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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2010. 12. 3. 04:00

셜록 :: 종이 한 장 차이



 셜록은 벌써 다섯 번쯤 시끄럽게 뎅뎅 울리는 핸드폰의 텍스트 알림음을 무시한 채 카우치에 드러누워 반절로 접은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존은 그가 신문 기사들에 집중하느라 그 소리들을 듣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일부러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일 분쯤 뒤에 여섯 번째 소리가 울렸을 때, 존이 말했다.

“텍스트가 오고 있는 것 같은데. 확인 안 해?”

 바스락거리며 신문을 넘기고 있던 셜록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마이크로프트일 겁니다. 확인 할 필요 없어요.”

 유치한 형제싸움에 괜히 끼어들어 새우등 터지고 싶지 않은 존은 다시 책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알림음이 아홉 번째로 들렸을 때,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그의 핸드폰을 신경질적인 태도로 집어 들었다. 메시지는 그의 말대로 마이크로프트에게서였다.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면, 존에게 대신 연락하겠다.] 존에게는 위협과도 같은 그 문장에 어이가 없어 일부러 답신 버튼을 누르고 텍스트를 작성했다. 신문을 놓지 않은 채 눈알만 굴려 존이 하는 양을 째려보던 셜록이 말했다.

“뭘 하는 겁니까.”

“내일 가겠다고 대신 적었어. 셜록, 난 의사지 자네를 위한 조사원이 아니야. 자네 형은 자네하고 연락이 안 되면 늘 내게 연락해 온다고!”

 대체 무슨 악연이 있기에... 존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벅벅 문질렀다. 셜록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얄밉게 웃는다.

“난 안 갑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도, 우리 형제는 마주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자네는 왜 그렇게 그를 싫어하나?”

 존의 질문에 셜록은 고개를 갸웃 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싫으니까요.”

 존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진다. 정말 답이 없는 형제다.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거나- 어떤 점이 안 맞는다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그를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건 변함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얘기는 그만하죠. 셜록은 다시 신문에 집중했다. 열 번째 신호음이 울리자 신경 쓰지 않는 척 하면서도 온갖 인상을 다 찡그리고 있는 셜록을 보며 존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싫어하는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게 무척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런던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마이크로프트의 집에 셜록 대신 파견된 존은, 쓸데없이 셜록 대신 답신을 보낸 죄를 안고 찜찜한 기분으로 싱글거리는 마이크로프트를 마주하고 있었다. 존을 보자마자 동생의 안부를 묻는 그는 여전히 셜록을 ‘걱정’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요하게 텍스트를 보내고 셜록이 받지 않을 전화를 하고 틈틈이 메일을 보내 노트북을 손에 든 셜록을 경기 일으키게 만드는 것을 걱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자질구레한 사건 파일에 대한 기나긴 설명이 끝나고 그것들을 죄다 존에게 넘겨주며 셜록이 그 중 하나라도 흥미를 보일 수 있도록 잘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마이크로프트에게, 작별의 인사 대신 존은 셜록에게 물었던 질문을 그대로 했다.

“셜록은 왜 그렇게 마이크로프트씨를 싫어하죠?”

“오, 그건 피차일반인데요. 저도 녀석을 무척 싫어합니다.”

“좋아하는 게 아니구요?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룸메이트를 돈으로 매수하려 했고 공공의 CCTV를 개인적인 용도로 남용하면서 동생을 감시하는데 쓰고 때로 그가 지루해 할 때마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넘겨주면서 최대한 자신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걸 보통 싫어한다고 말하나? 존은 이 형제들의 일반적인 표현법이 평범한 사람들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존을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그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려면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긴 열렬한 관심이 필요하죠. 하지만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셜록은 나에 대한 미움을 일방적인 무시로 표현하고 있지만 전 조금 다릅니다. 저는 싫어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열렬한 관심을 주면서요.”

 …그러니까 그걸 두고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는 거라고! 외치는 대신 한숨을 내쉰 존은 이 형제는 어딘가 뒤틀려도 단단히 뒤틀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번엔 셜록더러 직접 오라고 전해 주시구요. 말하며 웃는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이 지옥에서 올라온 사신의 섬뜩한 그것처럼 보여 존은 등 뒤에서 배웅하는 마이크로프트에게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저절로 빨라지려는 발걸음을 조절해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뒤틀린 사람들 중 최대한으로 뒤틀린 사람을 만난 존은 한껏 경직되어 있었다. 사라를 만나러 갔다가 검은 복면을 쓴 괴한들에게 납치된 존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수영장 건물 근처로 끌려와 있었다. 검은 벤 안에서 존은, 걱정 말라며 곧 셜록과 극적인 재회를 하게 해 주겠노라고 마치 노래하는 말투로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짐 모리아티라고 했다. 뒤늦게야 이전에 바솔로뮤 병원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존은 그 요상해보이던 남자의 정체가 모리아티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그를 더욱더 충격에 몰아넣은 건 모리아티가 가져온 꽤나 무거워 보이는 폭탄 조끼였다.

“셜록은 금방 당신을 찾아낼 거야. 경찰을 데리고 올지도 모르지. 장담하겠어.”

 말과 달리 덜덜 떨고 있는 존을 보며 지금 이 상황에서 네 그런 협박이 통하겠냐고 깊고 커다란 눈으로 말하던 모리아티는 즐거운 듯 웃었다.

“그러면 난 그의 심장을 불태워버리고 그를 쏘아 물속으로 가라앉혀버릴 겁니다. 아니면 이 수영장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도 좋겠죠. 난 그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가 가진 모든 세상을 파괴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존은 이제 입술마저 덜덜 떨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모리아티의 손에 떠밀려 수영장 문 앞에 선 존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셜록을 싫어하지?”

“오, 착각하고 있군요. 난 그를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거죠. 말했잖아요, 난 그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구요. 내가 무엇 때문에 그를 위해 이 모든 걸 꾸몄다고 생각합니까? 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셜록을 보는 것이 너무 좋거든요.”

 이벤트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차례예요. 모리아티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파괴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아이러니, 걱정하면서 싫어한다고 말하는 아이러니에 지쳐버린 존은 자신의 짝사랑을 고백하려 독창적인 사상 최악의 이벤트를 준비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다음엔 부디 뒤틀리지 않고 싫고 좋음을 말 그대로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이라는 게 애석하게도 이 상황에서 무사히 셜록과 빠져나갔을 때에나 기약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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