만 그가 노크 따위를 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문을 열어 보았더니 거기엔 허드슨 부인이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존은 배고플 텐데 이거나 마시라며 그녀가 들고 온 과일 펀치를 받아들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허드슨 부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래층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컵에 따라 펀치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존은 갑자기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베이커가로 오기 전, 누가 맛있는 거 준다고 해도 얻어먹지 말라고 해리엇이 그랬는데. 내가 무슨 초딩이냐고 핀잔을 주었던 것이 무색해졌지만 이제 와서 후회 해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약의 효과로 온몸에 힘이 빠진 존은 바닥에 픽 쓰러졌다. 손톱으로 바닥에 ‘범인은 허드슨’이라고 쓸까 고민했지만 사실 손가락 하나 놀릴 힘도 없었다. 죽기 전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고 했던가. 그러나 왜인지 존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징글징글한 룸메이트, 셜록 뿐이었다. 




 왕비가 어째서 자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코트와 장갑, 머플러 등등을 빼앗아가고 방에 가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멍하니 창가에 서있던 셜록은, 느닷없이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놀랍게도, 유명하지만 셜록에겐 관심 밖인 미스테리한 점쟁이 마이크로프트가 서 있었다. 당신은 누구고 어떻게 들어온 거냐고 셜록이 묻자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의 커다란 장우산을 내보였다. 사실 이 우산은 왓슨 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인데,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순간이동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모른 해리엇이 순순히 그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다는 것이었다. 최첨단 과학과 아ㅇ폰과 아ㅇ패드가 판을 치는 21세기에 대체 무슨 순간이동이냐며, 호킹 박사도 순간이동의 원리 따위 발견해내지 못했다고 대꾸하는 셜록에게 웃어 보이며 지금 존(이라고 쓰고 마틴이라고 읽는다)의 목숨이 위험한 때이니 물리적 이론이고 나발이고 닥치고 나만 따라오라고 말했다. 존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셜록은 코트가 없어서 좀 그랬지만 어쨌든 우산을 펼치고 빙글빙글 돌리는 마이크로프트의 손에 이끌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의 일이었다. 셜록은 눈앞에 베이커 스트릿 221B의 거실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잠시 뭐에 홀린 듯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다 바닥에 존이 볼품없이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갔다.
 존을 품에 안고 그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대었지만 싸늘하게 식은 그의 몸에선 심장 고동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절망한 셜록은 존을 마구 흔들었다. “일어나게, 마틴!” 그러나 그는 역시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흑흑 느껴 울며 셜록은 자네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내 방으로 데려가 포르말린 박제라도 해서 영원히 자네를 기리겠다고 외쳤다. 축 늘어진 존을 들어 올리려고 셜록이 낑낑대는 걸 보며 가만히 놔두면 정말 미이라라도 만들 태세인지라 한숨을 쉬며 마이크로프트가 그를 제지했다. 


 “그는 안 죽었어, 셜록.”
 “안 죽었다고? 하지만 심장이 뛰지 않는데?”
 “그래. 그리고 그의 이름은 마틴이 아니네.”


 셜록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제 품 안의 존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뭔데?”
 “존이지. 왓슨 백작가의 둘째아들. 사실은…”


 모리아티 왕비가 셜록존을 검색한 것부터 시작해서 온 인터넷에 떠도는 셜록존 박해를 한 일, 수배령을 내린 일, 주동자는 해리엇이었다는 일, 그래서 존이 어쩔 수없이 마틴이라고 속이고 베이커 스트릿 하숙집에 살게 된 일, 질투에 눈이 먼 모리아티 왕비가 약을 타서 그를 죽이려 했던 일까지, 베네딕트 컴버배치보다 더 한 빠르기로 줄줄이 읊은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이 왕비에게 그 약을 주었다는 얘기만 쏙 빼고 말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존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 그는 (누군가의 농간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키스를 받아야만 깨어날 수 있는 마법에 걸렸지.”
 “키스라고?”


