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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2. 24. 08:27

셜존 ::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이브를 일주일 앞둔 밤이었다.


 부엌 식탁에 앉아 홀로 늦은 식사를 하던 존은 TV에서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주간 기상 예보에 귀를 기울였다. “셜록, 볼륨 좀 높여 봐.”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반쯤 졸린 얼굴로 TV를 보던 셜록은 그의 말에 시큰둥하게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잘못 눌러서 점점 작아지던 금발의 늘씬한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가 짜증 섞인 셜록의 투덜거림과 함께 갑자기 높아졌고, 그녀는 목소리에 한껏 아쉬움을 담고 존이 기다리던 소식을 전했다. “모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길 기대하고 계시겠지만, 애석하게도 24일 밤의 런던 하늘에 눈이 내릴 확률은 10퍼센트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 셜록은 존의 씁쓸해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쉽군.” 


 셜록은 말없이 TV의 전원 스위치를 눌러 그것을 껐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적이 베이커가의 하숙집을 점령한다. 접시에 남은 샐러드를 포크로 찍던 존이 당황해서 셜록을 바라보았다. “왜?” 고개를 45도 각도로 꺾고 날카롭게 존을 쳐다보던 셜록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라는 심리가 대체 뭐지?”


 존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끔 저렇게 얼빠진 소리를 할 때면 이전에 자신이 블로그에 ‘그가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깜짝 놀랄 만큼 무지하다는 점이다’ 라고 쓴 것에 대해 그에게 한 소리를 들은 것이 억울해진다. 그러나 곧이어 그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해진 존이었다. 


 “음… 멋지니까?”
 “물론 나도 그게 멋지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굳이 크리스마스에 맞춰 눈이 내려야 할 필요는 없잖아.”


 하마터면 그것도 그렇네? 라고 동의함으로서 셜록의 잘난 척을 볼 뻔한 존은 포크를 입에 물고 곰곰이 생각했지만, 대체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과 눈이 오는 것에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툴툴거리는 셜록의 입을 꾹 다물게 할 만한 이유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짜증이 난 존은 셜록을 째려보며 분명 이상한 데에서 뒤틀린 게 틀림없다고 구시렁거리다 문득 이 소시오패스의 스페셜 데이는 어떤 식이었는지 궁금해졌다. 크리스마스라던가, 생일이라던가. 정확히는… ‘그런 날들을 누구와 어떻게 보냈나’ 였지만. 호기심이 동한 존은 머릿속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변명은 잠시 접어두고 셜록에게 물었다. 


 “셜록, 작년 크리스마스엔 뭘 했나?”


 그의 찌푸려진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골똘히 생각하는 눈동자가 잠시 허공을 향한다. 그러나 흘러나온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군.” 이었다. 혹시나 해서 존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재작년엔?” 셜록은 그건 기억난다는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절도 사건과 한 건의 방화 사건 해결하느라 좀 바빴지.” 


 그럼 그렇지. 사건에 관해서‘만’ 정확하게 기억하는 셜록의 하드디스크는 위대했다. 빈정거리며 존이 “방화를 저지른 이유가 뭐래? 혹시 자기가 성냥팔이 소녀라고 착각한 거 아냐?” 라고 하자 셜록은 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혔네. 참고로 성인 남자였고.” 한숨과 함께 혀를 끌끌 차며 존이 말했다.


 “그런 거 말고, 보통, 크리스마스엔 가족들이 다 모이지 않나?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한다거나.”


 일부러 뜸을 들여 말하는 존을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셜록은 잠시 제 이마를 감싸 쥐었다. 한참을 그러고서 미동도 않기에 혹시 아픈 기억이라도 건드린 건가? 싶어 포크를 내려놓고 여차하면 그에게 다가갈 기세로 겁먹고 있던 존은, 셜록이 대뜸 “크리스마스!” 라고 외치는 바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크리스마스가 왜?” 얼빠진 존과 달리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벽 너머 어딘가를 노려보던 셜록은 두 손을 움켜쥐고 분노했다.


 “그래, 크리스마스였어! 사 년 전에! 기어코 안 가겠다고 하는 걸 억지로 마이크로프트가 집으로 끌고 가서는-!”
 “…가서는?” 