 머뭇거리던 셜록은 그럼, 내가 해도 되나? 라고 마이크로프트에게 물었다. 흐뭇한 미소로 그를 지켜보던 마이크로프트는 이 마법의 경우는, 존도 널 사랑해야 깨어날 수 있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졸지에 사랑의 짝대기를 하게 된 셜록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제 품 안에 있는 존의 입술에 키스했다.
 과연 존은 깨어 날 것인가? 셜록은 찐-하게 그의 입술을 부비곤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붉어진 입술 끝에서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한 체온은, 점점 그의 얼굴로, 목으로, 가슴으로 퍼져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셜록은 그의 몸 전체가 따뜻해진 것을 알아챘다. 그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자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기쁨의 환호성을 울리며 셜록은 존을 마구 흔들었다. 천천히 눈을 뜨는 존은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셜록을 보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가 천국인가?”


 이건 미드 슈ㅍ내츄럴이 아니라고, 그리 쉽게 천국에 갈 리 있냐고 말하며 셜록은 존을 부둥켜안았다. 


 “그럼 내가 죽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 자네에게 이런 고초를 겪게 하다니, 정말 미안하네, 존.”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마틴이 아닌 존이라고 부른 것에 깜짝 놀란 존은 어떻게…? 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한 쌍의 바퀴벌레 같은 둘 사이에 끼어들 타이밍만 노리고 있던 마이크로프트가 이때다 싶어 존에게 말했다. 


 “그는 베니가 아니라(아니 맞겠지만) 이 나라의 왕자 셜록 홈즈입니다.”


 존은 해리엇이 자신에게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네 운명의 사람은 왕족이다.’ 그저 누나가 권력 욕심에 눈이 멀어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존은 셜록의 행색을 보고 그가 자신 때문에 코트도 입지 않고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온 건가 싶어(사실은 아니었지만)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였다. 셜록이 존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얼굴은 다시 봐도 내 취향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고백했다.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사랑하네, 존!”
 “셜록!”


 두 사람은 재차 진하게 포옹했다. 매우 병신 같은 스토리지만 감동받은 마이크로프트는 두 사람이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점점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가며 이러다간 정말 진짜 좋은 소식이 들려올 태세라 마이크로프트는 으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서로 얼굴을 가까이 대려는 두 사람에게 그만 가자고 재촉했다. 방해받아서 좀 짜증난 셜록이 어딜 간다는 건데? 라고 묻자 마이크로프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약속한 것을 되찾으러 갈 때입니다.”




 허드슨 부인에게서 약속대로 존에게 줄 음식에 약을 섞었다는 보고를 받은 모리아티 왕비는 기뻐하며 침실로 달려가 애지중지하는 아ㅇ패드를 꺼냈다. 어서 존의 죽음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셜록존 픽이 올라오는 포럼에 ‘니들 그거 앎? 존이 정말 죽었음 ㅇㅇ’ 이라는 분란글을 올리려던 찰나,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마이크로프트 덕에 왕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긴 갑자기 어쩐 일이오?”
 “마마, 존이 죽었으니 약속대로 댓가를 치르셔야 합니다.”


 모리아티 왕비는 조금 불안해졌지만 약속은 약속이기에 무얼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이크로프트는 표정을 바꾸고 싸늘하게 말했다.


 “왕권을 내놓으시지요.”


 이게 무슨 헛소리? 분노한 왕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둔 총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그보다 한 발 앞서 마이크로프트의 장우산이 모리아티 왕비의 손을 쳐냈고 동시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셜록과 존이 함께 걸어 들어왔다. 존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왕비는 놀라 외쳤다. “죽었다며!” 동시에 왕비의 품안에서 아ㅇ패드가 바닥으로 떨어져 두 동강이 났다. 왕비의 처절한 비명이 방 안을 갈랐다. 마이크로프트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죽었습니다. 그러나 왕자의 사랑이 그를 살려냈지요. 어쨌든 저는 제 할 일을 다 했으니 약속대로 당신에게서 대가를 받아가겠습니다.”