 “온 가족이 모인 식탁 앞에서 온통 내 험담을 늘어놓았어! 덕분에 엄마한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앞으로 들을 10년치는 미리 다 들은 것 같았다고! 마이크로프트는 늘 그런 식이지. 자기 일에 협조를 해 주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려 들어. 그런다고 누가 도와줄 줄 알고?! 어림도 없지!!”


 광기에 가까운 분노의 말들을 해대는 셜록을 보며 맥이 풀린 존은 왜 셜록이 마이크로프트를 싫어하는 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왜 그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을 수밖에 없는지도. 간간히 그의 말 속에서 튀어나오는 지옥, 폭언, 짜증, 폭발 같은 단어를 흘려들으면서 존은 그에게 그 ‘가족 모임’에 대해 다시는 묻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에서 ‘연인’ 같은 단어가 나오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마이크로프트에 대해 불만을 콸콸콸 있는 대로 쏟아내는 셜록을 무시하고 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싱크대에 집어넣고 찬장에서 시리얼을 꺼낸 후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좌절했다. 

 “우유가 없어.” 존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높여 셜록을 향해 소리쳤다. “우유가 없다고!” 셜록은 입을 다물고 존을 보았다. “그래서?” 존은 체념하는 대신 강하게 밀고 나갔다. “가끔은 좀 직접 사오는 게 어때?”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말이 영언지 러시아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며 셜록은 다시 화제를 돌렸다. 


 “존, 쓸데없는 얘기는 관두고 크리스마스 얘기로 돌아가지. 눈이 오는 거랑 크리스마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이네.”


 혼자 벽보며 화내고 있던 게 누군데!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참으며 “우유를 사 온다고 약속하면.” 존은 최대한 뻔뻔스럽게 말했다. 


 “…꼭 마이크로프트 같이 집요하군.”


 시무룩해진 셜록을 보며 존은 싸늘해졌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셜록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없이 시리얼을 우유와 함께 먹는 대신 손으로 집어먹는 것을 택한 존은 시리얼 봉투를 부스럭거리며 셜록이 앉은 소파 맞은편에 가 앉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의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했다. 셜록의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데이트하자는 말을 꺼내면 지금처럼 크리스마스랑 데이트가 무슨 관계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둘이서 함께 맞이하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인데다 셜록에겐 크리스마스에 대한 변변한 낭만이라곤 없어 보였기 때문에, 존은 그가 이 특별한 날을 좋은 기억으로 하드디스크에 남길 수 있으면 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는 것이 왜 좋은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셜록이, 함께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존은 의문스러웠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오신 축복받은 날이잖아.” 시리얼을 우물거리며 존은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꺼냈다. “실제로 예수가 태어났을 때 하늘에선 눈이 내렸었어.” 마치 눈 결정처럼 보이는 손에 묻은 설탕 범벅 시리얼 가루를 예로 들며 존은 봉지 구석에 남아있던 그것들을 허공에 흩뿌렸다. “이렇게 눈이 내려서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하늘의 축복을 되새기는 거지.” 존의 엉터리 같은 설명을 웬일로 진지하게 듣던 셜록이 바닥에 떨어진 시리얼 가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축복을 되새기기 위해 눈이 내리길 바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요즘 눈이란 그냥 연인들의 데이트에 특수 효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라고 존은 생각했지만 더 꾸며내기도 귀찮았기에 그냥 동조했다. “그렇지.” 


 셜록의 미심쩍은 얼굴은 별로 나아진 게 없었지만 존은 내친김에 어릴 때 부모님께 받았던 선물이며, 가족이 다함께 모여 먹었던 칠면조 요리, 맛있는 음식들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끝에 슬쩍, 티내지 않으려 애쓰며 질문을 끼워 넣었다. 


 “그러니까, 그게… 왜 소설 중에 그거 있잖아.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그래. 오 헨리의 단편 말이야. 그것처럼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크리스마스에 흔히들 하는 일이지. 그래서 말인데, 셜록. (여기서 존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선물로 받고… 싶은 거라도… 있나?”


 힘겹게 이야기를 꺼내놓고 쑥스러워진 존은 시리얼 봉지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역시 셜록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함으로서 그를 좌절케 했다. 


 “범죄라면 언제나 대환영이지. 연쇄 살인사건이라던가.”


 그게 보통 선물의 범주에 들어가나? 어이가 없어진 존이 소리쳤다.


 “살인마한테 선물로 그런 거 받고 싶냐! 애초에 그건 주고받을 수도 없잖아! 크리스마스에 살인이라니!!!” 


 존이 짜증을 내며 시리얼 봉투를 탈탈 털자 시리얼 가루가 사방에 흩날렸다. 그 모양새를 보던 셜록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난 좋은데.”
 존은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상대는 선물은커녕 연구용 시신을 더 좋아할 소시오패스라는 걸 잊고 있었던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하는 수 없이 존은 차선책을 강구했다.


 “그럼 저녁식사는? 맛있는 요리, 맛있는 와인, 어때?”


 침묵하던 셜록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존. 혹시 지금 데이트 신청하는 건가?”


 존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달아올랐다. 애꿎은 시리얼 봉지만 주무르며 우물쭈물 거리던 존은 저 눈치 없는 셜록이 제대로 알아들을 정도로 직설적으로 말해버린 것에 대해 반성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시리얼 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쁘지 않군.”


 거절당할 거라 생각했던 존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셜록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어쩐 일로 일찍 침실로 향하며 셜록은 말했다.


 “자기 전에 바닥 치우고 자.”


 존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데이트 신청의 기쁨도 잠시, 카펫 위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아름다운 시리얼 가루들을 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리고 일주일 뒤인 크리스마스 이브, 존은 크리스마스 기념 요리로 가득 차려진 식탁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셜록-


 모든 게 완벽했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차린 상은 통째로 구운 칠면조 요리(사온 것)와 소시지, 삶아 으깬 감자와 밤, 잘 숙성된 와인, 그리고 커다란 크리스마스 푸딩(이것도 사온 것) 등이 놓여 있었다. 처음 함께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만찬을 위해 존이 며칠 전부터 없는 시간을 쪼개 장을 봐오고 요리 레시피를 찾아 어설프게나마 직접 만드는 등 세심한 공을 들인 것이다. 맞은편에 셜록이 앉고,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일부러 준비해 둔 초에 불을 붙이면 모든 게 완벽해 지는데- 존은 셜록의 좋아, 라는 말을 믿었던 것을 후회했다. 셜록은 어제 저녁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살인 사건으로 인한 레스트레이드의 호출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셜록이나 따라나서는 건데. 카우치에 몸을 뉘이며 존은 연락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어제 텍스트를 보냈을 땐 분명 약속에 늦지 않겠다고 답변이 왔었다. 그리고 오늘,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부터 걱정스러워진 존은 언제쯤 들어올 거냐고 텍스트를 보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닦달하는 부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그러나 셜록에게선 답변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원하던 살인 사건을 받아버려 분명 신이 난 거겠지. 존은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위에 예쁜 빨강 리본을 전두골에 붙인(존이 셜록의 친구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해골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특별한 날 좋은 기억은커녕 우울한 기억만 남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존은 쿠션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존이 엉망이 된 기분을 달래려 애쓰는 동안 창밖에는 여느 때처럼 소리 없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레스트레이드와 함께 세 번째 사건 현장으로 향하는 길에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을 내세우는 많은 표지들이 번쩍거리며 셜록의 눈앞을 스쳐지나갔지만 어느 것도 그의 시선을 잡아끌진 못했다. 어제 연구실에서 밤을 새고 오늘은 아침부터 경찰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느라 바쁜 셜록은 개연성이 없어 보이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장소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살인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내느라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정보 검색을 하다 말고 존에게서 두 번째로 온 텍스트를 확인한 셜록은 어제 본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무슨 살인 사건이냐고 존은 펄쩍 뛰었지만, 당연하게도 범죄자는 날짜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 마련이고 셜록 또한 그들을 잡기 위해서는 마찬가지여야 했다. 어제 약속 시간에 맞추어 들어가겠다고 텍스트를 보냈던 것을 기억한 셜록은 아무래도 늦을 것 같다는 텍스트를 보내 존을 실망시키는 대신,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사건 현장의 현관문 앞을 지나며 셜록은 아마도 살해당한 집주인이 장식해 놓았을 크리스마스 화환과 번쩍이는 전구들에 무심코 걸음을 멈추었다. 은박지로 싸인 선물 모양의 장식을 툭 건드리면서 셜록은 레스트레이드에게 물었다. 


 “자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소설 읽어 봤나?”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레스트레이드는 예의 그 뚱한 표정으로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며 핀잔을 주었다. 