 반항하는 왕비에게 셜록은 총을 겨누었다. 왕비는 셜록이 총을 들고 설칠 때를 대비하여 유격수를 하나 놓으려 했던 것을 진즉에 실행하지 않은 자신의 부주의함을 깊이 후회했다. 셜록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모리아티. 당신을 대비 자리에서 폐위하고 나 셜록 홈즈가 왕위를 계승할 것을 선포하노라! 여봐라, 존 왓슨을 암살하려 했던 자다. 당장 이 자를 감옥에 가두어라!”


 명을 받들고 달려온 경비병들에게 끌려가며 모리아티 왕비는 분을 참지 못하고 셜록에게 소리 질렀다.


 “넌 왕위에 관심도 없었잖아!”


 그러자 셜록이 존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존이 돈 많은 남자가 좋대서.”


 알고 보니 셜록 머리 위에 있는 남자는 존이었지만 그런 자각 따위 없는 셜록이었다.
 셜록은 모리아티를 제거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마이크로프트에게 감사하며 그런데 대체 당신은 누구시기에 왕위를 되찾는 것까지 도와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이크로프트는 놀라지 말라며 이렇게 말했다.


 “I'm your brother.”


 셜록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셜록의 아버지에게는 다른 여자랑 낳은 배다른 자식이 하나 있었는데 이 스토리를 얘기하자면 출생의 비밀 사랑과 암투 음모와 배신 백혈병과 CIA 알바활동 등등으로 점철된 주말 드라마 50편은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만 두고 어쨌든 셜록은 자신에게 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




 이후 홈즈 왕국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셜 록이 마이크로프트의 공을 치하해 왕자의 자리로 복위시키니 그는 정치엔 관심 없고 오로지 드라마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 하며 서재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모팻이라는 덕후와 함께 셜록 왕자의 모험을 다룬 드라마를 만들어 영쿡 공영방송 비B씨에 팔아넘기니, 이 드라마가 대박을 쳐 아ㅇ패드 만큼이나 온 세계에 셜록존이 흥하게 되었다 한다. 대신 다음 편을 얼른 내놓으라는 부녀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러 마이크로프트는 목숨의 위협을 받을 지경이 되었지만.
 존을 죽이려 했던 허드슨 부인은 방세를 못 받아 짜증나서 그랬다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처벌 없이 풀려났고,
 원하던 대로 왕의 외척이라는 자리를 얻은 해리엇은 급부상하는 귀족 50인 중 1위를 기록하는 등 뭇 여인들의 흠모를 안으며 모셜에서 다시 셜존으로 갈아타 쓰는 글마다 모두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는 인기 부녀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부녀자들에게 내려졌던 박해가 모두 거두어지니 기뻐하며 입을 모아 셜존을 찬양하더라.
 이후 셜록과 존 부부는 그들을 닮은 아이들 다섯을 낳고(…누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한다.






- 크 리스마스 이 벤트로 이웃님들께 미리 배포했던 소설. 마찬가지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렁 거 끼얹어서 죄송 ㅠ 본문에 이웃님들 이름이 들어갔었으나 이번 건 간접광고에 대한 걱정으로(..뭘) 이웃님들 이름은 삭제하고 몇몇 물품 이름 자음으로 대체 ㅋㅋㅋㅋㅋㅋㅋㅋ

- 모셜 백일장 1등하신(읭) 모셜계의 대부 수면ㅈ님의 지침서 글이나 개그글에 대한 오ㅁㅏ주...라고 하고 싶지만 이건 그냥 병신글임 ㅠㅠ

- 백ㅅ 공주, 잠자는 숲ㅅ의 공주, 스타ㅇ즈, 일본 애니 신ㄷ렐라(부랑아 샤를 왕자님 ㅠㅠ), 메리 ㅍ핀스(?), 비B씨 셜록 -_- 등을 잡다하게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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