 “당연하지. 왜, 천재 나으리께서 그 내용을 몰라 묻는 건 아닐 테고.” 빈정거림에도 셜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슨 내용인가?” 레스트레이드의 미간에 주름이 두 줄 잡힌다.


 “정말 모르는 거야? 근데 뜬금없이 그건 왜?”
 “어떤 선물을 주기에 제목이 그렇지?” 저 필요한 질문만 해대는 셜록을 향해 혀를 쯧 차며 레스트레이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 머리를 긁적였다.


 “음… 두 부부가 서로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편은 머리핀을, 부인은 시곗줄을 마련하지. 그러나 그걸 사기 위해 부인은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남편은 시계를 팔아 버린다는 내용이네.” 


 셜록은 얼굴을 찡그렸다. “멍청이 같군.” 위대한 작가의 아름다운 소설은 셜록의 한마디로 폄하 당했고 레스트레이드는 설명해준 보람을 단번에 잃었다.  


 “하여튼 잘난 척은. 자넨 그렇게 선물 줄 사람도 없잖나.” 셜록은 소심한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레스트레이드를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흘리듯 말했다. “있어.” 그래서 레스트레이드의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바닥은 난장판이었다. 침실 바닥에 쓰러진 싸늘한 시신을 보기 전부터 셜록은 거실에서부터 침실까지 침입자가 집주인과 오랫동안 엎치락뒤치락 했다는 것을 눈에 보듯 훤히 알 수 있었다. 거실 한편에 둔 플라스틱 트리에 걸려있던 전구와 장식물들이 죄다 떨어져 엉망이 된 것을 본 셜록은 “즐거운 크리스마스로군.” 무의미하게 중얼거렸다. 바닥에 흩어진 수많은 파편들을 살피려 몸을 숙인 그에게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총기 사용 흔적은 없네. 부검을 해봐야 더 정확히 알겠지만 두부 함몰 출혈이 큰 것으로 보아 둔기 가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추측하고 있어. 어떤 종류의 흉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를 뚫고 분주히 오가는 검식반 요원들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젠장, 크리스마스인데 집에도 못 가고 이게 뭐하는 짓이지.” 셜록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러다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보았다. 어릴 때 집 거실 선반에서 본 기억이 있는 낯익은 물건이었다. 셜록은 그것을 유심히 살피다가 장갑 낀 손으로 최대한 조심스레 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셜록의 중얼거림을 듣고 레스트레이드가 뭐? 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밖엔 눈은커녕 어둠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상하단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그에게 셜록이 물었다. “레스트레이드, 오늘 눈 올 확률이 정말 낮다고 하던가?” 레스트레이드는 골똘히 생각했다. “글쎄, 안 온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럼 오늘 일찍 집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레스트레이드는 자꾸만 대중없는 질문을 해대는 셜록에게 결국 버럭 짜증을 냈다.


 “이봐, 자네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나도 집사람이랑 애들이 집에서 내가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셜록은 손에 들고 있던 장식품을 레스트레이드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한 손에 들어갈 만한 크기였지만 꽤나 무게가 나갔다. “이거랑 비슷한 거 하나만 사다주면 오늘 자네가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지.” 그를 놔두고 침실로 향하던 셜록은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그거 중요한 증거물이니 조심하고.” 레스트레이드는 이게 뭐가 중요하다는 거야? 라는 표정으로 그 장식품을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밑바닥에 남아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떨어트릴 뻔했다.





 존은 잠결에 차가운 손이 자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그 손의 주인이 속삭였다. 존?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존은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을 보았다. 셜록이었다. 


 그는 차가운 바람으로 조금 붉어진 코를 하고 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우치 위에서 잠이 들었던 존은 몸을 일으켜 그를 보았다. 어두운 옷 색과 대비되는 셜록의 흰 얼굴이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반사되어 왠지 트리용 전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비몽사몽간에 존이 말했다. “셜록, 지금 몇 시지?”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셜록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11시를 조금 넘었군.” 존은 셜록이 12시를 넘기지 않고 돌아온 것에 안도했다.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태연한 척 가장하다가 존은 셜록의 손목에서 대롱거리는 검은 봉지를 보았다. “그게 뭐지?” 셜록이 대답하기도 전이 존은 그의 손에서 그 봉지를 낚아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봉지를 열어본 존은 실망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우유로군.”
 “내 가 사올 차례니까.” 그런 존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주일 만에야 겨우 우유를 사온 셜록은 다시 그것을 빼앗아 냉장고에 넣기 위해 부엌에 갔다가 작은 탄성을 올리며 존에게 왔다. “음- 못 보던 게- 식탁에 가득 있군.”
 “식어빠진 것들이지.” 질책이 담긴 존의 대꾸에 셜록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어인 일로 순순히 사과의 말을 하는 셜록이었다. 그러나 존은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혼자만 선물 받으러 나가서 안 돌아오는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난 지쳤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걸 보니 그새 잊은 모양이었다. 선물로 받고 싶은 것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존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포장된 납작한 상자를 들어 셜록에게 건넸다. 웬만해선 잘 놀라지 않는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이게 뭐지?”


 “니코틴 패치. 선물이라고 하기엔 좀 웃기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셜록. 로봇이 말하는 것처럼 딱딱하고 건성으로 존이 인사했다.


 셜록에게 없는 것을 선물해 주고 싶어 지난 일주일 동안 찾아보았지만 딱히 그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찾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고른 게 니코틴 패치였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가 한꺼번에 서너 개씩 쓰는 바람에 마침 다 떨어져 가는 중이었고. 어설픈 포장을 하며 스스로를 바보처럼 느끼지 않으려 존은 매우 애써야 했다.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어쩌구를 예로 들었던 것 같은데 고작 자신은 니코틴 패치나 선물하려 하고 있다니. 설마 셜록이 자신에게 줄 선물로 담배를 사오지는 않을 거라고 위안하며 존은 멍청이 같은 대사를 연습했다. 셜록, 금연은 좋은 거야. 앞으로도 자제할 수 있도록 힘내게. 그렇게 나름 어색하지 않게 건네주려고 애를 썼는데. 이미 소용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더 좋은 걸 받았으니.


 마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옮기다가 떨어트린 것 같은 기분의 존은 일부러 셜록을 외면하며 냉랭하게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셜록의 낮은 목소리의 유혹에 붙잡히고 말았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궁금하지 않은 건가?”


 돌아선 존이 혼란스러운 -설마 담배는 아니겠지, 라는 걱정도 포함된- 표정을 짓자 셜록은 코트 주머니에서 사건을 해결한 대가로 레스트레이드가 사다 준 포장 없는 선물을 꺼냈다. 묵직하고 한 손에 들어오는 그것을 존에게 쥐어주며 셜록은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존은 손에 쥐어진 그것을 눈앞에 가까이 갖다 댔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하얗고 반짝반짝한 그것은- 스노우 글로브였다. 투명한 원 안에 흰 눈사람 두 개와 몇 그루의 전나무가 있는. 살짝 흔들자 반짝거리는 가루가 눈사람 위에 눈처럼 떨어져 내린다. 예상치도 못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거기 있었다. 존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셜록,” 한참 뒤 존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을 때, 셜록이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잠깐-”
 “선물 아직 안 끝났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셜록은 존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처음엔 부드럽게, 다음엔 감미롭게. 그리고 마지막엔, 격정적으로. 길고 긴 시간이 끝나고 아쉬운 듯 셜록이 입술을 떼자 존은 방금 전까지 부루퉁했던 기분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올려다보는 존을 보며 셜록은 오늘 그 비슷한 스노우 글로브에 둔부를 가격당한 살인 사건 - 물론 사인은 그 때문이 아니라 그 후에 이어진 2차 타격 때문이었지만 - 이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것은 축복받은 날에 일어나는 일 중 가장 최악의 것이니까. 태연스럽게 셜록이 물었다.


 “마음에 드나? 그 스노우 글로브.”
 “아… 고맙네. 정말 마음에 들어.”
 “다행이군.”


 가만히 웃는 셜록을 보며, 존은 곧 생일을 맞을 하늘의 그 누군가에게 감사했다. 셜록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겐 정말 특별한 날이 되었다고.
 뒤이어 존은 셜록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그렇지만,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어.”


 환한 미소의 셜록이 존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그의 목을, 입술을 끌어당겼다.

 베이커가의 두 사람이 처음 맞는 아름답고 완벽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이웃분들에게 배포했던 글 -_;;; 부끄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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